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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지금 예비사회인이라면 제대로 취업하지 못할 것 같아, 라고 생각하는 분들 없으신가요? 저는 그렇습니다. 나이 먹는 게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습니다만, 지금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살필 때마다 오늘 내가 대학 입시생이 아니어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예비사회인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청년 실업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여야를 막론하고 그 대책으로 청년 창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영선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1조 규모의 펀드를 만들어 청년 창업을 돕겠다는 공약을 낸 바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청년 창업 1만 개를 약속한 바 있으니까요.
청년 창업, 각종 미디어에 소개된 눈부신 성공 사례를 듣고 있노라면 와아~ 정말 대단하고 대견하고 존경스럽습니다만, 이렇게 성공한 청년 기업가 뒤에 실패한 청년 기업가는 또 얼마나 많을까 반문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일자리 창출까지 청년들이 직접 해야 하는 거야?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청년 실업 혹은 청년 창업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내용을 일부 소개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무모한 청년 창업, 패배자만 양산할 수도
정승일 : 창업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IT 부문에서 이제 대학 갓 졸업한 청년들이 창업해 성공할 확률은 1만 개 중에서 하나면 다행일 겁니다. 해당 업종에서 40대 중반까지 20년 정도 종사한 전문가들도 창업하면 20개 중 하나만 가까스로 성공하는 게 바로 이른바 벤처 비즈니스예요. 잘못하면 멀쩡한 청년들 신용불량자 만들고 끝날 수 있다는 거죠.
장하준 : 영국에서도 창업 5년 후에 살아남는 기업이 10퍼센트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아마 다른 나라도 비슷할 겁니다. 한편에서는 창업을 많이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그만큼 망하기도 하는 거죠. 그럼에도 창업에 도전해서 안철수 교수 같은 성공적인 기업가가 많이 나오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필요해요. 제가 잘못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안철수 교수가 훌륭한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건 그분의 뛰어난 능력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먹고사는 문제에 그리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누구든 사업에 실패해도 굶어죽지는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어야 과감하게 모험할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창의적 기업가를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가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창업자로 만들자는 발상은 문제가 많다고 봐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창업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환상이 팽배해 있습니다. 누구나 대학에서 IT 공부하고 창업해서 1년에 수십만 달러씩 벌면 좋겠죠. 그렇지만 그런 세상이 이루어지기는 힘들어요. 창업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는 한데, 구조적으로 보면 패배자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정승일 : 최근 20년간 유행한 이른바 ‘혁신적 기업가 정신’과 창업 붐의 본거지는 아무래도 미국이고 그중에서도 실리콘밸리인데, 그런 흐름이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미국의 경제 문제를 해결한 것 같지도 않고요.
장하준 : 오히려 미국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더 나빠졌죠. 빈부 격차는 더 커졌고요. 예컨대 1960년대만 해도 미국 일반 노동자와 최고 경영자의 연봉 차이가 30~40배였는데, 지금은 300~400배예요. 스톡옵션까지 고려하면 그 격차를 1000배까지 보는 사람도 있고요. 이런 격차가 IT 붐, 벤처 붐 이후 더 심화됐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신기술과 지식 경제 바람을 타고 창업 붐이 일긴 했는데, 보통 사람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거죠.
사업에 실패해도 기회가 있다는 안전망이 창의적 기업가 양성
정승일 : 경제 민주화를 외치는 분들은 복지국가에는 동의하면서도 스웨덴은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스웨덴에는 대기업과 재벌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 대신 복지국가이면서도 중소기업 위주인 덴마크를 우리의 미래로 삼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우리 사회에는 ‘대기업과 재벌은 악’이라는 사고방식이 너무 만연해 합리적인 논쟁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대기업 중심이냐 중소기업 중심이냐는 경제 민주화나 복지국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단지 그 나라의 주력 산업이 뭐냐에 달려 있죠. 스웨덴은 대기업의 비중이 세계 최고이지만 노조가 강하고, 심지어 대기업의 경우 회사 이사회에 종업원 대표가 사외이사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말하자면 진짜 경제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라는 거죠.
장하준 : 알고 보면 덴마크가 중소기업 중심 경제라는 것도 환상입니다. 덴마크에도 해운업을 중심으로 하는 머스크(Maersk) 그룹이라는 엄청나게 큰 재벌이 있어요. 스웨덴의 발렌베리는 투명하기라도 하죠. 이 머스크는 투명한 그룹도 아니에요. 물론 덴마크가 과거부터 농업협동조합이 강하고, 기술력 좋은 중소기업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도 GDP 중 7퍼센트를 생산하고 총 노동 인구의 3퍼센트 이상을 고용하는 데다 굉장히 불투명한 재벌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나라든 너무 이상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산업 구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스웨덴과 가장 가까워요. 한국이 1950년대부터 농업협동조합을 잘 했고 전통적인 수공업이 계속 살아 있었다면 덴마크처럼 장인적인 중소기업을 많이 키울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요.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중에서 발췌 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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