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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금융상품 중 하나로 일종인 통화옵션 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처참합니다. 중소기업들과 이들 기업에 키코를 판매한 은행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던 간담회가 무산되었다는 소식도 들리네요. 시사인 236호에서는 ‘중소기업 죽인 키코의 덫’이라는 특집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재테크나 실물경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정기예금 금리가 물가상승률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못하기도 한 지금, 주식 펀드와 함께 유망한 재테크 방법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파생금융상품이 정말로 좋은 것일까요? 자신만 똑똑하다면, 약관을 잘 읽어보기만 한다면 위험은 최대한 피해가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이미 ‘파생상품은 대량 살상 무기’라고 비판한 적이 있을까요? 미국 금융계의 대부라고 불리는 폴 볼커는 ‘지난 50년 동안 사회에 진정한 도움을 준 금융 혁신은 현금자동인출기뿐’이라며 그런 혁신적 금융 상품을 비판한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 분들은 분명 일반 소비자들보다는 훨씬 더 이 상품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일 텐데요 말이죠.

일부의 주장처럼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 공개만 투명하게 된다면 많은 문제가 사라질까요? 장하준 교수의 신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정보 공개 강화? 면죄부만 준다! 

정승일 : 그들은 이번의 금융 위기가 시장주의 경제학이 절대적 전제로 삼는 ‘모든 경제 주체가 동등한 시장 정보를 가져야 한다’는 원리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해요. 일부 불법적인 부정행위로 말미암아 시장이 왜곡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요. (중략) 따라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만드는 근원적 처방으로 그들은 더 완전한 금융 시장 정보의 공개, 즉 ‘투명성 강화’를 주문하죠. 말하자면 부유한 개인 자산가나 헤지펀드 매니저 같은 금융 소비자들이 골드만삭스의 창구에 가서 고위험 고수익 금융 상품을 구매할 때, 은행 직원들의 사탕발림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고 더 신중하게 그 상품에 대해 알아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금융 상품에 관한 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는 겁니다.

장하준 : 정보가 더 많이 공개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금융 상품들은 그 자체가 너무 복잡하거든요. 예컨대 CDO(부채담보부증권) 같은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세요. 누가 집을 사려고 모기지 회사로부터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경우 거기에 필요한 서류만 해도 수십 매는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모기지 대출 계약을 수천 개씩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는 그 패키지를 담보로 MBS(주택저당증권)라는 파생금융상품을 만들고, 그런 MBS를 수백 개씩 패키지로 묶어서는 그 패키지를 담보로 CDO라는 2차 파생금융상품으로 만들어 내잖습니까? 그런 단계 단계마다 얼마나 많은 정보와 복잡한 수학 계산식이 적용되었겠어요? 영국 중앙은행에서 일하는 앤디 핼데인(Andy Haldane)이라는 경제학자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금융 소비자가 CDO 스퀘어를 구입하면서 그 상품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무려 10억 페이지에 이르는 관련 서류를 읽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게 가능할까요? 아무리 투명하고 정확하게 정보가 공개된다 해도 이건 소비자가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에요. 심지어 MBA 학위를 가진 금융 전문가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금융 상품이 만들어진 겁니다.

정승일 : 게다가 보다 투명한 정보의 공개라는 해법은 앞서 우리가 비판했던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요. 말하자면 복잡한 주가-연계 파생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 직원이 고객에게 ‘고객님이 구입하려는 금융 상품의 모든 정보와 투자 위험성은 상품 안내서에 다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상세히 읽어 보신 다음 거기에 동의하시면 여기 맨 아래의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 난에 서명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객이 거기에 서명하는 순간 고객은 그 투자로 인해 발생할 모든 미래의 손실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거죠. 이런 경우 나중에 법정에 가서 ‘증권사 직원이 나를 속였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판사가 손을 들어 주지 않을 겁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전에 우리나라 은행과 증권사들이 중소기업들에게 팔았다가 법정 소송으로 비화한 환율-연계 파생금융상품 키코가 그렇고,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사기 혐의로 소송까지 당한 CDO도 그렇고,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이 전제된 금융 상품의 판매에 대해서 법원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앞으로 ‘더 많은 정보 공개’가 규정되면 월스트리트의 금융 회사들은 법정 소송에서 더 유리해질 겁니다. 왜냐하면 투자자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었고, 따라서 그 투자의 위험을 더 확실히 알았는데도 그 금융 상품을 구입했으니 판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고 주장할 테니까요. (하략)

장하준 : 파생금융상품 같은 건 사회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잠재적 무기’로 간주해 금융 감독 당국이 면밀하게 검사한 뒤 ‘이 금융 상품은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효용이 있겠다’고 판단하여 판매를 허가하기 전까지는 원칙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건 마치 새로운 의약품을 출시할 때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면밀하게 심사해 그 출시 여부를 허가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이종태 : 그런데 그렇게 강력하게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하면 뭐가 좋은가요?

장하준 : 우선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어요. 첫째, CDO처럼 너무 복잡해서 금융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상품이 사라지기 때문에 금융 시장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실물경제를 부양할 수 있어요. (중략) 만약 파생금융상품을 엄격히 규제해 금융 투기 수익을 떨어뜨리면 자금이 장기적 실물 투자 쪽으로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월스트리트와 한국의 금융사들은 이런 규제에 반대하는데, 그건 앞으로도 계속 파생금융상품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정승일 :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과 영국의 엘리트들과 경제학자들은 정보 공개를 강화하고 금융 사기를 엄단하는 등의 금융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기존의 금융 자본주의를 잘 수리해서 쓰면 되지 그걸 꼭 폐기할 필요까지야 없다는 거죠. (중략) 과연 그럴까요? 앞에서 CDO와 키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진 부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왜 금융 소비자들은 자기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런 파생금융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했느냐는 겁니다. 그 이유는 고수익을 약속하는 금융 상품이었기 때문이에요. 고위험이라는 게 좀 불안하긴 하지만 눈앞의 고수익에 정신이 팔린 거죠. (중략)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경제 주체들이 이렇듯 단기 수익성에, 재테크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고, 그게 바로 금융 자본주의, 주주 자본주의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단기주의를 강하게 규제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결국 문제는 자유시장에 대한 맹신!

장하준 : 보수파든 개혁파든 정보 공개와 투명성 강화 정도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여전히 시장 경제의 효율성과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환상이 있기 때문인데, 이건 정말 오산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금융 개혁은 말하자면 금융 시장의, 금융 자본을 위한, 금융 자본에 의한 금융 개혁에 불과해요. 말하자면 금융 시장이 계속 돈을 더 잘 벌기 위해 약간의 수리를 하는 금융 개혁이지, 경제의 다른 부분을 도와주려는 금융 개혁이 아니라는 겁니다. 금융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경제 주체들이 단기주의 또는 단기 수익성 지상주의에 물들어 일반 기업조차 생산적 투자는 별로 늘리지 않고 재테크에 열중한다는 데 있어요. 이렇게 되면 실물경제에서 장기 투자도 잘 일어나지 않고, 그에 따라 일자리는 계속 불안해지기만 합니다. 그 결과 삶 자체가 불안해지면서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만 찾으려 하게 되고요. 지금 우리나라만 해도 좀 똑똑하다는 학생들은 다 의사, 변호사만 되려고 하는 게 그래서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금융 시장의 투명성 좀 높이고 부패 줄인다고 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런 식의 개혁이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국내외 금융 시장의 오작동을 조금 막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 여전히 금융 시장의 기본 논리를 수용하고 있는 거니까요.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중에서 발췌 재편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저자
장하준, 이종태, 정승일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3-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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