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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장하준 교수가 한국경제에 대해 작심한 듯 거침이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를 가리지 않는 냉철한 비판과 분명한 대안이 함께 있고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책 내용 중 우리가 배우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스위스’의 사례 소개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스위스를 ‘알프스의 요새’라고 라고 하는 진짜 이유는?  

이종태 : 많은 분들이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이 훨씬 빠르다고 주장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생산성 향상이 빠른 서비스 부문에 투자를 집중해야 국민 경제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장하준 : 그게 모두 미신이에요. 생산성 향상이 가장 빠른 부문이 제조업이라는 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이 서비스업보다 빠르다는 건 아니에요. 평균적으로 보면 제조업의 생산성이 더 빠르게 향상된다는 거죠.

정승일 : 최근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경제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그 나라의 제조업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리스는 유럽 통합 이후 EU 지역 내에서 자유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국내 제조업을 거의 포기하였고, 그 결과 관광이나 해운 등으로 특화되고 있어요.

 장하준 : 남유럽 중에서 스페인은 유럽 통합 이후 제조업이 더 발전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 유럽 다른 나라의 기업들이 스페인에 들어가 공장을 세운 덕분이에요. 스페인이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편이라 임금이 낮았거든요. 또 스페인은 제조업 발전을 목표로 나름대로 산업 정책을 수행했습니다. EU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회원국에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명목으로 제공하는 보조금도 받았고요. 그러나 그리스는 이런 정도의 산업 육성 정책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예전부터 강력했던 해운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이 기울면서 관광업으로 먹고살게 된 거죠. 어떤 나라든 자기보다 발전한 나라와 경제를 통합해서 제조업을 발전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한미 FTA, 한-EU FTA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이거예요. 어떤 사람은 경제 통합의 성공 사례로 EU를 드는데, EU는 FTA에 비해 상당히 강도 높은 경제 통합입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에는 EU가 보조금도 주고, 언어 문제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자기 나라 경제가 기울면 사람들이 다른 EU 회원국으로 이민 가서 취업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미 FTA와 한-EU FTA는 그렇지 않잖아요. FTA 때문에 산업이 망하면 우리 노동자들은 어느 나라로 가야 하죠? 유럽이나 미국이 ‘너희 나라에 실업자가 많이 생겼으니 우리나라에 와서 일해라’고 하겠어요? 그건 고사하고 보조금이라도 주나요?

 정승일 : EU가 비교적 강한 경제 통합이고 가난한 회원국에는 EU 보조금까지 주는데도 한계가 명백해요.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경우 EU 내의 자유 무역 때문에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의 무역에서 매년 수백억 유로의 적자를 보는 형편이니까요. 이들 나라가 농업이나 관광, 해운 같은 서비스업으로 특화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그래서 지금 같은 곤경에 처한 건데, 그렇다고 EU가 독자적인 재정 지원을 할 수도 없어요. 앞에서 말했듯이 EU는 통화만 통합했지 재정은 통합하지 않았거든요. 비교적 강한 통합인 EU마저 그리스 위기를 놓고 이런 한계에 직면하여 쩔쩔매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무작정 개방과 FTA를 외치니 큰일이에요.

장하준 : 스위스는 냉철하게 따져 보고 국익에 어긋나는 경제 통합에는 참가하지 않아요. EU는 농업을 엄청 보호하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스위스는 그 수준이 부족하다며 EU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농업에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의 뿌리는 산촌의 농민이다, 이들이 사라져 스위스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면 개방하지 않겠다, 개방하지 않아 생기는 불이익은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거죠.

정승일 : 스위스나 스웨덴 같은 강소국을 연구하는 국제학자들이 스위스를 ‘알프스의 요새’라고 부르는데, 그 요새를 지키는 건 군인이 아니라 농민이라는 말이네요.

장하준 : 한국도 아주 일부는 스위스 식으로 하고 있는 셈이죠. 국민이 비싼 한우를 사 먹어 주고 있잖아요. 우리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서요.

이종태 : 스위스는 정말 신기한 나라군요. 한국에서는 한미 FTA 찬성하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북한 같은 폐쇄 국가가 되고 싶냐?’고 공격하는데, 스위스는 이웃 나라가 거의 모두 가입했는데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가입하지 않는다니…. 그런데 EU에서 빠지면 무역에서 소외될 위험은 없나요?

장하준 : 그 점에서는 또 스위스가 엄청나게 개방적인 나라예요. EU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다른 종류의 무역 협정들을 유럽 나라들과 많이 맺어 두었거든요. 이런 면까지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EU에 가입하지 않은 거겠죠. 어쨌든 여러 면에서 스위스는 특이한데, 폐쇄적인 면도 굉장히 많아요. 그러는 게 이해가 가긴 해요. 스위스 주변에 강대국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조건 개방해서 이 나라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요? 벌써 독일과 프랑스가 나눠 가졌죠. 그래서인지 스위스에서는 지금도 외국인이 부동산을 취득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영국은 부동산 부문도 개방해서 런던의 고가 주택 절반 이상이 외국인 소유라고 할 정도인데, 스위스에서는 제네바의 UN 본부에서 10년씩 일하는 사람들도 집 사기가 힘들어요.

그러면서도 제조업 강국이에요. 흔히 스위스는 은행이나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대학 진학률은, 요즘엔 좀 늘었다고 하지만 다른 OECD 나라들의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이에요. 그러고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고요.

정승일 : 스위스는 기업지배구조도 대단합니다. 소액주주들이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러면서도 소액주주들로부터 원성이 나오지 않도록 치밀하게 그 규칙들을 짜 놓았다고 해요. 또 스위스의 대기업과 은행은 겉으로는 다 독립된 회사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끼리 거미줄처럼 복잡한 순환 출자 관계로 엮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인근 강대국의 자본이 어떻게 인수할 방법이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거죠. 지금도 그렇다고 하고요. 이런 면에서도 스위스를 알프스의 요새라고 부른다는군요.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본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저자
장하준, 이종태, 정승일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3-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주의『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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