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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영이 본 베트남의 맨얼굴 - <사바이 인도차이나>

맛있고 느긋하고 편안한 베트남

 

 태국의 방콕, 빠이, 라오스의 방비엥, 씨판돈, 캄보디아의 라따나끼리에서 지내다 친구가 베트남 호치민에 온다는 말에 고민없이 친구를 만나러 호치민으로 갑니다. 호치민은 정말 맛있는 곳이었다는데요. 여행 온 친구와 맛있는 곳, 안전한 곳만 다니느라 호치민에서 사고는 없었답니다. 다만 옷가게에서 못 알아듣는 척 맞지도 않는 옷을 파는 주인 아주머니와 포기를 모르는 복숭아 파는 아주머니의 공세에는 혀를 내두른 정도였지요.

‘호치민’이라는 도시를 소비한 후 다시 배낭 메고 일하러 떠난 곳은 ‘달 랏’이라는 곳입니다. 호치민에서 8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산 도시입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호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휴양마을로서 베트남 사람들한테는 신혼여행지로도 각광 받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달 랏에 반해 베트남 15일 무비자 일정을 탈탈 털어 넣게 되지요. 베트남의 맛있고 아름다운 장면과 그 안에서의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사바이 인도차이나>에는 베트남 외에도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사진의 저작권은  <사바이 인도차이나> 저자 정숙영 씨에게 있습니다. 무단 도용하시면 안 됩니다. 스크랩시 반드시 본문 전체 스크랩으로 해 주시고, 별도로 사진을 사용하지 마세요.

 

 

  

   

왜, 사람은, 하루에 세 끼밖에 먹을 수 없을까

 

무엇보다 호치민은, 맛있었다. 베트남 음식이 동남아 음식 중 가장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한다. 평소 한국에서도 일명 ‘쌀국수’, ‘월남쌈’ 등으로 불리는 베트남 음식을 즐겨먹곤 했지만, 본고장에서 한 끼 걸러 한 번 이상 쌀국수를 먹고 나니 생각이 확 달라져 버렸다. 이것이 정녕 베트남 쌀국수라면, 지금까지 내가 먹어온 것은 단언컨대 그냥 쌀라면이었다. 베트남 음식부터 프랑스 음식, 호텔 라운지와 카페, 길거리 음식까지. 우리는 그 모든 걸 휩쓸며 감탄하고 즐기고 혀의 기억에 아로새겼다. 왜, 사람은, 하루에 세 끼밖에 먹을 수 없느냐고 한탄하면서.

 
그래서 나와 B양의 기억 속에 호치민은 꽤나 매력적이다. 맛있고, 느긋하고, 편안한 도시로 남았다. B양은 주위 친구들에게 여행지로 호치민을 추천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호치민을 이런 식으로 기억하는 여행자는 많지 않다. 버젯 트래블러라면 더더욱.

나는 그 후 호치민을 다녀온 여행자들을 적지 않게 만났고, 그들에게 나의 기억과 전혀 딴판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지럽고 시끄러우며 딱히 매력적인 볼거리도 없는 곳. 특히 호치민에서 위험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쎄옴(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처음 불렀던 돈보다 바가지를 씌우기에 항의했더니 갑자기 동네 쎄옴 기사들이 죄 몰려와서 때리려고 했다는 얘기, 밤늦은 시간에 여행자 펍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조금 어두운 길을 걷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돈과 귀금속을 모두 뺏겼다는 얘기. 사소한 바가지와 불친절과 말싸움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왜 이런 기억의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 319쪽

  

   

그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쎄옴 안 탔다. 도보 아니면 택시였다. 호텔에 비치된 정보 책자에서 찾아낸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한 끼 식사에 그네들 한 달 월급에 준하는 돈을 퍼붓기도 했다. 술도 주로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마셨다. 그리하여 내가 호치민에서 4박 5일 동안 쓴 돈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20일 가까이 보낸 비용을 초과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치안 좋은 번화가에서 돈 넉넉하게 쓰면서 즐기는 대도시. 게다가 마음 맞는 친구도 같이 있다. 도대체 나에게는 호치민이 싫을 이유란 없었던 거다.

 

흔히 그런 말들을 한다. 돈만 있으면 서울처럼 살기 좋은 데가 없다고. 이 말은 딱 서울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돈 있으면 대도시는 다 살기 좋은 것 아닐까. 대도시의 많은 것은 가격과 품질이 1차 함수의 직선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대도시는 돈과 욕망을 먹고 생존하고 성장하는 생태계니까. - 320쪽

 

 

 

 

 

달랏과 사랑에 빠지다

 

나는 결심했다. 베트남 무비자 체류 가능 기간은 총 14박 15일. 이미 호치민에서 4박 5일을 보내고 왔으니 남은 시간은 10박 정도. 그 10박 내내 달랏에 머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과 연애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인연이 따로 있다는 것, 한눈에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 헤어지고 나면 미련이 많이 남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둘도 없는 낙이라는 것. 심지어 이런 점까지 비슷하다. 어릴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좋지만, 나이가 좀 들면 나한테 잘 맞는 사람 찾아서 푹 오래 만나는 게 좋다는 것.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을 하면 할수록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면 그냥 주저앉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그리고 나는 또 그런 곳 하나를 찾아냈다. 달랏. 베트남 정부가 허락하는 우리 인연은 열흘뿐.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해 보리라. 물론 법 좀 어기면 더 머물 수도 있겠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싶다. 부모가 반대하는 사랑도 힘든 법인데 하물며 나라가 그렇다는데야, 뭐. - 344쪽

 

 

 

 

 

달랏 쭝깡호텔 조식은 엄마의 마음

 

호텔 프런트의 난데없는 전화. 바로 아침 먹으라는 얘기였다.

그 후로 나는 이 호텔의 아침식사에 적응하는 데 사나흘의 시간을 써야 했다. 대부분의 호텔들이 아침식사를 적어도 10시까지는 운영하는 데 비해 이 호텔은 9시면 어김없이 치워버린다. 음식이 떨어져도 8시가 넘으면 채워놓질 않는다. 어느 날은 8시 10분에 올라갔는데도 국수랑 우유가 다 떨어졌더라. 정상적으로 다 누리고 먹으려면 7시 반 정도에는 가야 한다는 거다. 아니 근데 이런 별 두 개짜리 호텔에는 장기여행자들 많이 묵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기나 하나?

아아. 그거였나. 첫날 아침 먹으라고 깨울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가. 이 쭝깡호텔이라는 곳의 아침 뷔페는 엄마의 마음이었던 거다. ‘밥 먹고 더 자라.’ - 355쪽

 

 

 


닥 비엣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말테다!

 

달랏에서 베트남 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한국인이 밥을 먹으려면 한 가지 밖에 없다. 주는 대로 먹기. 메뉴판을 갖고 있는 식당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영어 메뉴판은 없다. 설령 영어 메뉴판이 있다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닭고기볶음과 밥’, 아니 그러니까 뭐랑 볶은 건데. 그러니까 방법은 하나다.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이 쌀국수 집에서도 그랬다. 가이드북에서 본 바로는 베트남 말로 ‘스페셜 요리’를 뜻하는 단어가 ‘닥 비엣Dac Biet’이라고 했고, 이 쌀국수 집 앞에는 분명 ‘닥 비엣 2만 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들어가서 닥 비엣 달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국수를 한 그릇 준다. 평범한 소고기 쌀국수다. 다 먹고 2만동을 내밀었더니 7000동을 거슬러준다. 아니, 닥 비엣 달라니까?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닥 비엣 달라니까 또 그냥 국수를 준다. 이번엔 여러 가지 고기가 섞여 있다. 아, 오늘이야말로 닥 비엣인가 보다 싶었다. 다 먹고 2만 동을 내밀었다. 5000동 거슬러준다. 아니 닥 비엣. 2만 동짜리 닥 비엣 달란 말이야…

그리고 숙소 옮기기 직전. 또 그 가게로 갔다. 한 마디 또박또박 닥 비엣이라고 하면서 가게 앞에 쓰인 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자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쌀국수를 한 그릇 말아왔다. 고기랑 어묵이 섞여 있고, 국물이 전날 먹은 것보다 조금 탁했다. 아, 이게 진짜 닥 비엣인가 보다. 그제야 만족하고 돈을 냈다.

…5000동 거슬러 줬다. 난 언젠가 그 집의 그노무 ‘닥 비엣’을 먹어보고 말 테다. 나 다음에 달랏 갈 때까지 망하지 마라. 절대로. - 346쪽

 

       


 

 

 

 <정숙영 선생의 삽질에서 얻는 여행 팁> 

 

 

1. 의지의 베트남 아줌마를 만나도 당황하지 마세요.

B양과 동코이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다 어떤 복숭아 파는 행상 아줌마랑 마주쳤다. 우리가 한국말로 떠드는 걸 본 아줌마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 국. 말. 로.

“언니! 복숭아! 맛있어요!”

결국 B양은 약간의 실랑이 끝에 복숭아 500그램을 사고 말았고, 하나 먹고는 다 버렸다. 아아. 아줌마. 십 년 만에 만난 조카한테도 기어이 복숭아를 팔 것 같은, 당신은 의지의 베트남 아줌마. - 331쪽

 

2. 베트남에서 호텔에 여권 두고 오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여권, 잘 챙기세요~

이윽고 저쪽에서 여자 직원 하나가 최고 속력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 여권은 그렇게 내 손에 다시 들어왔다. 마음이 놓이면서, 쪽팔림이 거대 해일처럼 몰려왔다.

“괜찮아요. 아침에 호텔에서 직원들 보니 정신 하나도 없어 보이더구먼.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미국인 할아버지 한 명이 웃는 얼굴로 위로를 해주었다. 그러나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호치민에서 내리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을 피했다.

베트남 여행 중에 숙소에 여권을 두고 나오는 일은 사실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고 한다. 나야 워낙 정신머리를 밥풀 마냥 질질 흘리고 다니는 인간이지만, 차분하다 못해 최강 애늙은이인 한의사 후배 하나도 베트남 여행 중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여간 여행 중에는 정신줄 놓으면 안 된다. 중간에 생각 안 났으면 어쩔 뻔했냐. - 373쪽

 

 

이 또한 일부분일 뿐, 더 많은 베트남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사바이 인도차이나> 안에 가득하답니다.

 


사바이 인도차이나

저자
정숙영 지음
출판사
부키 | 2011-04-15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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