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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영이 본 라오스의 맨얼굴 - <사바이 인도차이나>

꼬인데 없이 푸르른 라오스

 

 

라오스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히는 방비엥.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라는 찬사가 많습니다. <사바이 인도차이나>의 저자인 여행작가 정숙영 씨도 태국 빠이에서 행복한 시간을 지내고 다음 일정은 고민없이 라오스 방비엥이었지요. 알고 지내는 여행가 언니의 블로그에서 “햇살과 초록이 가득한 몇몇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점찍어두었답니다. 래프팅이나 튜빙tubing 같은 수상 레포츠를 즐기지 않는 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사바이 인도차이나>에는 라오스 외에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사진의 저작권은  <사바이 인도차이나> 저자 정숙영 씨에게 있습니다. 무단 도용하시면 안 됩니다. 스크랩시 반드시 본문 전체 스크랩으로 해 주시고, 별도로 사진을 사용하지 마세요.

 

 

 

 

“햇살과 초록이 가득한 몇몇 사진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빠이 다음에 갈 곳으로 여행 시작 단계부터 점찍어둔 터였다. 외국인 여행자들과 강가에서 모닥불을 때고 라오스 명물 맥주인 라오 비어를 마시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도 그 낭만 백 점짜리 그림에 꼭 끼어들고 싶었다. -147p”

 

 

 

 

 

 

 

 

방비엥에 이어 라오스 최남단에 위치한 씨판돈으로 갑니다. 4000개의 섬이 있는 마을 씨판돈, 하루에 전기가 3시간 밖에 안들어 오고, 돈이 똑 떨어진 그녀에게 꼭 필요한 현금인출기 같은 건 기대도 할 수 없는 마을이지만 메콩강으로 떨어지는 마법에 걸린 듯한 노을은 그녀의 발목을 잡습니다.

 

 

 

  

- 방비엥의 명물 튜닝

  

 

엷고 뜨거운 푸른빛 하늘 위로 구름이 낮게 깔리고

 

단지 국경을 하나 건너왔을 뿐인데 태국과는 또 다른 질감의 푸름이 가득했다. 자연이란 태초에 이런 것이었겠지, 싶은 꼬인 데 없는 푸름. … 버스는 더웠다. 에어컨은 분명 작동하고 있었으나 냉기는 배기구 주위에서만 조금 맴돌 뿐이었다.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 나라의 여행자 편의라는 게 생각 이상으로 열악하다는 건 이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알 것 같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이 나라가 통으로 싫어지기는 너무 아까웠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농촌의 풍경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모난 곳, 튀어나온 곳 없이 펼쳐진 나른한 벌판 위로 야자수가 함부로 자라 있었다. 엷고 뜨거운 푸른빛 하늘 위로 구름이 낮게 깔리고 그 아래로 소가 한가롭게… 아, 이놈의 소. 버스가 속력 좀 내려고 치면 꼭 소떼가 지나갔다. 어떤 소떼는 버스가 지나가든 말든 그 커다란 버스가 닭이라도 되는 양 흘깃 보고 만다. -153p

 

 

 
- 방비엥의 꼬인 데 없는 푸른 마을 풍경

 

 


 

라오스 방비엥에 웬 동강?

 

신기한 일이라면 신기한 일이었다.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또 산 넘고 물 건너 국경 넘어 또 굽이굽이 산을 건너온 곳이건만, 이곳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저 기암괴석. 저 산세. 저 푸르름. 저 강물. 영락없는 강원도 영월하고도 동강이었다.

음, ‘영락없다’는 건 좀 그렇다. 동강을 닮긴 했지만, 딱 거기만 닮은 건 아니니까. 한탄강도 좀 닮고, 단양도 좀 닮았다. 한국에서 경치 좋다고 이름난 물 언저리라면 대충 다 갖다 붙여도 비슷할 듯했다. 어허라. 이곳은 중국의 계림과 닮았다 하여 일명 ‘소계림’이라 하는 곳 아니던가. ‘산속에 있는 하롱베이’라는 얘기도 들은 바 있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숨겨진 비경이라느니 마지막 천국이라느니 호들갑 섞인 찬사도 들은 적 있다. 어찌 되었던 이곳 풍경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산속 풍경으로서는 아주 이색적인 것이라는데, 그 이색이 이토록 한국스러운 것인 줄은 몰랐다. 외국인 집에 놀러갔더니 자기네 집 가보라며 자랑하는 게 우리 집 장독인 거다. 외국인 친구들과 국내 여행할 일 있으면 꼭 동강을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157p

 

 

 

- 동강을 닮은 방비엥의 강

 

 

 

 

라오스 씨판돈, 사람의 길, 소의 길, 자연의 길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도로란 ‘사람, 차 따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이라는데, 과연 이 길에서 사람이나 차가 ‘잘’ 다닐 수 있을까. 사람들의 터전 가운데에 좁고 가느다란 양보를 받아 만든 듯한 이 길로 차가 다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싶었다. 게다가 이 길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길은 소의 길이기도 했다. 소들은 길을 건널 뿐 아니라 길 곳곳에 길게 누워 차가 지나가면 ‘넌 뭐야. 넌 무슨 짐승인데 그렇게 못생겼어?’ 하는 눈길로 심드렁하게 쳐다보았다. 길을 점거한 것이 아닌, 그냥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태도였다. 소뿐만이 아니었다. 물소, 염소, 닭, 개, 오만 동물들이 길과 가축우리와 사람 터전의 경계 따위는 처음부터 모르는 태도로 유유히 노닐고 있었다. 아아. 그럴 의도 따위는 전혀 없었건만, 나는 어느 평화롭고 게으른 왕국을 거칠고 못생긴 동물을 타고 침범한 침략자가 되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도 처음에는 왜구들이 자기들 명나라 치러 갈 테니 길만 비켜 달라 그랬다는데, 지금 나는 씨판돈 갈 테니 길만 비키라며 그들의 평화를 무엄하게 방해한다. 그깟 섬 4천 개 보겠다는 나의 욕망 따위가 도대체 뭐라고. -204p

 

  

 - '이 곳의 원래 주인은 나야'라는 표정으로 평화롭게 있는 씨판돈의 소

 

 

 

기꺼이 하루를 더 머물게 한 돈 뎃의 마법같은 노을

 

선착장 근처의 여행자 식당에 들어가 강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하늘이 어두운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밥을 먹으며 짬짬이 강을 바라보았고, 조금 후에는 강을 바라보는 짬짬이 밥을 먹었으며, 그것보다 조금 더 후에는 아예 수저를 놓아버렸다.

마법 같았다. 강렬한 빛의 붉은빛과 보랏빛, 그리고 푸른빛이 하늘을 감싸고, 그 아래로는 하늘빛에 물든 강물이 세 가지 빛깔을 혼합하며 출렁인다. 배들은 가끔씩 그 현란한 색의 혼합을 가로지르며 긴 자취를 남긴다. 그 자취를 홀린듯 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온통 강렬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마법에 걸린 건 내 쪽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마법이 아니고서야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까지 붉은색이 가득할 수가.

그 노을을 보며 나는 마음을 바꿨다. 돈 뎃에 하루 더 있기로. 심심해도 좋다. 할 일 없어도 좋다. 저 노을만 또 한 번 내 앞에 내려준다면, 나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는 온통 기다림으로 가득 찰 수 있을 테니. 나이가 먹을수록 설레는 일이 줄어간다. ‘그런 거 예전에도 봤어.’, ‘다 아는 거야.’ 같은 허세와 교만은 조금씩 느는 것 같은데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의 설렘은 나날이 줄어간다. 나는 돈 뎃의 노을 앞에서 너무도 설레었다. 노을 같은 거 보고 설렐 줄은 나도 몰랐다. 다시 한 번 그 처음 본 붉은빛을 보고 싶었다. 한 번쯤 더 설레 보고 싶었다. -215p

 

 

 - 마법에 걸린 듯 메콩강으로 떨어지는 너무나 붉은 노을

 

 

 

 <정숙영 선생의 삽질에서 얻는 여행 팁> 

 

 

1. 라오스 씨판돈 가는 티켓에는 돈 뎃이라고 쓰여있을 거에요. 헷갈리지 마세요.

“너 돈 뎃 가니?”

“돈 뎃? 아니 나는 씨판돈 가는데.”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뭐 이런 멍청한 생물이 다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무심코 내 티켓을 보았다. 만 하루를 펄럭이며 다닌 나의 티켓. 그곳에 있는 나의 최종 목적지는 ‘씨판돈’이 아닌 ‘돈 뎃’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K군이 찢어주고 간 『론리 플래닛』을 펼쳐보았다. ‘씨판돈’은 섬이 4천 개 있는 동네이고, 가장 큰 섬 세 개가 돈 콩, 돈 뎃, 돈 콘이란다. 돈 뎃은 크기는 두 번째이나 각종 여행 편의 시설은 가장 잘되어 있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섬이란다. 즉, 나의 대답은 상봉동 터미널 가는 티켓 들고 앉아서 ‘너 상봉동 가니?’라고 하자 ‘아뇨 저는 돈 벌러 서울 갈 거예요.’라고 답하는 산골소년 수준이었던 거다. -200p

 

2. 그리고 라오스 씨판돈에는 현금인출기가 없어요. 미리미리 현금 준비하세요.

아. 그렇구나. 저 선착장의 상태와, 이 배의 상태와, 저 노숙자 봉두난발 같은 수풀이 무성한 섬의 면면을 보고는, 아주 절실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진 듯한, 그런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연, 저 섬에

…ATM이 있을까?

-208p

 

 

이 또한 일부분일 뿐, 더 많은 라오스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사바이 인도차이나> 안에 가득하답니다.

 


사바이 인도차이나

저자
정숙영 지음
출판사
부키 | 2011-04-15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글쟁이의 여름 낭만? 좌충우돌 생계형 배낭여행![노플랜 사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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