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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사만다, 샬롯! 긍정의 함정에 빠지다 : 긍정적인 당신, 그래서 정말 행복한가요? - [긍정의 배신]
cizifus 2011. 3. 29. 11:34긍정적인 당신, 그래서 정말 행복한가요?
-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로 살펴보는 '긍정'문화와 <긍정의 배신>
#1. 샬롯은 정말 노력했어요! 친구인 제가 훨씬 더 잘 알아요!
‘행복한 결혼 생활’, 그러니까 우리 말로 바꾸면 '현모양처'가 꿈인 샬롯. 그러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노력하고 애써도 연애도 결혼도 잘 되지 않는 그녀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기 위해 연애&결혼 전문 강사의 강연을 들으러 갑니다. 혼자 갈 자신이 없어 절친한 친구인 캐리를 억지로 끌고 갑니다.
강사는 열정적입니다. 강연에 참석한 참가자들에게 간절히 바라며 계속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샬롯은 망설이다 강사에게 묻습니다. 자신은 정말 노력했고 애쓰고 있는데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그러자 강사는 너무나 단호하게 더 노력하라고, 더 간절히 원하라고, 아직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상태라고 말하죠.
의기소침해진 샬롯, 그대로 스르르 주저앉으려는데 캐리가 다시 손을 들고 강사에게 말합니다. 내 친구 샬롯은 내가 훨씬 더 잘 아는데! 옆에서 지켜봐서 아는데! 샬롯은 정말 노력했다고! 그것은 친구인 내가 보증한다고!
강사는 당황하고, 강연장 내엔 묘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샬롯은 강사의 연설보다 캐리의 말에 진심으로 위로받습니다. 아마, 샬롯은 다시는 그런 강연장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2. 허니, 지금은 내 감정에 솔직하고 싶어!
유방 확대 수술을 하러 간 사만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최고의 의사를 찾아 예약을 했고,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암에 걸린 것이 두렵다, 혹시 죽으면 어떡할까, 두렵다. 이야기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이야기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인 캐리는 사만다의 이야기를 회피하며 별 거 아닐 거야,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밝은 얘기만 하려고 합니다.
사만다는 캐리의 손을 잡으며 아마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허니, 나는 지금 무척이나 무서워. 네가 불편하고 슬프더라도 나의 이 솔직한 감정을 들어주었으면 해.”
캐리는 애써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고 하지만, 사만다는 이 또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응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친구는 대책 없는 위로만 퍼붓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캐리는 자신만을 위해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이후 캐리는 남자친구가 사만다의 유방암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엄청 화를 내지만, 남자친구는 자신이 암에 걸린 친구를 잃었다며, 애써 결과를 외면하다가 나중에 더 상처받을까봐 걱정되어서 그런다고 하죠. 캐리는 현실 회피형인가요.)
#3. 아, ** 더워 미치겠네!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사만다는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독한 항암제로 머리가 빠지자 과감하게 머리를 삭발하기도 하죠.
뉴욕의 잘 나가는 홍보담당자이기도 한 사만다는 핑크리본 행사(유방암의식향상캠페인)에 연사로 초대받습니다. 사만다는 가발을 쓰고 그곳에 참석합니다. 물론 사만다는 그곳에서 유방암을 잘 극복하고 있다, 유방암은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 유방암 때문에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등의 다른 연사들이 흔히 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었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연설을 기다리는 동안 뜨거운 조명과 항암치료의 약물 효과, 민머리를 가리는 가발까지 더해져 너무나 더운 거예요.
사만다는 준비해간 연설 대신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유방암의 실체를 보고 싶다면 여러분 주변을 보세요. 세탁소를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내 옆의 사람일 수도 있고, 당신 어머니일 수도 있고..."
여기까진 좋았어요! 그런데 사만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나같은 사람이 유방암 환자일 수 있다. 아, **(그러니까 이건 욕입니다) 더워 미치겠네. 그러니까 이 (리본)은 이렇게 힘든 내가 받을 자격이 있다" 하면서 가발을 벗죠.
사만다의 욕설 섞인 솔직한 연설에 장내는 잠시 조용합니다만, 꼭 저요! 저요! 이러면서 손 드는 아이처럼 장내의 여러 사람이 벌떡 벌떡 일어나 가발을 벗습니다. 그 순간, 장내의 유방암 환자들의 표정에 해방감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섹스앤더시티 미국판 dvd 표지)
이미 눈치채신 분 많으시죠? 본 지가 오래되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사랑받았던 <섹스앤더시티>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것입니다.
<긍정의 배신> 을 읽는 동안 자꾸 제가 좋아했던 <섹스앤더시티>가 생각났어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만연하는 '긍정주의' 강요가 어떤 식으로 개인에게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는지, <섹스앤더시티> 여러 장면을 통해 잘 알 수 있었거든요.
이 세 장면의 공통점은 바로 미국에 만연한 ‘긍정주의’ 문화를 잘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잘 나가는 화랑의 능력 있는 똑똑한 큐레이터 샬롯이지만 “아직 당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자신을 탓하며, 재기발랄하고 영리한 캐리 또한 친구의 암 소식에 무조건 잘 될 거야, 죽지 않을 거야, 라는 현실 회피를 하며 친구의 감정을 충분히 살피지 못합니다. 이보다 더 쿨할 수 없는 사만다조차 핑크리본 행사에 참석해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유방암은 나의 축복’ 운운하는 연설을 할 뻔 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정말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걸까요.
우리나라도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같은데요.
‘긍정주의’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기만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하고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도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긍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린라이크 역시 유방암 투병을 하며 ‘긍정’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암을 선고받고 비관의 나락으로 떨어져 마땅할 듯한 투병자들 사이에 의외로 낙관과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한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지요. 암이야말로 인생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선물이라는 투병자들의 수기, 불행하다고 느끼면 죄의식이라도 가져야 할 만큼 ‘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일상적 충고들, 한술 더 떠 단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입증되지 않은 과학까지 결합해 핑크 리본과 곰 인형으로 상징되는 유방암 문화를 형성하는 것에 저자는 분노했습니다.
바버라 에린라이크는 미국에서 연간 200만 내지 300만 명의 여성들이 다양한 단계의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는 가운데 유방암 환자를 돕는다는 명목의 각종 긍정 운동의 산업 규모가 엄청나다는 사실, 그리고 과학과 의술 및 의료 제도를 통해 정확히 접근해야 할 암 치료 과정이 긍정의 주문에 묻혀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보았어요. 유방암 문화는, 암 환자가 불행에 즐겁게 굴복해야 하며 만일 병이 낫지 못한다면 그것은 치료 체계나 현대인들의 생활환경, 각종 음식물의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긍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자기 책임 강조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라는 것이지요.
바버라 에린라이크는 더 넓게 보았습니다. 아주 자세히 관찰했지요.
그 결과물이 바로 <긍정의 배신>(원제 Bright sided)입니다.
<긍정의 배신>은 자본주의와 철저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를 현실과 역사, 그 양산자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분석하고 파헤친 수작입니다. 출간 직후 단박에 미국 아마존 사회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독자들 사이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지요.
구조 조정이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이 선호하는 강력한 동기 유발 산업을 낳았고 ‘긍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지식 형태로 학계에까지 침투했습니다. 긍정적 사고의 세력권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로 뻗어나가 우선 영어권에, 이어 중국, 인도는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확산되었지요. ‘긍정주의’는 위기의 징후에 눈감게 만들어 금융 위기를 비롯한 사회적 재앙에 대비하는 힘을 약화시켰으며 더욱 가혹한 것은, 사회적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림으로써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신자유주의의 경제 통념을 비판하고,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회와 공동체의 철학적 가치관을 재검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긍정의 배신>은 우리 시대의 상부구조를 형성하는 사회문화적 신념 체계를 정면 겨냥함으로써, 신자유주의 비판의 빈 공백을 채워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당신,
오늘도 각종 자기계발서를 들추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당신,
그런데,
정말,
행복한가요.
혹 ‘긍정’이 당신의 발등을 찍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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