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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에서도 이제 단지 돈이 아니라 ‘행복’을 말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행복, 경제학의 혁명』 편집자 노트
돈이 좀 더 있으면 왠지 행복해질 것 같지?
예전에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2등 당첨 집’이라는 현수막이 붙은 로또복권 판매점을 본 적이 있다. 뭐 몇 등 당첨 집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건 복권 가게야 워낙 많으니 별다를 것도 없다 싶었다. 그런데 그 위에 붙은 문구가 제법 인상적이다.
‘이 길밖에 없다!’
실소를 금치 못했냐고?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몇 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겨 다녀야 했고, 마침 짧은 실직 상태에 있었던 나는 그날 ‘점점 나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 애가 다 크려면 한참 남았는데’ 하는 상심에 젖어 걷고 있던 터였다. 그러니 그 말이 그저 우습게만 보일 리가 없지. 정말 그 길밖에 없겠다 싶어 나는 바로 복권을 … 산 게 아니고, 길몽을 꾸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몇 주 후 정말 길몽(이라고 스스로 믿은)을 꾸었고, 나는 주저 없이 복권을 샀다. 결과가 어땠냐고? 지금 여전히 이 자리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 보면 모르겠나?
뭐 그렇다고 마음이 엄청 불행한 건 아니다. 땀 흘려 노동하며(뭐 하루 대부분 앉아 있으니 사실 정말 땀을 흘리지는 않는다)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나름 만족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순 있겠지. 복권이 당첨됐다면 좀 더 행복해져 있을까?
행복을 정말 수치화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고 묻는다면 숱한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충고해 준 탓에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런 책들도 지난 세월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러니 ‘행복’을 주제로 한 책이 새삼스러울 건 없겠다 싶다.
다만 이 책, ‘경제학’에서 행복을 말한다고 하니 약간 낯설게 여겨진다. 아니, 낯선 걸 넘어 약간은 미심쩍기까지 하다. 이봐, 내가 아는 경제학은‘돈’에 관한 거라고. 오랜 세월 내 마음을 그토록 괴롭혀 온 돈 말이야. 그런데 무슨 행복에 대해서 말하겠다는 거야. 거기다가 ‘혁명’ 운운하고 있으니 원…. 이야기가 점점 실없어지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의 저자 브루노 프라이는 ‘행복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선구자다. 물론 경제학자다. 그러니 나는 몰라도 이 저자만큼은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꽤 방대한 연구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순화시켜 요약하자면 이렇다.
‘행복’을 측정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들의 ‘주관적 안녕감’을 통해 말이다. ‘주관적 안녕감?’ 이건 또 뭔 소리야. 쉽게 말하면 개인이 느끼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직접 설문을 통해 측정하고, 이를 경제적 지표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단지 ‘경제적 효용’만을 중시했고, 또 이건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 이게 왜 중요한가? 비용과 편익에 따른 효용의 문제로만 경제 행동을 치환할 경우, 거기에는 각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경제적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거다. 그러니 경제 이론이나 정책이 경제 행동 주체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되는 거고.
책을 다 만들고 나서도 사실 아직까지 행복을 정말 수치화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자가 ‘혁명적’인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조금 느낄 수 있겠다. 어쨌거나 뭔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경제학’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개인’의 실질적인 요구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돈’이라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데
저자는 그가 ‘행복연구’라고 부른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굉장히 중요한 통찰을 안겨준다. 우리가 ‘돈, 돈, 돈’ 하지만, 사실 사람은 ‘소득’이라는 결과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절차’에서 더 많은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는 거다. 뭐 사실 “과정이 중요한 거야”라는 말은 살면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니 대단히 새로운 발견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경제학’ 분과에서 엄밀한 조사를 통해 ‘수치화’한 끝에 나온 결론이라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과정의 중요성이 ‘막연한 삶의 통찰’처럼 회자되어 왔다면, 이 책에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설문 결과’로서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사실 나는 더 많은 소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기왕 돈을 벌 거라면 유능감, 유대감, 자율성 같은 내적 가치가 실현될 때 더 행복감을 느껴”라고 말했다는 거다.
저자는 행복연구의 범위를 단지 경제적 소득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TV 시청과 같은 극히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정치 참여 권리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까지 확장한다. 이쯤 되면 그가 말한 행복연구가 단지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아니라, 경제학이 지평을 넓혀 연대해야 할 사회 전 분야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실 경제학은 그래야 하긴 하다.)
사실 이 책은 연구 결과에 대한 보고서 성격도 띠고 있어서 딱딱한 부분도 적지 않지만, 그건 잘 모르겠으면 패스하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해 읽는 것만으로도 일반 독자들이 상당히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돈에만 집중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어디서 행복을 얻는지 집중해 볼 것.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 볼 것.’ 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이 메시지가 인생 처세를 담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선구적 경제학자의 ‘경제이론’이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나도 (이 결심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돈, 돈, 돈’ 하는 마음 좀 다스려야겠다.
-부키 편집실 걸어가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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