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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
경제학자와 함께 한 여름
왼쪽부터 존 갤브레이스, 로버트 루커스, 폴 크루그먼
아침마다 이 책을 들고 센다이의 아오바 산 근처에 있던 아버지의 관사에서 시민 도서관을 향해 내려갈 때는 희망으로 가득했지만, 한나절 책과 씨름하고 무엇 하나 얻은 것 없이 저녁이 되어 터벅터벅 고갯마루를 오를 무렵이면 나는 초조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다시 언덕을 내려갔다.
그 뒤로 케인스라는 이름을 눈에 담을 때마다 아오바 산의 비탈길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초조한 기분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하곤 했다.
이번에 내가 편집을 맡은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의 <닫는 글>의 일부이다. 나는 이 부분을 교정하면서 울컥, 하고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경제학과 출신이지만 차마 다른 이에게 전공을 쉬이 밝힐 수 없을 정도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어렵고 힘들었던 나이기에 위와 같은 저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경제학 울렁증을 드디어 털어내다
봄에 시작했던 이 책의 작업은 두 달여가 지나, 여름을 맞이하는 시기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현대 경제학자 14명의 삶과 이론을 임팩트 있게, 요점만 쏙쏙 모아, 거기다 숨은 스캔들까지 양념으로 곁들여 재미있게 소개한다는 이 책의 콘셉트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아, 이번 작업은 순조롭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경제학자 14명의 삶과 이론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다시 출구를 찾기를 반복했다.
돌이켜 보니 나는 마치 저자처럼 책(교정지)과 씨름하다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무엇 하나 얻은 것 없이 퇴근하고 그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교정지라는 언덕과 마주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페이지를 붙잡고 하루 종일 고민하던 시간, 선배가 검토하고 돌려준 교정지를 보고 내 부족함이 부끄러워 숨고 싶던 시간들 속에서 책 속에 등장하는 경제학자들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들의 결정적 순간을 함께한 기쁨
이 책에서 전쟁과 실업, 불황이 들이닥친 격동의 20세기, 오늘의 세계를 만든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환희와 굴욕의 순간이 펼쳐진다. 책 속에 등장하는 경제학자 14명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은 학자는 게리 베커, 리처드 포스너, 하이먼 민스키였다.
아버지의 시력 상실, 아내의 자살… 연이은 불행 속에서도 가족경제학, 자살경제학 등 경제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게리 베커, 삼성과 애플의 특허권 재판을 맡은 판사인 줄만 알았건만, 사실 ‘부의 최대화가 곧 정의’라는 독자적인 법경제학 논리로 새로운 경제학의 지평을 연 동시에 많은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리처드 포스너, 평생 무명의 학자로 살다 갔지만 2000년대 금융 위기를 예측하며 극적으로 부활한 하이먼 민스키.
‘아니, 이렇게 유명한 경제학자에게 이런 굴욕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처절한 순간, 비주류였던 학자들이 기존 학계에 어퍼컷을 날리며 승승장구하는 통쾌한 순간을 함께하며 어느덧 나는 이들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취까지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아, 대학교 1학년 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아마 경제학이라는 전공을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을 텐데….)
경제학 알러지가 있는 당신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기를
영광과 패배, 환희와 굴욕의 순간을 오가며 14명의 경제학자들과 함께 했던 여름을 나는 결코 있지 못할 것이다.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를 펴내자는 제안을 받고 “학창 시절의 여름방학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할 생각에 마음이 몹시 설렜다던” 저자처럼, 이 책은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부디 독자에게도 이 책이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경제학자들과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부키 편집실 미도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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