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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노인, 남회근을 만나는 기쁨!
남회근 선생을 감히 ‘노인’이라 표현하다니 고얀 일이라고 나무라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남회근, 이라는 이름 뒤에 ‘선생’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것이 왠지 죄송스러울 정도의 ‘거물’이자 중국 및 대만은 물론 일본,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매우 존경받는 스승이니까요. 남회근 선생을 일컫는 수식어도 참으로 많아서 얼핏 생각나는 것만 꼽아도 동양학의 최고수, 대만의 국사, 국학의 권위자, 현대판 공자, 밀종의 대가 등이 있네요. 그야말로 찬사 일색입니다.
하지만 남회근 선생을 굳이 ‘노인’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천천히 말씀드리기로 하고, 먼저 남회근 선생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남회근 선생의 이력을 간략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20세기 초인 1918년에 태어났습니다. 이제 아흔 중반의 나이시니 노인은 노인이시죠?
남회근 선생은 여섯 살부터 전통 방식대로 서당 교육을 받으며 사서오경과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문학, 천문, 역학, 의약, 서예를 두루 배우셨답니다. 각 문파의 무림고수들로부터 권법, 봉술, 검도 등을 익혀 무예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중일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장개석이 있던 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일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불법을 만나 중국에서 불교계 대가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고, 더 깊게 공부하기 위해 3년간 폐관 수행을 하며 대장경을 독파했습니다.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들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받고 수행 경지를 인증받으셨습니다.
그 후에는 곤명으로 가서 운남대학과 사천대학에서 강의했고, 고향으로 돌아가 청나라 때 편찬한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여산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했대요.
1949년에 대만으로 건너가 학생과 일반인, 수행자 등을 대상으로 유불도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그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냈습니다. 대만을 시작으로 홍콩, 미국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으며 현재는 중국에 머물고 계십니다.
남회근 선생의 삶의 궤적을 간단히만 짚었는데도 숨이 차네요. 유교, 불교, 도교 등 삼도는 물론이고 무예에도 조예가 깊으시다니 무협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선생의 내공은 저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모양입니다.
어떤 이는 중국 근대 불교의 횃불로 알려진 허운선사 이후 중국 대륙이 낳은 마지막 스승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유불도 삼교에 두루 회통하였던 명대의 유명한 학승 감산대사가 살아왔다고 찬사를 보내곤 하니까요.
또 신문에 칼럼을 쓰며 몇 차례에 걸쳐 남회근 선생을 소개한 조용헌 교수는 남회근 선생을 강호 동양학의 최고수로 소개하며 이런 평가를 내린 바 있습니다.
“직관과 영감을 강조하다 보면 일관성이 결여되기 쉽고, 논리와 분석을 중시하다 보면 비약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회근은 특이하게도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대만 거주 시절에는 해가 바뀌면 정재계의 신년 하례객들이 몰려들었고,
장개석은 물론 후진타오 등 정치인이 중대한 국사를 의논할 때 찾아뵙고 자문을 구하는 어른이었으며, 중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국내외의 이런 관심이 지나쳐 아흔 넘은 노사부를 괴롭히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만나서 가르침을 얻고 싶다고 하고, 남문南門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도 하며, 만나줄 때까지 문 앞에 꿇어앉아 일어나지 않겠다며 거의 강압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고 하네요. 그래서 남회근 선생의 비서실에서는 급기야 2010년 1월 “진중하라”는 내용을 비롯한 일곱가지 내용을 담은 짤막한 성명까지 발표하기도 했습니다.(부키에도 남회근 선생의 저서가 언제쯤 출간되는지 묻는 전화가 심심치 않게 옵니다. 조용한 부키 독자들에겐 잘 없는 드문 일이지요)
현재 남회근 선생은 교육 문제에 힘을 쏟고 계십니다. 그 연세에도 오랜 준비 끝에 2006년 문을 연 태호대학당과 태호국제실험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도 직접 강의를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남회근 선생이 이 세상과 그 미래에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중국문화 만담』은 남회근 선생이 아흔이던 2007년 하반기 각계의 요청에 응해 태호대학당에서 행한 세 차례의 강연 기록입니다. 이 책에서 남회근 선생은 스스로 자신을 ‘백발의 궁녀’라고 함축해 표현하셨지요. 남회근 선생의 다른 저작물 및 강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인간적 면모이기도 합니다.
올해 아흔 중반이 된 남회근 선생은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살아 있는 중국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벌 과정, 중일전쟁 참전, 황포군관학교 경험, 대만 정착 과정, 국민당의 대만 패주, 곤궁했던 대만의 경제 상황과 타개 방식, 대만의 토지 국유화 과정, 백색 공포, 대만 유력 인사들이 모두 제자가 되어 오히려 살벌했던 상황, 그로 인해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처지, 양안 관계 회복에서 했던 역할, 금온철로 건설 일화, 그리고 현재 아동 경전 교육을 필생의 일로 몰두하는 것 등 이제까지 선생의 약력에서 한 줄로 표현되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중국문화 만담』의 매력이지요. 또 남회근 선생이 보고 듣고 겪은 중국 근현대의 일상적 경험이 전통 문화 및 고전과 결합되는 것도 참 절묘합니다.
지금까지 남회근 선생의 저작물을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남회근 선생의 『중국문화 만담』을 통해 남회근 선생과 만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역자 신원봉 선생의 표현대로 남회근 선생은 “우리 시대의 문제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노인 중의 노인”이며 남회근 선생에게는 “유달리 밝은 친구”인 사마천, 자공, 노자 등 “이천 세가 넘은 노인들을 불러 내어 생생한 현대어로 대화를 하”는 “지혜의 노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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