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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대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 이라거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고전, 이라거나 세계의 고전이라거나 등의 리스트가 돌곤 합니다. 때로는 권위 있을 만한 기관이기도 하고, 때로는 미디어이기도 하고, 때로는 저명한 인사의 추천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웹은 한숨이 나요. 그 리스트를 살펴 보면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다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고, 앞으로도 별로 읽을 가능성이 없거나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두번째 이유예요. 대학 졸업한 지가 언젠데 나는 아직도 대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도 다 못 읽었단 말인가, 하는 자격지심까지. 부키 대표가 모 매체에 기고한 '고전의 재발견' 소개해드립니다. 묘하게 위로가 되네요. <편집자 주>
고전의 재발견
고전(古典)이란 무엇인가. 이제 새삼 이 말을 되씹어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정말이지 우연히도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뒹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경우 사전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놓게 마련이었다. 무거운 책, 그러니까 내용이 좀 심각해서 읽는 속도가 전혀 나지 않는 책 한두 권에 가벼운 책, 쉽게 말해 통속물 너덧 권을 침대 옆에 잘 모셔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번에는 사정이 그렇지 못한 관계로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할 일이 없었다. 이런 경우 내가 하는 스타일은 정해져 있다. 집안 구석구석을 깡그리 뒤져 혹시 읽지 않은 책이 없나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책도 없었다. 결국 과거에 읽었던 책 중에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몇 권을 골라내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그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극단적 형태의 일본인의 기질을 명쾌하게 보여 준 문화인류학 분야의 고전 <국화와 칼>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장편 소설로서 가장 심오한 사상적 깊이와 그에 걸 맞는 예술적 구조를 구현한 작품이라고 하는 <카라마조프 가(家)의 형제들>이 내 손에 잡힌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거쳐서였다.
그 책들을 골라내며 기대한 바는 한 가지, 예전에 읽었을 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맛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기대했던 대로였다. 인간의 허약함과 강인함이라는 모순성을 어떻게 이렇게 근사하게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옛날과 다름없는 즐거운 독서였다.
그런데 <국화와 칼>부터는 무언가 꼬이기 시작했다. 흔히 이 작품을 단 한 차례의 현지 방문 없이 사료와 인터뷰만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과 가치관을 올바로 파악해냈다고 평가한다. 나 역시도 전에는 그런 평가에 동의했다. 그런데 이번에 드는 생각은 ‘과연 그런가?’ 하는 것이었다. 다시 읽는 <국화와 칼>은 상당 부분 익숙한 이야기들이었다. 아니, 어떤 경우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따져 보니 처음에 읽은 지 무려 20년 이상이 지난 상태였다. 게다가 그 사이 일본과 일본인에 관해 읽은 책만 해도 수십 권에 달하지 싶었다. 그런 상태에서 2차 대전 직후에 나온 책을 읽으면서 새롭고도 신선한 감동을 맛보고 싶다니…. 내 욕심이 과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잡은 <카라마조프 가(家)의 형제들>은 꼬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과거 내가 읽었을 때 정말로 감동을 했었던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과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대 배경이나 주제가 지금 시대와 동떨어져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70년대에 읽었을 때에도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린 결론은 ‘속도’와 ‘감각’의 문제였다. 지금의 소설들은 진행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게다가 그 묘사에 있어서는 다분히 멀티미디어적이다. 거기에 길들어진 나에게 이제 『카라마조프 가(家)의 형제들』과 같은 고전적 작품들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과연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결국 그 날 하루는 전혀 뒹굴지 못하고 지낸 셈이었다.
어느 날인지는 모르나
부키 대표 유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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