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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 대표는 '장르문학'을 참 좋아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르문학'도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SF, 추리물 가리지 않고 많이 읽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필립 리브의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도 출간했지요. 덕분에 저는 매우 즐거웠습니다.) 물론 제가 보기엔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경제학 서적부터 고전에 이르기까지 책에 관한 한 별로 편식이 없는 분입니다. 음식 편식은 심합니다. 우리끼리는 '애들 입맛'이라고 합니다만. :-) 

이번에 소개해드릴 원고는 아마 어느 해 어느 매체에 "휴가지에서 읽기 좋은 책"이거나 "더운 여름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것 같습니다. 시기가 시기라서 그럴까요? '장르문학'을 즐기는 취향을 한껏 드러냈군요. 여름에 읽을 책, 겨울에 읽을 책, 가을에 읽을 책이 따로 있겠습니까. 밤은 길어지고 아침이 늦어지는 요즘, 혹시 가까이 둘만한 재미있는 책을 찾으시는 분 있다면, 참고하십시오. 그래도 계절감이 중요해서 계절 관련된 것은 <편집자 주>

  

 

진짜 재미있는데 왜 잘 안 팔리지?

 

장르문학이라는 말이 있다. 그 정확한 뜻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지만 역시 속 시원한 답은 없다. 다만 이렇게 저렇게 사용되는 용례로 보건데, 추리물이나 SF(공상과학소설)물, 무협물, 판타지물 등 이른바 특수한 장르에 속하는 소설들을 총칭해 이르는 말인 듯하다.

장르문학은 일단 재미가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다. 소재나 스타일도 다양하다. 그런 만큼 여러 사람의 다양한 입맛을 맞출 수 있다. 

 

유쾌한 인생이 필요하다면 '한 푼도 용서 없다'

 

가령 유쾌한 인생을 맛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제프리 아처의 『한 푼도 용서 없다』나 『한 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권하고 싶다. 스토리 라인은 비교적 간단하다. 몇몇 사람이 어느 거물급 사기꾼에게 거액을 사기 당한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사기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냥 당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는 이야기가 안 된다. 소설답게 이들은 복수를 외치고 나선다.

 

복수의 방법은? 기독교 신앙 속에 자란 백인들답지 않게 철저하게 함무라비 법전에 따라 진행된다. 사기에는 사기로 맞서 사기 당한 돈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그것은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다만 높으신 공작가의 자제분과 수학자, 치과의사, 화상(畵商)이라는 자신들의 신분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사실만은 미리 알려줄 수 있다.

 

그게 뭐가 유쾌하냐고? 글쎄…. 지면 부족으로 왜 유쾌한지를 알려주지 못해 유감이다. 그러나 믿어도 된다는 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무서운 이야기는 '내 눈에 비친 악마'

 

유쾌한 이야기가 나오면 무서운 이야기도 나와야 하는 법. 그 경우 최우선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루스 렌델의 『내 눈에 비친 악마』이다. 시작은 평범하다. 어떤 사람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에 그와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이사를 온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남의 편지를 뜯어보게 되자 바로 사과 편지를 쓰지만, 그때부터 두 남자 사이에는 묘한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고, 뒤이어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데….

 

이 작품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나에게 묻지 말라. 솔직히 말해 나도 루스 렌델의 작품은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인간의 사악함이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져 중간 정도 읽다가 덮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무서움 적당한 스릴엔 '지푸라기 여자'

 

만일 루스 렌델보다는 좀 덜 무섭고, 스릴도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카트린 아를레이의 『지푸라기 여자』를 권한다. 이른바 정통 추리물에 속하는 작품인데, 착상도 기발하고 내용도 시사적이다. 전쟁에 부모형제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어 번역을 하며 살아가는 힐데가르데. 그녀에게 희망이 있다면 하루빨리 부자와 결혼하여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그녀도 잘 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어느 부자가 아내를 구한다’는 광고가 나왔다. 그것을 본 그녀는 당장 응모하여 드디어 부자 아내의 꿈을 이루게 되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하자. 다만 이 작품은 완전범죄를 그리고 있다는 점만은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쟁을 주제로 '스타십 트루퍼스'

 

 이쯤에서 대충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도 하나쯤은 제시해야 할 것 같다. 혹여 누군가가 ‘독서가 시간 때우기냐?’는 식으로 힐문하면 공연히 이야기만 길어질 터이니 말이다. 자,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 중의 하나는 전쟁이다. 그러면 그 전쟁을 다룬 장르문학 작품으로는 어떤 것을 추천할 수 있을까?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소년 조니가 지구연방군의 기동보병 사단에 자원해서 입대한 뒤에 처절한 훈련과 외계인들과의 전투를 통해 강철 같은 군인으로 단련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는데, 논란이 적지 않은 작품이다. 전쟁을 대담하게 긍정하고, 우익적 선동을 해대는 탓에 ‘파시스트들의 유토피아를 그린 하인라인의 고전’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 보면 여러 가지로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최소한 보수파는 보수파니까 나쁘고, 개혁파는 개혁파니까 옳다는 식의 희한한 정서적 반응은 자제하게 된다. 물론 재미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인라인 자신이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더불어 20세기 영어권 3대 SF 거장으로 꼽히는 사람이니까.

 

핵폭발 이후 ' 최후의 성 말빌'

 

이왕 무게 있는 것을 다룬 김에 하나 더 소개하자. 로베르 메를르의 『최후의 성 말빌』이라는 작품이다. 소재는 핵폭발 이후의 미래 세계. 그곳에는 가족도, 윤리도, 국가도, 화폐도 없다. 모든 기존의 질서가 해체된 것이다. 그런 원시적 상황에 놓인, 핵폭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일단의 사람들에게는 오로지 생존이 최우선의 명제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소유, 사랑, 도덕, 종교, 권력 등의 모든 가치를 새롭게 정립한다. 그게 어떤 거냐고? 일단은 총이 곧 질서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이 보다 쉽게 전달이 될 것 같다.

 

여기가지 소개하고 보니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소개하고 싶은 책은 허다하게 많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소개하기가 쉽지 않다. 가령 전쟁의 필요성 내지는 불가피성을 옹호한 것으로 악명 높은 『스타십 트루퍼스』는 『영원한 전쟁』과 짝을 이뤄 읽어야 제 맛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전쟁』을 빼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절판되어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이유? 그걸 모르겠다! 

 

장르문학 작품 중에는 이런 운명에 처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령 하인라인의 작품은 『스타십 트루퍼스』 외에도 몇 개가 더 번역되어 나온 바 있다. 나이 들어 잘 잊곤 하는 내 머리로도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은하를 넘어서』 『여름으로 가는 문』 등이 있다. 그런데 지금 서점에 남아 있는 것은 『스타십 트루퍼스』 단 하나뿐인 것이다.(그런데 반가운 소식 『여름으로 가는 문』 은 2009년 재출간되어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다. 서해문집에서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한 번 찾아보시라. 편집자 주)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에서 권해준 책들도 서점에서 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웬만큼 큰 대형서점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갖춰 놓지 않았기가 십상인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구할 수 있는 책들이다. 단지 이 책들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가며 이런 책을 읽어야겠느냐고는 묻지 말아 달라. 내 경우에는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으기까지 했다. 왜? 너무나 재미있어서. 그런데 왜 안 팔리느냐고? 나도 그게 항상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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