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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기용 선생의 건축과 삶 -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세상속으로 사람속으로, 세상과 사람에 감응하라!

 

 

 

편집자 주 : 2011년 3월 11일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정기용 선생께서 영면하셨습니다. 정기용 선생께서 필자로 참여한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는 2011년 4월 초 출간되었습니다. 편집자는 이를 너무나 마음 아파했습니다. 조금만 책을 더 빨리 냈다면 선생님께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 들려주신 선생의 건축 철학,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소개합니다. 정기용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 사진 및 그림의 저작권은 정기용 선생님께 있습니다. 무단 도용하시면 안 됩니다. 스크랩시 반드시 본문 전체 스크랩으로 해주시고, 별도로 사진을 사용하지 마세요.

 

 

 

고 정기용 선생님은 기용건축 대표셨고, 성균관대 건축과 석좌교수를 역임하셨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와 동 대학원 공예과를 나와 프랑스 파리 장식미술학교(ENSAD) 실내건축과, 파리6대학 건축과, 파리8대학 도시계획과를 졸업하셨지요. 파리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다 귀국한 뒤 1986년 기용건축을 설립해 계원조형예술대학, 코리아나 뮤지엄 SPACE C 등을 설계했고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습니다. 또 개인전 ‘감응 : 정기용 건축-풍토, 풍경과의 대화’ 등 다수의 전시회를 열기도 한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분이십니다.

 

고 정기용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축은 한 시대에 한 사회가 요청한 것에 답하고 한 지역의 문화를 생성하고 반영하는 힘이라고. 한마디로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이고, 건축가는 공공의 삶을,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도대체 어떻게 조직할지에 관한 고민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건축가는 단순히 건물만 짓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의미 있게 조직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주문받았을 때 이것이 사회가 요청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고 정기용 선생께서 평생을 바친 공공 건축은 사람과 건축과 역사와 시간이 만들어 내는 창작품입니다.

 

정기용 선생께서는 무주 안성면의 면사무소 신축 작업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셨어요.

 

‘무주 안성면은 한국에 남아 있는 마지막 순수의 ‘땅’이었다. 아파트 하나 없이 순수한 농촌 모습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던 그 땅과 열정적으로 교감을 나누며 시작한 일이 안성면사무소 신축 작업이었다. 면사무소를 설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에게 무주군수는 면사무소를 어떤 용도로 구획할지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해 왔다. 내용과 형식을 다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직접 안성면 사람들을 찾아가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보기 시작했다. 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노인들에게 면사무소를 지으려는데 어떤 공간이 가장 필요하냐고 물으니 열에 아홉이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나. 목욕탕이나 지어 줘!”라고 했다. 집에 목욕탕이 없냐고 물으면 새마을운동 때 부엌을 입식으로 만들어서 물 끼얹을 공간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뼛골이 다 쑤셔. 그래도 씻고는 살아야지. 각자 돈을 추렴해서는 봉고차를 빌려 대전까지 목욕을 하러 간다니까.”

답을 달리 구해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최초로 목욕탕이 결합된 면사무소가 안성면에 들어서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크게 지으면 유지비가 많이 드니 홀숫날은 남탕, 짝숫날은 여탕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목욕탕 공간을 설계했다. 여기에 더해 나이 든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보건소 공간도 그려 넣었다. 이제 주민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오후 늦게 목욕탕에서 모인다. 벌거벗고 탕에 몸을 담그면 누구네가 부자고 가난한지는 상관이 없다.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이다.’

 

무주공설운동장은 건축을 완성하는 것이 사람과 식물임을 깨닫게 해 준 사례라고도 하셨습니다. 고 정기용 선생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정기용 선생께서 디자인하기 전의 무주공설운동장(왼쪽). 이후 관람석에 등나무가 있는 세계 유일의 공설운동장이 되었다.(오른쪽)

 

‘군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열리는 공설운동장에는 언제나 주민은 없고 관만 있었다. 왜 주민들은 뜻깊은 군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까? 군수의 의문은 의외로 간단히 풀렸다. 그것은 바로 운동장 둘레에 그늘이 없어서였다. 이를 안 군수는 관람석과 운동장 둘레에 등나무 240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1년 후, 군수는 나를 찾아와 이 운동장이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되게 해 달라고 말했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랄 대로 자란 등나무가 타고 오를 곳을 찾느라 아우성이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들이 살려 달라며 두 팔을 위로 벌리고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쉬지 않고 단 3시간 만에 거침없이 설계를 마쳤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등나무 운동장은 이렇게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의 외면 속에 형식적으로만 존재했던 무주공설운동장은 이제 온갖 행사와 영화 상영회가 열리고 주민들의 친숙한 마당이자 무주의 명소가 되었다.’

 

기적의 도서관에 대해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맨 처음 개관한 순천 어린이 도서관의 아이들은 3개월이 다 되도록 책을 읽을 겨를이 없었다. 평면적인 아파트에서만 자라난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공간에 대한 체험이 적기 때문에 높은 곳, 낮은 곳, 움푹 팬 곳을 찾아다니며 오르락내리락하기도 바빴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날 즈음 아이들이 조금씩 공간을 파악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를 찾게 되었다. 비로소 도서관이 정상적으로 작동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어린이는 세계인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자라면서 국민이 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차 몰개성한 사회인이 되어 나온다. 나는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책 속에서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때 세계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주고 되살려 주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 임했다.

결국 어린이 도서관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행복해요. 어린이 도서관에 갈 수 있어서.” 도서관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의 말이다. “여기서 아이 재우고, 젖 먹이고, 기저귀 갈고, 책 읽고,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말을 잇는다. 그런 아주머니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나 미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 일이 부업이 되는가 싶더니 아예 전업으로 나선 사람도 있다. 도서관을 통해 주민들의 삶이 이렇게 조금씩 변화했고 동네도 바뀌기 시작했다.'

 

 

정기용 선생은 “건축가는 건축물을 설계하기 이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횡단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고, 땅과 시대와 세상과 관습과 싸워야 하며, 모든 기술적, 경제적 요인을 결합하는 능력도 발휘해야 하는 총체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축가에게는 다양한 지식과 시대정신, 역사의식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고 정기용 선생께서 풀어놓는

건축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은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를 통해서 확인하십시오.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저자
이상림, 나승문, 이세나, 정기용, 박유진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5-25 출간
카테고리
취업/수험서
책소개
건축가, 내 미래의 직업으로 선택해도 괜찮은 걸까? 한국 건축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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