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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 게으름 피우는 건 아니다

30년간 인간의 몸에 숨어지내는 사상충 이야기





나태, 즉 게으름은 얼핏 생각하면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행동인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TV, 발걸이가 있는 안락의자, 비디오 게임을 발명했다. 우리는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차를 운전하고, 한 층만 높아도 엘리베이터를 탄다. 비만은 이제 거의 모든 나라의 골칫거리다. 2008년에는 15억 명의 성인이 과체중이었고, 1억 7000만 명의 어린이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었다. 그리고 그 수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덩치 큰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자, 어디선가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타나 체중을 줄이는 방법과 몸매를 유지하는 방법을 떠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조언은 대부분 자연적인 생활과 연관이 있다. 우리 조상은 (우리가 아는 한) 뚱보들이 아니었고, 우리가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었기 때문에 이렇게 게을러졌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자연만이 고된 노동의 완벽한 본보기이며, 적자생존의 무대라는 것이다.

시도는 좋다.


댐을 만드는 비버의 모습은 확실히 고된 노동과 근면의 전형적인 본보기다. 그러나 그곳에는 비버만 있는 게 아니다. 비버의 뱃속은 비버의 먹이를 한 입씩 훔쳐 먹는 게으른 피조물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심지어 비버의 살을 파먹고 사는 녀석도 있다. 이렇게 공짜로 먹고사는 기생생물들은 비버의 몸속에서 번성하면서 비버가 힘들게 일해서 얻은 모든 혜택을 누린다. 물론 대가는 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게으를 수는 없을 것이다.

...

내게 가장 역겨운 기생생물은 하체를 기괴한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게 하는 상피병(elephantiasis)을 일으키는 사상충이다. 사상충은 모기의 침을 통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온 후에는 곧바로 림프관에 자리를 잡는다.(림프관은 부풀어 오른 조직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을 혈관으로 보내는 관이다.) 사상충은 일단 림프관을 발견하면, 면역계의 감지를 피해 최대 30년까지 그곳에서 숨어 지내면서 2.5~10센티미터 길이로 성장한다.

무려 30년 동안!


얼마나 긴 시간인지 가늠이 되는가? 10센티미터짜리 벌레가 들키지 않고 몸속에서 숨어 지내기는 면역계가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렵다. 만약 인간이 사상충의 은신 능력을 모방할 수만 있다면, 장기 이식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장기 이식에서는 면역계의 거부반응이 생존에 중요한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 벌레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확실히아니다), 그들의 능력은 존경스럽다.



                                                                                                                   -댄 리스킨, 『자연의 배신』 발췌 및 재구성





자연의 배신

저자
댄 리스킨 지음
출판사
부키 | 2015-04-17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자연은 풍요롭고 온화한 곳이라는 인간의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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