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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협동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영화 <펭귄 - 위대한 모험> 속 숨은 이야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춥고 어두운 남극의 겨울, 수컷 펭귄들은 3개월 넘게 함께 허들 (huddle)이라는 무리를 이루며 알을 품는다. 

이 시기에 수컷 펭귄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 봄이 되면 체중이 3분의 2로 줄어든다. 펭귄의 몸은 단열이 아주 잘되지만 그래도 열이 조금씩 주변으로 새어나간다. 다른 펭귄들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열을 발산하고 있으므로, 펭귄이 서 있기 가장 좋은 장소는 다른 펭귄들이 사방에서 열을 방출하는 허들의 한가운데다. 효과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허들의 한가운데에 있는 펭귄은 열대지방과 비슷한 섭씨 20~37도 사이의 온도를 경험하는 반면, 허들의 바깥쪽에 있는 펭귄들은 지구 상에서 가장 낮은 온도에 노출된다.



얼핏 보기에, 허들을 형성하는 펭귄의 습성은 협동의 위대한 본보기인 것 같다. 2005년에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펭귄‒위대한 모험 March of the Penguins〉에서도 이 내용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배우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해설이 나온다.



수컷 펭귄들은 다른 기간에는 공격적이었는지 몰라도, 이 기간만큼은 대단히 유순하게 한 팀으로 일치단결한다. 그들은 수천 개의 몸뚱이를 한 덩어리로 만들어 거센 바람에 맞선다. 이 펭귄들은 차례로 자리를 바꿔 가며 모든 펭귄이 따뜻한 허들의 중심부 근처에서 얼마간 지낼 수 있게 할 것이다.

모건 프리먼은 이 상황을 멋지게 묘사했지만, 사실 펭귄들은 한 팀이 아니다. 그 어떤 펭귄도 가운데나 가장자리에서 자신의 순서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 않으며, 그 어떤 펭귄도 따뜻한 중심부에서 자발적으로 나와서 추운 가장자리로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펭귄들은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연히 허들의 형태가 형성된 것 뿐이다.


몇 시간 분량의 비디오를 자세히 분석한 결과, 펭귄 집단 전체는 단순하고 이기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펭귄은 모든 방향에 다른 펭귄이 있을 때는 움직이지 않고, 허들의 가장자리에 있을 때 가운데 쪽으로 밀고 들어간다. 모건 프리먼의 말처럼 이런 행위를 ‘차례로 자리를 바꾼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모든 펭귄이 가능한 한 따뜻한 곳에 그대로 있으려다 보니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언급한 수컷 펭귄들의 공격성 감소 역시 이기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함께 허들을 이루는 펭귄들에게는 옆에 있는 열원을 죽이는 것이 비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상황에 처한 다른 동물이라면 이웃을 죽이는 것이 최선의 전략일 수 있으며, 그런 경우가 되면 그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댄 리스킨, 『자연의 배신』 발췌 및 재구성




자연의 배신

저자
댄 리스킨 지음
출판사
부키 | 2015-04-17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자연은 풍요롭고 온화한 곳이라는 인간의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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