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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비타민』 편집자 노트
철학은 ‘깨알 같은’ 복학생 오빠다!
“미도리 씨, 다음 타이틀은 ‘철학책’이예요.”
‘허걱’ 했다. 수능 본 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윤리 과목 때문에 사탐 성적 다 까먹은 게 땅을 치게 원통한 나에게 철학책이라니요...
심지어 그 책의 원제가 “잠들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철학책”이라니 어디서 거짓말을... 이런 마음이랄까.
잘은 모르지만 왠지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고 꼰대스러울 것 같은 복학생 오빠와 팀플 과제를 하게 된 신입생처럼 원고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앉았다.
별다른 기대도 없이, 그러나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만을 가지고.
“어서 와, 이런 철학책은 처음이지?”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어랏?’ 싶었다. 뭐죠 이 느낌은?
꼰대일 것 같던 복학생 오빠가 알고 보니 깨알 같은 비유와 드립을 치며 엄청 재밌게 이야기를 하네? 그것도 철학 이야기를?
2,600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지닌 서양 철학의 입구에서
어느덧 훈남으로 이미지가 바뀐 복학생 오빠가 두 팔을 벌리고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서 와, 이런 느낌의 철학책은 처음이지?”
‘어머, 철학 이야기를 하는데 졸립지가 않네? 왜 나는 자연스럽게 탈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이해하고 있지?’
나는 신선한 충격 속에 점점 볼에 홍조를 띠며 정말 ‘잠들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철학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다.
헤겔의 변증법은 ‘롤플레잉게임’, 데카르트는 ‘은둔형 외톨이’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근대, 현대 사상까지 꼭 알아야 할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매우 잘 정리해 놓았다.
장황하지 않지만 빈약하지도 않게, 깨알 같은 비유와 센스 돋는 유머를 적절히 버무려 44명의 철학자를 적절히 소개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헤겔의 변증법을 ‘롤플레잉게임’, 데카르트를 ‘은둔형 외톨이’에 비유한 부분이었다.
헤겔 철학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세계는 모순을 뛰어넘어 결말로 향하는 롤플레잉게임(RPG) 같은 것이다. 적이 나오고, 싸움을 벌여 경험치를 올리고, 또 적이 나와 경험치가 올라간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변증법’이다. -본문 141쪽
데카르트는 회의론적 시각에서 ‘모든 것을 끝까지 의심하라!라고 주장한 철학자다.
데카르트=방법론적 회의 이런 공식은 학교 다닐 때 배웠지만, 그리고 듣자마자 휘발되어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데카르트의 사상을 그의 일화와 버무려 알려 주는 이 책의 설명을 읽고는 자다가도 누가 데카르트에 대해 물으면 “데카르트? 방법적 회의론자 아니야?” 하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이용했다. 방법적 회의란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고 그래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남는다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고 방법이다. 그 방법이 어찌나 철저했는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이 사람, 지나치게 거기에 얽매여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수군댔던 모양이다. 왜 그런 것까지 의심하느냐고 이해받지 못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데카르트는 요즘 말로 하자면 꽤나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사람이었다. -본문 102쪽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면 소크라테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한 명 한 명의 철학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의 신이 강림하시질 않아...
‘그런데 이 좋은 책에 어떤 이름을 붙이지?’
이미 시중에 철학 입문서는 많이 나와 있고, 2~3권의 베스트셀러가 철학 입문서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콘셉트로 어떤 제목을 붙여 어떻게 패키징을 해야 할까?
책상 위에 드러누워 있는 복학생 오빠의 어깨를 잡고 짤짤 흔들며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오빠의 이름은 뭐예요? 내가 무슨 이름을 붙여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오빠 아니 원고는 말이 없었고, 나는 제목 짓기의 수렁에 빠져 버렸다. ‘제목의 신’은 어디로 가셨는지 끝끝내 강림하시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했건만. 수십 개의 안이 나왔으나 결국 결정된 것은 ‘철학 비타민’이었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철학을 핵심만 압축해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책.”
음, 내용과는 꼭 맞아떨어지는 제목이지만 그래도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철학 이야기만 한다고 지루한 책 아니에요. 2시간만 투자해서 읽어 보세요.
소크라테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2600년 서양 철학사에서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삶을 속속들이 기억하게 될 터이니!”
철학의 재미에 새롭게 눈뜬
부키 편집실 미도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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