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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이를 살리고 싶은 겁니다, 그렇지요?
이언 브라운은 CFC 증후군을 앓고 있는 그의 아들 워커를 키우며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워커가 훌륭한 공동체에서 전일제로 살게 된다면 비용이 1년에 최소한 20만 달러는 들 것이다. 워커가 쉰 살까지 산다면 총 비용은 800만 달러가 된다. 내게는 800만 달러라는 큰돈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온타리오 주의 인구가 800만 명이다. 워커는 온타리오 주에 사는 사람들 각자에게 1달러의 가치가 있을까? 밤이면 그런 계산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타인이 아닌 아버지가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낯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달나라 소년』은 우리 자신의 근원적인 가치와 존재 이유를 묻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언 브라운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워커가 태어났을 때 의사의 질문을 이렇게 곱씹습니다.
어느 날 워커를 데리고 갔을 때 손더스 박사가 퉁명스레 내뱉은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이 아이를 살리고 싶은 겁니다. 그렇지요?” 나는 그 말을 수사적 질문으로 받아 들였다.하지만 손더스의 질문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속뜻이 담겨 있었다. “이 아이는 엄청난 노력을 쏟지 않으면 살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런 고생을 감당하고, 또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손더스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해도 내 대답은 예스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도덕론을 들고 나와도 그 순간의 중압감은 바뀌지 않는다. 검사대 위에서 악을 쓰는 아기, 아기의 부풀어 오른 배, 의사의 근심스런 얼굴, 무력하게 옆에 서 있는 아버지.
피와 살을 가진 아기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 한밤중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아기를 재우려 몇 시간째 시달리면서 정작 나는 자지 못하는 그때에야, 워커를 살리기 위해 치러야 할 부담과 대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손더스 박사는 자연의 손길에 맡겨 워커의 목숨이 다하도록 내버려두길 바라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나? 새벽 4시, 도심에 위치한 우리 집의 뒷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나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했다. 죄 많은 생각, 황당한 생각. 워커한테 특별한 치료를 받게 하지 않으면? 워커가 병에 걸렸는데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그래도 살인은 아니다. 자연의 손길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음침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실제로는 내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그저 낡은 충동,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충동이었다. 특정 형태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아기의 살과 몸과 욕구의 요청을 무시했을 때 받을 징벌에 대한 공포. 나는 멍에로 끌려 들어가는 소 같은 기분이었다. 내일 날씨를 예상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내 앞에 놓인 험준하고 비극적인 시간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밤이 되는 게 차라리 고맙기도 했다. 적어도 밤이 오는 것만은 내가 선택할 필요가 없는 운명,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런 생각들 속에는 어렴풋한 한 줄기 빛도 있었다. 피할 수 없는 것에 굴복함으로써 느껴지는 안도감. 그것만 빼 놓으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밤들이었다. 왜 그 밤들을 그렇게 보냈는지는 지금도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CFC를 앓는 어느 아이의 어머니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라고 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건 오히려 쉽다. 워커를 안아 올릴 때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 아이와 같은 삶에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을까? 몽롱한 상태에서, 그것도 통증에 시달리면서 사는 삶에? 주위 사람들은 또 얼마나 큰 부담을 지고 있는가? 한 여의사는 얼마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100만 달러를 씁니다. 하지만 퇴원시키고 나면 잊어버리죠.”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보이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늘 이런 모습을 봐야 하니까요.”라고 했다.
워커를 보고 있자면 달을 쳐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달에서는 가끔 사람 얼굴 비슷한 것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거기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워커가 정말로 공허한 존재라면, 그런데도 왜 그 존재가 이렇게 중요하게 느껴질까? 워커가 내게 보여 주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묘하게 생긴 머리 안에서, 빠르게 뛰는 심장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정말로 알고 싶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아들한테 설득당하고 만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이언 브라운, 『달나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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