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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자녀 부모의 고단함과 슬픔, 외로움에 대하여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참 외롭습니다.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주변의 도움이나 이해를 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달나라 소년』의 저자 이언 브라운도 그랬습니다. 오로지 부부가 중증 장애를 가진 아들을 감당하면서 져야 하는 무게는 만만치 않습니다. 작은 것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서로가 서로를 할퀴키도 하지요. 잠깐 소개해 드립니다.
그 시절, 반쪽짜리 잠을 자면서 지내는 동안 아내와 나는 자주 다퉜다. 여느 CFC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잠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누가 언제 잠을 잤던가, 누가 잠을 잘 자격이 있는가. 싸움 내용은 대개 똑같았다. 이런 식이다. 한밤중, 오늘은 요한나가 워커를 돌보는 밤 당번이다(반대인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전개된다).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아래층 거실로 내려와 책을 읽는다. 5분 뒤에 요한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돼, 워커. 안돼!” 1분 뒤, 요한나가 알몸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지친 모습이다. 세 시간 내내 깨어 있던 워커가 머리로 엄마를 들이박고 깔깔 웃음을 터뜨린 참이다. “아이 좀 봐줄 수 있어?”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실수다) 말한다(역시 실수다). “바로 어제도 한밤중에 세 시간 동안 줄곧 애를 봤다고.”
“알았어.”아내는 성큼성큼 다시 계단을 오른다. “신경 쓰지 마! 부탁해서 미안하게 됐네!”
나는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따라간다. 아내보다 먼저 워커 방으로 들어가 아이 옆에 눕는다. 가엾은 아내는 몹시 지쳤으면서도 버틴다. 아내가 고함을 치고, 나도 고함을 친다. 나는 문을 닫아 버린다. 아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아내를 밀어내고 문을 닫은 뒤 발로 막는다. 얼마간 이성을 잃은 상태다. 다시 문을 열어 보면 부부 침실에 누운 헤일리가(워커를 돌보기 위해 우리 식구들은 매일 잠자리가 바뀐다) 무슨 일인지 묻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내한테 줄줄이 사과한다. 전적으로 마음에서 나온 사과는 아니지만 이런 싸움에서는 어느 정도 먹힌다.
그녀는 내 아이들의 엄마, 워커의 엄마다(생각이 이쯤 이르면 신랄한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든다. 둘째를 원한 건 그녀였다. 수태되는 순간에 나도 거기 있었지만, 그렇다고 워커를 낳은 몸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요한나 또한 똑같이 싱숭생숭하게, 희생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집에서 일하지만 나는 직장으로 출근했다. 내게는 날마다 집에서 빠져나갈 기회가 주어졌지만 아내는 부담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언젠가 칵테일파티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한나는 안 하는 게 없어.”누군가 우리 생활에 대해 묻자 어느 친구가 한 말이다. 나는 좀 억울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모든 걸 도맡아 한다는 건 사실에 거의 근접한 얘기였지만 그건 아내가 만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탓이었다. 워커 속에 있는 심각한 고통, 질병, 불행이 슬픔이 되어 요한나를 짓누르고, 그 슬픔이 그녀를 마비시켰다. 때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나의 보다 세속적인 표층과 완강한 중핵에 의지하는 면이 있었다.
아침에 아내와 마주쳐도 인사할 힘조차 없을 정도로 피곤할 때도 있었다. 기분이 침울할 때는 더 그랬다. 그런 때면 요한나가 직장 동료 같았다. 길에서 마주치면 미소 띤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각자 제 갈 길로 가는 사람( “굿모닝.”내가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들어서는 걸 보면서 아내는 아침 인사를 하곤 했다. 내가 끙 앓는 소리로 대답을 대신하면 아내는 다시 “굿모닝”이라고 말했다). 요한나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결혼생활을 지탱해 주는 뜻밖의 호의나 다정함을 슬쩍 끼워 넣는 배려를 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우리가 주말에 쉴 수 있도록 잠시 워커를 맡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12년 동안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건 딱 두 번뿐이다. 두 번 모두 우리와 아주 가까운 부부였으며 하룻밤 동안이었다. 몇 번이고 조르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워커를 돌보는 것은 아주 복잡한 일이어서 남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 많은 튜브와 조제 음식, 약, 끝없이 울고 자기를 때리는 걸 생각하면 더구나 그랬다.
워커를 맡기러 갔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열망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36시간 뒤 워커를 데리러 가자, 집의 배관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주말 동안 대략 150명 정도 손님을 치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표정을 몇 주 전에도 본 적 있다. 기적적으로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항공기 승객들의 망연자실한 눈빛이었는데, 주말 동안 워커와 보낸 내 친구들의 표정이 딱 그랬다.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한다. 일단 시도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앞으로도 그들과는 우정을 굳게 지켜 나갈 것이다. 우리가 있는 어둠 속으로 기꺼이 손을 내밀어 잡아 주려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깊이가 그들에게 얼마나 까마득하게 느껴졌는지, 얼마나 멀리 손을 뻗어야 했는지는 모른다. 물어본 적은 없다. 아내한테 늘 하는 말이지만 그런 건 도저히 물어볼 수 없는 문제다.
요한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고 당신 식구고 간에 하룻밤이라도 워커를 맡아 주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우리 엄마가 딱 한 번 그랬네. 그게 전부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내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점에도,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다른 사람에게 워커를 봐 달라고 부탁하다니!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부모님은 팔십 대에다 워커를 겁낸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운 것이다. 누이들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남동생은 보스턴에 있고, 그의 파트너인 프랭크가 워커를 맡기라고 했지만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아이가 없는 그들은 난장판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깔끔하게 하고 산다. 아내의 자매는 독신이고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가까이 사는 가족은 아무도 없고, 우리가 사는 곳에는 광범위한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부탁을 하는 게 지나친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언 브라운, 『달나라 소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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