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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누구나의 인생』 디자이너 노트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안녕?

『tiny beautiful things(원제)』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한국어판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였고  출근 직후 오후에 있을 디자인 콘셉트 회의를 위해 대강 훑자며 한글 파일 원고를 열었다. 결국 오전 내내 닫지 못했다. 마음에 광풍이 일어 풀썩,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내 생에 만족한 적 없었고, 늘 어딘가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내심 남들도 조금쯤은 그렇겠지 하는 마음을 위안 삼았다. 저자 셰릴은 내가 개판이 되어도 괜찮아, 다들 그렇게 개판이 되니까라는 헛소리로 자기 상처를 덮는 건 순 거짓말이라고 했다. 게다가 난 '네 얘기 해 주면 내 얘기도 해 줄게의 솔직한 삶도 살아보진 못했고 인간사라는 거대한 언덕끝에 제발 날 좀 내버려둬지점에 언제나 이미 조로해서 지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나도 나를 내버려두는 시점에 온 것일까.

 

그 어느 사연에서도 발견되는 내 모습

누구의 사연에나 진심으로 답하는 이 솔직하고 뜨거운 그리고 냉정한 여자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진심으로' 라는 낡은 말을 진심이라고 느끼게 하는.

누군가의 상담에 너는 그랬구나 내 얘기를 들어봐 나는 이랬어. 라는 경우 상담을 해주는 셰릴의 이야기가 더 끔찍한 경우가 잦다.

나는 알콜 중독자이거나 가정 폭력을 경험하거나 약물 중독이라거나 죽을병에 걸리진 않았고 이 책엔 그런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도 종종 있지만, 그 어느 사연에서도 나는 끝내 나를 발견해내곤 했다깊이와 넓이가 다를 뿐 동일시되지 않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그게 꽤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내게 해주는 말인가보다 싶은.

때론 괜찮아지는 일은 절대 없는일들도 있지만(가족의 죽음이라든가) 괜찮은 것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다는 것 또한 그녀가 알려주었다.

. 연필인가 시안인가 열두 개라니.

이 뜨거운 상담 칼럼들이 메일로 주고받아 졌음을 알지만 표지는 편지봉투 모양이 되었다. 지난 몇 주간 당신의 사연이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는 고백, 이토록 상처받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셰릴의 마음을 고이 접어 보내고 싶었다. 이왕이면 밀봉하여 보내도 좋다(도착 가능하다)라는 확신의 소인도 쾅 찍어서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

 

가끔 숙제처럼 남아 있는 빈 것들, 채우지 못한 것들

오래전 편집자 선배가 생일에 하얀색의 책 한권을 건넸다. 꽤 두꺼운 양장이었고 펼쳐보니 속도 온통 하얀 빈 책이었다선배가 오랫동안 좋을 글을 써 책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채울 자신이 없어졌으니 내가 가지고 있다가 채워주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언제나 좋은 글을 써주던 친구가 어느 해 생일인가 건넨 편지를 열어보니 봉투 안엔 하얀 빈 편지지만 들어 있었다. 급하게 오느라 채우지 못했다고 나중에 네가 채우라고 했었다. 멋진 문장이 그득했던 편지보다 이상하게 그 빈 편지지를 기억하는 일이 더 많았다.

가끔 그런 빈 것들이 내게 숙제처럼 남아 있다아직 채우지 못한 것들.

이 책의 편집자인 오렌지 마멀레이드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방에 걸어두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사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하나만 고르는 게 너무 어려워서 결국 아무것도 못 거는 사람. 첫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언제나 비어있는 사람.

이제서야 뭘 그리 쉬이 여기지 못하고 요령 없게 살아 왔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질리거나 다른 그림이 좋아지면 바꿔 걸면 그뿐. 못자국도 내지 않고 뭐든 걸 수 있는 세상인 걸.

마음속의 빈 벽에도 마음에 드는 그림을 걸어 둘 때이다. 혹시 너무 오래 걸려 있었으나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못자국이 아픈 그림은 떼고 새 그림을 걸어야겠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어쩌면 나만 알 수 있게 작고 아름다운 것들도. 봄은 새로운 걸 바꿔 걸기 좋은, 빈 곳은 채우기 좋은 계절이니까 말이다.

 

당신 마음의 빈 곳을 채울 편지가 되길

이 책이 당신 마음의 빈 곳을 채워줄 편지가 되길. 그래서 뭐든 당신의 첫 문장도 시작할 수 있기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당신도 언제나 댄서이시길. 기왕이면 열락의 댄서. good bye의 어원은 'god be with you'라고 했다. 어디서든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자.

그러니까 누구나, 어디서나, 안녕!

 

이렇게 다 드러내도 되는 걸까, 쿨하지 못한 건 아닐까, 너무 긴 건 아닐까, 손발이 오그라드네 라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는 부키 디자이너 표류나 씀  

 

, 그냥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시를 붙인다.

그리고 빈 편지지와 빈 책에 내가 쓸 첫 문장은

 

 


안녕 누구나의 인생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출판사
부키 | 2013-03-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와일드]의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 누구나의 인생 고민을 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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