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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의 모 편집자가 한겨레21의 편집자 칼럼 Editor's Cut에 글을 썼어요.
제 생각에는 꽤 재미있는 것 같아 들려드립니다.
편집7년차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 일이 아닌가봐' 하면서도 묵묵히 이 길을 가는 이유
끄끄, 끄으윽, 끄흣...
파티션 너머에서 모 선배의 미처 삼키지 못한 웃음이 괴상한 소리가 되어 조용한 사무실을 채웠다. 잠시 뒤 그 선배는 크하하핫 웃음을 터뜨리며 쑥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미안! 그런데 말이야, 파시오나리아 말이야, 그 까칠한 아이가 말이지... 크하하..."
과레스키의 가족소설 원고를 교열하고 있는 모 선배, 벌써 며칠째 저 상태다. 과레스키가 그렇게 재미있나?
그로부터 두 달 뒤, 그 과레스키가 <까칠한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책의 꼴을 갖추어 우리 앞에 도착했다. 너무 가볍지 않은가 했던 제목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거무튀튀한 표지도 이제 보니 제법 좋다! 이 책을 읽을, 읽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해야 할 텐데.
좋아하는 책을 기획하고, 필자나 역자를 섭외하고, 계약하고, 원고를 받아내고, 원고를 손질하고, 제목과 표지를 결정하고, 인쇄하고, 제본을 한다. 책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편집자인 내가 있다. 아니, 나도 있다.
나는 올해로 7년차 편집자가 된다. 책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지 7년째가 되는 것이다.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편집자가 될 줄 몰랐다. 그때까지 나에게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깔린 것, 내 책꽂이에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공부를 하기 위해 꺼내드는 것, 심심할 때 펼쳐드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대학 때에도 팸플릿 하나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출판사의 존재에 대해서도, 편집자라는 일에 대해서도 깜깜했던 것이다.
그런데 졸업 뒤 어떤 출판사에서 오라 해서 갔고,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나도 안다. 내가 좀 생각이 없는 인간이란 걸). 그리고 도무지 그 머릿속을 알 수 없는 사장, 지나치리만치 똑 소리 나는 편집장, 갖은 방면에 재주가 있는 편집자, 순수한 작가들을 만나면서 책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더불어 어려움도! 처음에는 쉬워 보였던 그 일이 7년이나 지난 지금은 참 만만찮고, 일을 계속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도 산적해 있다.
책을 만드는 일은 내게 여전히 멀고 먼 길이다. 아직도 미흡한 교정 실력, 책을 보는 안목이나 시장을 예측하는 능력의 부족, 작가나 거래처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서의 '삑사리'... 어떤 때는 이 일으 내 일이 아닌가봐 하는 의구심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가 이곳에 묵묵히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것은, 책을 만드는 일이 꽤 즐겁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고 사람과 소통하고자 애쓰는 작가들을 지켜보는 것, 책을 읽는 것,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해보는 것, 디자이너가 예쁜 표지를 만들어냈을 때 사무실 가득 도는 흡족한 미소, 칼같이 잘려진 얇은 종이더미, 기계에서 착착 떨어져 쌓이는 인쇄물과 조금은 퀴퀴한 잉크 냄새, 네모 반듯한 책 묶음이 사무실에 입고되었을 때 '이 책도 무사히 잘 나왔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내가 만든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좋다고 이야기해줄 때 가슴에 살짝궁 퍼지는 기쁨...
책을 만드는 일,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은 7년차 편집자인 나에게 이제 조금 알 듯도 싶고, 재미도 있고, 뭔가 좀더 다른 시도를 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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