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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창가에 한가로이 앉아 주역을 보니 언제 봄날이 다 지난지 모르겠다”

 

*문용직 선생의 <주역의 발견> , 신원봉 선생의  <인문으로 읽는 주역>에 이어 남회근 선생의 <주역계사 강의>까지 전담해 편집한 '주역통', 장미숙 편집위원이 편집자 노트를 써주어 이를 소개합니다. 장미숙 편집위원은 부키에서 출간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남회근 저작선 시리즈의 기획자이기도 하고, 남회근 선생의 <금강경 강의> <불교수행법 강의> 도 편집했으며, 앞으로 나올 남회근 선생의 저작물 시리즈 역시 담당하게 됩니다. <주역계사 강의> 편집자답게 '주역'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보통 내공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정작 본인은 "어떤 분야에 정통한 편집자가 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든다고 하네요. 아는 것이 많을수록 더 겸허해지나 봅니다.

   

주역 책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연히, 달리 대안이 없어서 주역에 대한 책을 세 권 진행했다. 그러고 나서 느낀 점은 어떤 분야에 정통한 편집자가 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회의였다. 이런 마음 역시 유학의 제1경전이라는 역경이 주는 무게일 수 있지만 말이다.

 

주역은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 주제 중 하나다. 삼천 년 동안, 크게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문화권에서, 서양에서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칼 융까지, 당대를 대표한다는 지식인이라면 주역 주석서 혹은 해설서 한 권은 냈지 않았나 싶을 정도 종류가 많다. 구체적으로 삼천 년 동안 170여 가문에서 삼천여 종에 이르는 주석과 해설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더 기가 질리는 건 그들이 공부한 세월과 어떤 경전보다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이다.

 

조선조 최고봉의 학자 퇴계 선생도 스무 살에 주역을 읽기 시작했는데,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몰두하다가 지병을 얻었다고 한다. 그 뒤 서른네 살에 복시(覆試)에 응시해 모든 과목에서 최고점인 ‘통(通)’을 받았지만 주역만은 요즘으로 치면 C학점 정도인 ‘조(粗)’를 받았다. 십 년이 넘도록 몰두해 읽고 받은 성적이었다.

 

 <주역의 발견>을 쓴 문용직 선생은 머리말에 2000년도에 처음 주역을 만났다고 했다. 이 책은 2007년에 나왔으니 접한 지 7년 만에 책을 출간했다. 물론 저자의 기질로 봐서 7년을 하루같이 들입다 파진 않았을 것이다. 책 속에도 나온다. 집중한 시간은 6개월 정도라고. 하지만 6개월은 집필에 집중한 시간이지 의문을 품고 궁리하고 공부를 한 시간은 훨씬 길었을 터이다.

 

두 번째 책은 신원봉 선생의 <인문으로 읽는 주역>이다. 신원봉 선생 역시 머리말에 책을 쓰게 된 지난한 과정을 밝혔다. 우선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 저자는 주역을 공부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대적으로 잘 풀이된 해석서 한 권을 번역하려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평이 좋은 책을 읽었는데도 64괘 괘사와 효사에 대한 해석이 저마다 달랐다고 한다. 여기서 회의가 들어 설득력 있는 관점을 골라 책을 쓰기로 방향전환을 하였으나 이제는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 가로놓인 이질적인 해석 틀이 문제였다. 서로 다른 틀을 가진 해석을 하나로 묶다가는 자의적이거나 나열적인 해석에 그칠 우려가 있어 일관된 틀을 찾았으나 하나의 틀로 전체 괘효사를 아우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시행착오 끝에 저자는 일관성과 보편성을 갖춘 해석 틀을 십익 중 하나인 단전에서 찾았다. 저자는 말한다. “이런 식으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 보니 어언 육칠 년의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애초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을 줄 알았더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주물럭거리다 보니 이제는 어느 부분이 인용된 것이고 어느 부분이 필자의 생각인지도 구분하기 힘들게 되었다.”

 

신원봉 선생의 머리말을 처음 읽을 땐 그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편집자로서 내 처지가 그 비슷한 지경에 이르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괘가 뭔지 효가 뭔지, 역경과 주역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왜 64괘 384효가 아니라 64괘 386효인지를 모를 때는 그저 내용이 어렵구나 정도였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모를 때는 뭣도 모르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들은 게 몇 가지 생기니 더 어렵고 괴롭다.

 

왜. 저마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는 주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좁게는 자구에 대한 해석이 각자 다르다. 사실 저자와 독자 사이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는 편집자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저자의 주장에 의의가 있고, 그 안에서 근거가 있으면 편집자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드러내면 된다. 하지만 편집자도 독자이고 보면 의문이 든다. 왜 이렇게 견해가 다양할까. 다양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전제가 다른 것도 있지 않은가. 하물며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받은 경전인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게’ 역경의 핵심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게’ 가장 큰 오류로 출발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역경은 주나라 문왕과 주공이 괘사와 효사를 만들었고 역경의 참고서인 십익은 공자가 지었다고 하나 어떤 사람은 저자로 알려진 이 셋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대표적이고 대립적인 자연현상을 본떠 만든 팔상을 기초로 육십사괘를 만들었다고 의미를 부여하나 어떤 사람은 괘는 의미 없는 기호일 뿐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각 괘의 여섯 효는 연결되어 있고 육십사괘도 서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나, 어떤 사람은 6효괘는 모두 독립적이라고 한다.

 

주역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 다르다. 주역이란 무엇인가 묻는 본질적인 접근도 있고, 글자 하나하나를 해석하는 훈고학적 접근도 있다. 또 주역을 천지만물의 이치를 드러내는 철학서라는 해석도 있고,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 불안한 미래를 알아보는 점서라는 정의도 있다.

 

상(象), 수(數), 이(理)에 입각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주역을 유학의 뿌리로 보는 견해도 있고, 현대의 학문적 성과를 적용하여 고금의 주역 연구 방법과 연구 결과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주역을 연구한 성과가 백인백색인 것처럼 주역을 바라보는 관점도 편차가 크기는 마찬가지이다. 주역을 처세서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전이란 권위에 눌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주역을 점치는 책일 뿐이고 허황된 미신이라며 터부시하기도 한다. 고대에 점의 역할이 무엇이었고, 점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막연한 거부 반응인 것이다.

 

이처럼 주역은 서로 접점이 없는 수많은 주석과 해석, 철학이 난무한다. 그래서 어렵고, 뭐가 맞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편집한 세 권의 책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주역의 발견>은 제목 그대로 그야말로 ‘발견’이다. 주역에 빠져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단계를 지나 멀리 두고 위에서 내려다본다. 문제의식이 뚜렷하고 안목이 넓고 관점이 새로우면서도 치밀하다. 연구 방법도 현대적이다. 물론 개념은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문명사, 고고학, 기호학, 인지언어학 등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저자가 수식까지 활용하니 읽는 데 인내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발견을 해내는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는 과정은 즐겁다. 또 더없이 솔직하다.

 

<인문으로 읽는 주역>은 앞에 길게 인용한 저자의 집필 동기와 과정만 보아도 충분히 읽을 만하다. 주역에 관한 고금의 뛰어난 해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고, 그것을 일관된 해석 틀로 정리하려고 애썼으며, 주역에 덧붙은 비인문적인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역경을 평이한 언어로 기록하여 고대인의 삶을 보여 주는 한 편의 문학 작품으로 그려 낸다.

 

이번에 낸 남회근 선생의 <주역계사 강의>는 앞의 두 책보다 훨씬 재미있다. 우선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를 옮겼으니 구어적 특성 때문에 그렇다. 여기에다 종횡무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저자의 방대한 학문적 바탕이 유학을 뿌리라는 <계사전>을 강의하기에 적격이다. 사서오경 경전은 물론이거니와 불경과 도가 경전을 넘나드는 강의는 막힘이 없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강의를, 한 편의 소설 읽듯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야말로 “창가에 한가로이 앉아 주역을 보니 언제 봄날이 다 지난지 모르겠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독자들께도 이런 나의 느낌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주역계사 강의

저자
남회근 지음
출판사
부키 | 2011-02-2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계사전은 공자가 역경을 연구하여 얻은 바를 소개한 보고서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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