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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노트 : 『굿바이 심리 조종자』

당신 삶의 진짜 시작, 어쩌면 지금부터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는 꼭지가 하나 있다.

두 개의 실험대상 집단을 선정한 뒤 우표를 판매해, 얼마나 팔리는지 기록한다.

이 때 한 개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콜라를 한 잔 권한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콜라 한 잔을 마신 사람들은 우표를 훨씬 더 많이 산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상대의 호의에 보상해야 한다는 메커니즘대로 움직인다.

이 메커니즘은 당신으로 하여금 필요 없는 신용카드를 발급받도록 하거나, 필요 없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거나,

필요 없는 신문을 구독하도록 하거나, ……필요 없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 소속되도록 한다.

 

『설득의 심리학』 『굿바이 심리 조종자』  표지이미지

 

이 메커니즘에 저항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콜라 한 잔’이 호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뿐이다.

콜라 한 잔에 고마워하는 그 순간,

 당신은 이 메커니즘의 시동을 위한 명령어를 스스로 입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득의 심리학』 이 ‘콜라 한 잔’에 저항하는 방법을 말한다면,

크리스틴 프티콜랭의 『굿바이 심리 조종자』

한 발 더 나아가

‘콜라 한 잔을 권하는 손의 주인’, 즉 ‘심리 조종자’ 그 자체에 저항하는 방법을 말한다.

원고를 읽으며,

프티콜랭의 프레이밍 능력에 몇 번이나 소름끼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콜라 한 잔’에 저항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다행이기는 하지만,

‘콜라 한 잔을 권하는 손의 주인’에 저항할 수 없다면 

그/그녀는 한 번의 실패로 단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그녀는 당신에게 몇 번이고 더, 당신이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콜라 한 잔을 권할 것이다.

그/그녀는 손해 볼 것이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그/그녀는 당신에게 우표를 팔 수 있으니까.

 

『굿바이 심리 조종자』 에서 프티콜랭은 시선의 전환을 요구한다.

심리 조종자의 심리 조종 방법을 패턴에 따라 분석한 뒤, 그것들에 저항하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한다.

그/그녀는

당신에게 원하는 말/행동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혼란, 죄책감, 공포…….

마지막 장에서 프티콜랭이 공개하는, 심리 조종자에게 저항하기 위한 마법의 문장들은

마치 블럭버스터 영화의 클라이막스 같다.

 

딱 하나만 공개하자면,

프티콜랭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그럴듯한 궤변으로 당신을 유혹하는 심리 조종자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라고 조언한다.

내가 (네 말대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상상만으로도 신나지 않는가?

당신이 프티콜랭의 조언대로 심리 조종자에게 쏘아붙인다면,

우표를 한 장도 팔지 못한 심리 조종자는 파산할 것이다!

『굿바이 심리 조종자』 에는 그런 실제 사례들이 잔뜩 실려 있다.

 

첫 번째 시안들이다. 

심리 조종자에게서 막 벗어났을 때의 느낌을 강력한 이미지로 전달하고 싶었다.

담당 편집자인 고독이가 직접 고른 이미지로 작업한, 확정되어 출간된 표지의 초기 버전은 이미 이 단계에 포함되어 있었다가 끝까지 살아남았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았던 것은 이 시안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안 1, 2는 ‘…을/를 …할 때 필요한 …가지’ 같은 제목의, 말랑말랑한 심리학 도서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두 번째 시안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주의했다.

 

 

아마 이 시안으로 확정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은 시안 1-1, 1-2보다 시안 2-1, 2-2 쪽이었다.

손목을 구속하던 수갑을 푼 뒤의 기쁨을,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나비 모양으로 표현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미지의 강력함이 오히려 내용을 가리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첫번째 시안에도 포함되어 있던 그 시안으로 결정되었다.

촘촘한 창살을 내 몸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구부린 뒤의 이미지는 자유의 기쁨 외에도,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쇠로 만들어진 창살을 맨손으로 구부려야 한다!) 떠올리게 한다.

 

당신에게도 얼굴만 봐도 숨이 막히는 ‘그 사람’이 있다면,

혹은 운좋게도 아직 그렇지 않지만 미리 대비하고 싶다면

『굿바이 심리 조종자』는 좋은 (심리 조종자의 조종에 대한 상황별) 예상 문제집이 될 것이다.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었다면, 자, 이제부터가 (조종당하지 않는 당신의 삶의) 진짜 시작이다.
당신에게도 행운을 빈다,

나처럼.

 

 

이렇게 좋은 책인데 예쁘기까지! (얄미운 목소리로)
자신이 작업한 책 사랑이 이번에는 조금 오래 가고 있는
부키 디자인팀 지구인 씀

 


굿바이 심리 조종자

저자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8-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심리 조종은 가족의 정을 빙자한 강탈, 직장에서의 파워게임,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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