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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던 민심은 2007년 대선에선 보수 성향의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2007년 한국 대선의 경우 청년층조차 보수 이명박 후보를 선호했다는 점에서 2002년 대선의 ‘흥미로운 역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그러나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저자 한종우 교수는 현상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으나 좀 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는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두 선거에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청년층은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두 차례의 대선에서 청년층의 역할은?

청년층의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 사용은 진보적 후보와 보수적 후보 양자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에 의해 활성화된 청년층 및 그들의 정치적 결정은 진보 좌파부터 보수 우파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의 모든 지점을 아우를 수 있다. 2002년 한국 대선과 2008년 미국 대선에서는 그것이 공통적으로 진보 후보 쪽에 쏠렸지만, 그렇다고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이끌어 낸 청년층의 참여가 정치적 스펙트럼의 어느 한쪽만을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현상은 각 선거 및 후보자들의 성격에 의해 좌우된다. 실제로 2007년 대선 결과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은 2002년 대선 때와는 상반된 내용을 보여 준다. 아래의 표를 보면 2007년 대선 및 총선에서는 전 연령 집단에서 전반적 투표율 하락 흐름이 나타났다.

청년층 가운데 30대 초반의 투표율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져 13.0퍼센트포인트 감소했고, 20대 초반은 20대 후반에 비해 높은 투표율을 나타냈다. 전 연령 집단에서 투표율 하락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 사용과 청년층 선거 참여 사이의 관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2007년 대선에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 사용 전반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2004년 3월 12일 통과된 공직선거법이다. 이 법에 의해 선거일 180일 전부터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를 담은 문서나 사진, 광고 등의 유포 및 게시가 규제되었기 때문에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활용한 선거 운동이 현격하게 감소했다. 이는 곧 새로운 실험의 위축이었다. 또 청년층의 표심도 처음부터 여당 정동영 후보에 비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2011년 4월 27일 국회의원 및 지자체 단체장 재·보선에서는 반이명박 운동과 투표 동원에 있어 선거에서의 신네트워크 정보기술 지속 효과가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및 그 밖의 실정으로 인한 실망감이 워낙 강했던 탓에 상당히 높은 투표율이 예상되었던 이 선거에서는 분당 을 선거구에서 맞붙은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와 야당 손학규 후보 간 대결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손 후보가 당선되면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38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재·보선의 투표율은 39.4퍼센트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실시된 6번의 선거 가운데 가장 높았고 2000년 이후 재·보선 투표율로도 최고치였다. 특히 분당 을 선거구의 투표율은 49.1퍼센트로 2008년 총선 때의 45.0퍼센트를 웃돌아, 이 선거구의 격전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는 성격을 띠고 있음을 드러냈다.

 반이명박 세력이 압승을 거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와 학자들은 다음 두 가지 내용을 들었다. 386세대와 2030세대라는 청년층의 귀환, 그리고 그들의 온라인 소셜 미디어 이용이다. YTN의 시간대별 출구 조사와 트위터 사용량 집계는 트위터 사용량 증가와 강재섭 후보 반대표 증가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아래 그림 참고)

 

 

30대와 40대(대부분 2030세대 및 386세대)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몰린 시간대는 출퇴근 시간인 오전 9시와 오후 8시였다. 오후 7시의 투표율은 1.8퍼센트로 아주 낮았지만 트위터로 활성화된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대거 투표소로 몰려가자 투표율은 10.7퍼센트로 껑충 뛰어 18대 총선 같은 시간대 투표율인 5.4퍼센트보다 2배나 높았다. 분당 을 선거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 2030세대 및 386세대가 퇴근길에 손학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오후 7시에 42.8퍼센트였던 투표율이 8시에는 49.1퍼센트로 급증했다. 위 그림을 보면 보면 트위터 메시지 전송 및 리트윗이 활발한 시간대에 손학규 후보가 우위를 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후보의 트위터 팔로어 수도 이 상관관계를 명확히 보여 준다.

두 후보는 2010년 8월부터 트위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 후보의 팔로어 수가 1만 8천 명으로 강 후보의 팔로어 3천 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강원도 지사 자리를 놓고 경쟁한 최문순 후보와 엄기영 후보도 비슷했다. 야당의 최문순 후보는 2009년 6월부터 트위터를 쓰기 시작해 팔로어 수가 4만 명 선이었는데, 2011년 1월에 트위터를 시작한 여당 엄기영 후보의 팔로어는 약 8천 명이었다.

결론적으로 2007년 한국 대선이 2002년 대선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는 주장은 온라인 선거 활동이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부족하다. 2007년 대선 결과를 청년층 참여 수준의 하락과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공직선거법이 온라인 선거 운동을 현저히 위축시켰을 뿐 아니라 청년층만이 아니라 전 연령 집단의 투표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2011년 4월 27일 재·보선의 결과는 청년층의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 사용이 선거 정치 및 선거 운동에 지속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이 책의 주요 논점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 중 발췌 재구성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

저자
한종우 지음
출판사
부키(주) | 2012-08-2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다음 대통령, SNS에 물어보라! 노무현과 오바마를 당선시킨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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