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국 노스다코타 주 주립은행인 노스다코타 은행은 ‘월가 점령’ 시위(반월가 시위)대도 좋아하는 은행일지도 모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대형 은행들이 부도 위기에서 정부 재정 투입으로 근근이 생존할 때 노스다코나 은행은 그해 57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순이익을 낸 것 자체보다는 노스다코타 은행이 주로 취급하는 상품이 더 놀랍습니다. 흔히 대형 금융권에서 판매하는 복잡한 파생상품 대신 소상공인이나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지역주민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출에 집중한다는 것이지요.(한겨레신문 2011년 10월 19일자 기사 참고) 뉴욕타임스는 이를 ‘기적’이라 불렀는데요, 그렇다면 독일에는 이런 기적을 상시적으로 행하는 은행이 있습니다. 국영 은행 슈파르카센입니다.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 체험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저자 토머스 게이건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국영 은행 슈파르카센의 역할에 감탄하며 이를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아, 진짜 이런 은행 한국에도 있어야 하는데요! <편집자 주>
슈파르카센, 노스다코타 은행보다 한 수 위!
미국이 금융 위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중의 하나는 독일의 슈파르카센(Sparkassen)과 유사한 국영 은행을 도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운영하고 제조업 일자리에 투자하는 그런 은행 말이다.
독일 슈파르카센을 속속들이 알려 주는 책을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슈파르카센은 중소기업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국영 은행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기술밖에 없으나 전도가 유망한 중견 기업이 일시적인 자금 압박에 시달리기라도 하면 즉시 구제금융을 지원해 준다.
“그래 좋아. 그러나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다. 내 친구 V가 말한 대로 슈파르카센은 지역의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지역의 실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게 장점인 반면 스캔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미국처럼 운영되지는 않는다. 신용 스왑과 파생 상품 대신 고숙련 제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민당 간부에게 “슈파르카센도 민간 은행처럼 신용카드를 발급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더니 “내 것을 보세요.”라고 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신용카드를 보여 주었다. 슈파르카센은 벌어들이는 것 이상으로 돈을 쓰거나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해 높은 이자를 부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독일인 친구 하나는 신용 한도를 넘겨 카드를 긁어 대면 가혹한 제재가 뒤따른다고 알려 주었다.
“정말로 그래요? 이자율이 얼마나 되는데요?”
“아주 높아요. 한 11퍼센트 정도 되려나?”
내가 알기로 독일인은 수익률이 낮은 제조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수익률이 높은 금융업을 키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미국은 정반대이다. 다양한 고리대 수법을 동원하고 온갖 명목의 숨은 수수료를 부과하여 이용자에게 바가지를 씌운다.
“슈파르카센도 민간 은행 뺨치게 높은 이자율로 대출해 줄 때도 있어요.” 어떤 독일인 친구가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그렇겠지요. 하지만 민간 은행은 슈파르카센이 정해 놓은 이자율보다 더 높게 받기가 어려울 텐데요.”라고 말했다.
“맞아요. 민간 은행은 입만 열면 불평을 합니다. ‘우리가 슈파르카센과 경쟁한다는 것은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슈파르카센은 정부가 손실을 메워 주니까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이에요.”
불공정하기는 하다. 확실히 사회민주주의 국가답다. 미국은 은행에 관한 한 ‘공적 대안’인 국영 은행을 용납하지 않는다. 독일 정부가 슈파르카센을 든든하게 보살펴 주는 것처럼 미국 정부도 민간 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했다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한마디로 독일에서는 저수익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기피하고 고수익 금융업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또 기계를 만지는 제조업 노동자여서 대출을 받지 못해 파산하는 광경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시카고에서는 제조업체가 망하기라도 하면 몇 푼 안 되는 연금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소송 의뢰가 밀려와 나는 정신을 못 차린다. 미국에 슈파르카센 같은 금융 기관이 없어서 가난한 노동자가 골탕 먹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볼프강 슈트렉은 역사가 오래된 대형 민간 은행이 제조업에서 자금을 빼내려고 하기 때문에 독일 모델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자본은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슈트렉의 말은 넓은 시야에서 보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융 시스템이 어디서나 완벽하게 ‘글로벌’한 것은 아니다. 독일에는 금융 상품의 테두리 밖에서 움직이는 자본이 충분하기 때문에 독일 모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핫머니가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사실, 프랑크푸르트가 뉴욕이나 런던과의 경쟁에서 ‘뒤로 밀려났다’는 사실 덕분에 독일 모델은 살아남았다. 독일이 금융업에 눈을 돌렸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글로벌 금융 자본을 유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독일에서는 금융 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거품이 끼는 일이 없다. 또 은행원이 멀쩡한 사람을 꼬드겨 무리하게 대출을 받게 하거나 빚낸 돈으로 낭비와 사치를 일삼다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인은 독일이 금융 부문에서 뒤처졌다고 손가락질 하며 놀려 댔으나, 사실 그때 독일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다.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본문 중에서 발췌 요약
'부키 books~2012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이야기에 한국도 공감!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미디어 반응 (0) | 2011.10.25 |
---|---|
복지 확대하면 경제에 악영향? 정말 그럴까? - 장하준과 토머스 게이건 (0) | 2011.10.20 |
정말로 미국은 유럽보다 잘 사는가? - 통계의 거짓말 (0) | 2011.10.19 |
미국에선 가능? 독일에선 미션 임파서블? 그럼 한국은? (0) | 2011.10.18 |
이런 게 사는 거지 - 내 연애가 빈약한 건 ‘복지’ 탓 (0) | 2011.10.18 |
- Total
- Today
- Yesterday
- 힘이 되는 짧은 글귀
- 김용섭
- 와일드
- 비즈니스영어
- 가족의두얼굴
- 장하준
- 비즈니스·경제
- 남회근
- 자녀교육
- 문학·책
- 진로지도
- 심리에세이
- 최광현
- 어학·외국어
- 힘이되는한마디
- 가족에세이
- 바버라에런라이크
- 아까운책2012
- 영어
- 셰릴 스트레이드
- 안녕누구나의인생
- 교양과학
- 부키전문직리포트
- 직업의세계
- 부키 전문직 리포트
- 지난10년놓쳐서는안될아까운책
- 긍정의배신
- 직업탐구
- 남회근저작선
- 셰릴스트레이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