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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었습니다. 모 주간지에서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맞아 대학생들이 등록금에 허리가 휘청거려 ‘연애’니 ‘캠퍼스의 낭만’이니 하는 말은 그림의 떡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아, 이제 청춘의 연애도 부익부 빈익빈인가 싶어 입이 썼습니다. 하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해도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졸업할 때쯤에는 거액의 학자금 빚을 지는 한국의 대학생들에게는 대학 등록금이 무료이거나 등록금을 부과하는 주라 해도 연간 수백 유로 정도로, 미국 사립학교의 하루치 수업료 수준인 독일이 참으로 부럽겠습니다.
맥주처럼 톡 쏘고 소시지처럼 쫀득한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에도 이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잘 정비된 복지제도기 데이트성공률을 높인다는 것이지요. 어떤 내용인지 한 번 살펴보지요. <편집자 주>
이런 게 사는 거지 (데이트 편) : 내 연애가 잘 안 풀리는 건 어쩌면 빈약한 ‘복지’ 탓?
파리만큼 여성의 우위가 강하게 느껴지는 도시도 없는 것 같다. 가판대의 패션 잡지도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색채를 띤다. 미국 여성들이 얘기해 줬는데, 프랑스어판 『엘르』는 진짜 정치 에세이와 논평을 싣는단다. 사회민주주의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사실 처음에는 여성이 기를 펴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나칠 정도로 여성적인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엘르』가 펼쳐져 있는 가판대, 지하철 안에서도 스커트 차림 일색인 풍경, 그랜드피아노처럼 생긴 흑백 건물 등등.
하지만 최소한 미국하고만 비교해 보더라도 여성의 지위가 그렇게 낮지 않다. 먼저 프랑스 여성의 상대적인 급여가 미국보다 많은 편이다. 둘째, 여성이라고 해서 직업이나 임금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여성은 일을 하면 사회민주주의 성격의 각종 수당을 풍부하게 받는 덕에 출산율이 미국 여성보다 아주 약간 낮은 정도이다. 사회민주주의 탓에 출산율이 하락한다는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프랑스에서만큼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근에만 그런 게 아니라 과거 수십 년 전부터 프랑스는 자녀가 있는 여성에게 상당히 많은 수당을 지급했다. 프랑스만큼 오랫동안 자녀 수당을 지급한 나라는 없다. 이 덕분에 프랑스 여성은 아무 걱정 없이 자식을 낳을 수 있고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전체 인구수도 독일 다음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여성은 자녀 수당을 얼마나 받을까? 먼저 26주의 유급 출산휴가를 얻는다. 여성만큼은 아니지만 남성도 유급 출산휴가를 누릴 수 있다. 또 자녀 보육비가 무료이다. 보모를 둘 때 들어가는 비용을 정부가 전액 지원한다.
유럽에서 여성은 100년 가까이 살면서 여성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남성은 어떤가? 결혼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면 돈이 없는 부르주아인 우리에게는 유럽이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결혼을 고민하는 여성이라면 상대 남성의 소득을 묻는 게 보통이지만,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진 유럽 여성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느 날 저녁 시카고의 한 맥주 전문점에서 록 음악 평론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맥주를 두 잔째 먹을 무렵 그는 프랑스 여자가 어떤 점에서 좋으냐고 자꾸 물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미국 여자가 남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만약 돈을 잘 번다고 하면 옆에 있지만, 못 번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요.”
“이봐요, 그럼 유럽 여자들은 돈 문제에 신경을 안 쓸 것 같아요?”
“아, 그건 아니고요. 최소한 첫 번째로 물어보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사실 미국 여자들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이들이 중산층 남성 또는 맥주 전문점에서 노는 노동 계층 남성에게 얼마를 버느냐고 묻는 것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어떻게 해야 자식을 더 많이 낳을 수 있는가? 어디에서 자식을 더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까?
나는 다른 누구보다 미국의 프리랜서 록 음악 평론가나 노동조합 대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그렇다. 이건 다윈의 적자생존 논리에 따르는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누구든 사회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윈주의자라면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가난한 사람이 많으므로, 결혼을 고민하는 여자라면 남자의 소득을 물어봐야 한다.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전체 아동 중 빈곤 아동의 수가 4분의 1 가까이 되는 현실에서는 그러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러나 정부에 가정을 꾸리는 본능(nesting instinct)을 충족시켜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프랑스 여성은 미래의 남편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별로 없다. 최소한 록 음악 평론가와 만나 데이트를 할 여유는 있다. 왜냐고? 자녀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 보육 시설도 더 좋으니까. 교육비? 당연히 무료니까.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본문 중에서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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