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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처럼 톡 쏘고 소시지처럼 쫀득한 사회과학 에세이,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 체험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일찌감치 그 제목이 정해진 경우입니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넣을까 말까를 두고 오래 고민했을 뿐, 정말로 딱 떨어지는 제목이었죠. 그래서 제목으로 말놀이도 많이 했어요.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책임편집을 맡은 오렌지마멀레이드는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죠”에서 “편집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죠”로 점차 강도를 더해갔고, 부키 웹의 경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면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는 진짜 망했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기획자 콘돌 또한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라는 제목으로 기획자 노트를 썼네요.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제목인 듯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기획자 노트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동구권과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한 시대를 풍미한 이데올로기들이 아침저녁 나뒹구는 낙엽처럼 값어치가 떨어져 가기만 하던 1990년대 초반, 당시 화제의 책 가운데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소설이 있었다. 중국 문화혁명을 경과한 지식인들의 쓸쓸한 초상과 역사의 격변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휴머니즘의 씨앗을 담담하게 그려낸 명저였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세상은 도저한 변화의 급류에 휘말리기 시작한 때라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람아 아 사람아 vs 인간아 인간아 

 

한 시기 화제가 되는 책은 그 제목이 여러 가지로 변주되어 불리거나 중의적인 뜻으로 사용되기 마련이다. 이 무렵 서점가에서 이 책을 찾으며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을 그대로 다 호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제목 가운데의 익숙하지 않은 감탄사를 빼고 “‘사람아 사람아’ 있어요?” 하고 묻는 것은 그나마 매우 양호한 케이스였고 줄여서 “사람아 있어요?” 또는 “아 이 사람아’ 하나 주세요” 등.

압권은 ‘인간아 인간아’였다. 사람이나 인간이나 같은 뜻이지만 왠지 ‘인간아 인간아’라고 하면 영 덜떨어진 이에게 지청구를 주는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그래서 당시 편집자들끼리는 누가 실수를 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을 한다 싶으면 ‘인간아 인간아’ 하면서 혀를 쯧쯧 차는 게 하나의 유행이기도 했다.

 

이번에 부키가 출간한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제목이 길 뿐만 아니라 한때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 원정 출산까지 서슴지 않던 우리 사회의 세간의 통념을 뒤집는 내용이어서, 역시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불릴 것 같은 예감이다.

 

 

복지 논쟁, 이 책 하나면 끝! 

 

 

특히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요즘 정치권의 화두인 복지 논쟁을 한방에 정리할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복지 제도나 시스템, 이를 뒷받침할 세원의 문제 등으로 논쟁이 벌어지면, 사실 일반인들의 이해가 쉽지는 않다. 우리가 복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몇 가지 복지제도로 인한 혜택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좀 삶의 결이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근본적 회의감 때문일 터. 정통 미국 중산층의 생활양식과 유럽 서민층 일반의 생활을 두루 체험하고 생생한 라이프 스타일 대조를 통해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를 통쾌하리만치 쉽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엔 또 어떤 변주를? 설마 한국에서 태어난 게 불행이야 

 

이번 책 제목의 다양한 변주 조짐은 먼저 편집 과정에서부터 일어났다. 편집자에게 작업이 순조로운지 물을라치면, 마감에 쫓기고 있는 담당자 오렌지마멀레이드는 “아 편집은 잘 되고 있어요. 내가 (편집자로) 태어난 게 잘못일 뿐이지” 하며 이마에 주름을 팍 잡곤 했다. 까칠하긴….

 

며칠 전 친척 어른 고희연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내 테이블에는 십여 년 전 미국에 이민 가서 나이키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당숙이 앉아 계셨고 식사를 하는 동안 화제가 미국의 경제 사정으로 이어졌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서민층의 체감 경기는 한국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안 좋다는 이야기,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여 특히 빈곤층과 이민자들의 고생이 심한 상황 등을 들려주셨다.

 

“그래 넌 출판일 한다면서, 요샌 무슨 책 만드니?”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생이 심해서인지 부쩍 나이가 들어 보이는 당숙께서 잔을 권하며 물으셨다.

“아, 저… 요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란 책을 만들고 있어요.”

내 대답에 입 안의 음식을 한참 우물거리던 당숙께서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쓸쓸한 표정과 함께.

“거, 참… ‘미국에 이민 간 것이 잘못이야’도 하나 내려무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저자
토머스 게이건 지음
출판사
부키 | 2011-10-1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무한경쟁 미국 vs 여유만만 유럽 어디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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