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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 편집부는 어서 황혼의 들판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애교 듬뿍 청원부터 ‘벌써 8월입니다. 황혼의 들판은 언제...’라고 묻는 꼼꼼한 애독자까지 필립 리브의 ‘견인 도시 연대기’는 참으로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부키 블로그 죽돌이인 저야 그런 성원이 기뻤습니다만, <황혼의 들판> 편집자 클로버는 편집 기간 내내 야근을 해가며, 토요일 일요일도 일하느라 얼굴이 노랗게 떴답니다. 클로버는 평소에 소설을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 '견인 도시 연대기'의 경우 작품 자체에 푹 빠져 있어 편집자 노트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어제(화요일) 겨우 하루 쉬고 나와 편집자 노트를 내밀었습니다.클로버의 편집자 노트, 소개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편집자 노트 _ <황혼의 들판> 등 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
내 마음의 네버 앤딩 ‘견인 도시 연대기’
필립 리브의 ‘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의 마지막 권 <황혼의 들판>을 드디어 번역 완간했다.
<황혼의 들판>은 분량이 656쪽이나 되는 만큼 그 스케일과 등장인물의 수, 복잡하게 얽힌 굵직굵직한 사건들에서 400쪽 대의 앞 권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실 편집자인 나도 이 책에 빠져 ‘검은 돛을 펼치고 사막을 달리는 배 위에서 적들과 한바탕 총싸움에 육탄전을 벌이는 헤스터’, ‘공중 도시 에어헤이븐의 쇠로 된 갑판을 뚫고 올라와 헤스터를 구하는 기계 인간 슈라이크’, 그리고 ‘전쟁이 터진 뒤 대포와 로켓의 희뿌연 연기 속에서 땅을 뚫고 올라와 주변 건물들을 집어삼키는 위성 타운 해로우배로우’ 등으로부터 여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톰과 헤스터, 렌의 얽히고설킨 모험의 대단원이라 할 수 있는 <황혼의 들판>은 그 스케일이나 사건의 복잡성에서도 시리즈 중 단연 최고이지만, 1권부터 4권에 걸쳐 죽 성장하고 변모하는 캐릭터들, 견인 도시 런던과 공중 무역 도시 에어헤이븐으로 시작된 온갖 다양한 미래 도시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앞의 세 권의 책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하는 묘미가 있다.
일례로 이 책의 주인공 헤스터 쇼를 보자. 헤스터는 아주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살해되는 현장에 있었고 자신 역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채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녀다. 오직 복수심만으로 세상을 살았다. 게다가 반쯤 뭉개진 얼굴에 비뚤어진 코 때문에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엄청나다.(1권 모털 엔진)
그런 헤스터가 톰을 만나 오직 그만 바라보고 그만 사랑하고 혹 누군가에게 그를 뺏길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안타까움마저 자아낸다.(2권 사냥꾼의 현상금)
심지어 그녀는 딸 렌을 보면서도 렌의 예쁜 외모를 질투하고 혹시나 톰이 자기보다 렌을 더 사랑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3권 악마의 무기)
그러나 클라우드 나인 저택에서 스스로 톰과 렌을 떠나보내고 난 뒤 그녀는 달라진다. 오직 톰만 알던 그녀가 톰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도 위험을 자처하게 된 것이다.(4권 황혼의 들판)
그 외에 마음이 곧고 따스한 톰과 렌, 반 견인 도시 연맹 소속의 뛰어난 전사였다가 죽은 뒤 스토커로 부활하여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리는 안나 팽, 죽은 사람을 스토커로 만드는 일을 하는 외과 엔지니어였다가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지도자가 되는 위논 제로, 허풍선이에 사기꾼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페니로얄 교수, 오직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계 인간이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스토커 슈라이크 등도 이 책을 더 풍성하고 완성도 있게 만든다.
(그런데 혹 견인 도시 연대기를 읽은 독자 분들은 눈치채셨는지? 어째서인지 여자 캐릭터들은 죄다 역동적일 뿐 아니라 사건의 중심에 있고 뒤로 거듭할수록 변화하고 성장하는 반면, 남자 캐릭터들은 악당이거나 평범하고 착한 보통 사람에 머물러 있다. 왜일까???)
나는 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의 반쪽 편집자이다. 다른 편집자가 작업한 <모털 엔진>과 <사냥꾼의 현상금>에 이어 <악마의 무기>와 <황혼의 들판>을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1권과 2권을 3권 작업 중에 스킵하듯이 읽었고 출간에 임박해서까지도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뭐지?” 하는 고민을 했더랬다. 배경은 SF인데 내용은 가족소설 내지는 성장소설, 추리소설이었고 정신없이 벌어지는 서로 다른 사건들과 그것들의 각기 다른 성격 때문에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4권 <황혼의 들판>을 읽으면서 그 모든 캐릭터들과 사건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을 경험했다. “아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더랬다. 감상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모털 엔진>은 ‘암울한 미래 도시’와 ‘모험 이야기’ 대한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사냥꾼의 현상금>은 ‘판타지’와 ‘로맨스’, ‘인간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또는 회색 마음)을 잘 대비해 보여 준 책이다.
(한 선배가 이런 질문을 던졌더랬다. “작은 도시 하나를 팔아넘긴 헤스터와 그러한 사실을 눈감아 주는 대신 일생 동안 자신의 도시를 지켜 달라고 요구한 프레야…, 클로버는 어떻게 생각해?”)
<악마의 무기>는 열다섯 사춘기 소녀와 늘 초조하고 불안한, 즉 엄마로서 결함이 있는 엄마, 그리고 좀 무능력하지만 착한 아빠가 나오는 ‘가족소설’이자 노예 상인과 거짓말쟁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등장하는 ‘풍자소설’이다.
<황혼의 들판>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환경문제,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사회소설’이다. 물론 SF, 추리, 판타지, 어드벤처는 기본이다.
이처럼 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은 그 한 권, 한 권이 매우 흥미로워 한 권씩만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지만, 시리즈 전체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캐릭터, 미래 도시들의 다채로운 모습, 뒤로 갈수록 강해지는 환경과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제대로 느끼고 경험하고 싶다면 순서대로 다 읽어 나갈 것을 '강권'한다!!!
아마도 <황혼의 들판> 마지막 책장이 가까워질 때쯤이면 읽지 않은 장이 몇 장밖에 남지 않았음이 가슴이 아릴 만큼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2011년 8월 30일 부키 기획편집부 클로버 씀.
클로버의 사족
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은 영국과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등의 나라에서 인기리에 읽히고 있으며 2002 네슬레 스마티즈 어워드 금상 수상, BBC <블루 피터 북> 선정 ‘2003 올해의 책’, 웨버 카운티 도서관 선정 ‘2004 꼭 읽어야 할 SF 걸작’, 영국서점연합회 선정 ‘2004 최고의 SF 소설’,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2005 최고의 장르 소설’, 2006 가디언 아동소설 상, 2007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상, 2007 일본 SF대상 ‘성운상’ 해외 장편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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