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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 노트 - 나는 왜 이 책을 택했는가! <긍정의 배신>

 

편집자 주 : <긍정의 배신>(원제 Bright sided)의 기획자는 부키 정 모 기획부장입니다. 국내에선 상당히 낯설다고도 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에 매료되어 <긍정의 배신>을 비롯해 다른 저서들의 출간도 함께 추진한 분입니다. 출판인은 책으로 말하면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데, 억지로 졸라 기획자 노트 원고를 받았습니다. 안 받았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긍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활동상을 중심으로 작성된 흥미진진 기획자 노트, 함께 보시죠.

 

이제는 희미해진 ‘레알’ 저널리즘의 미덕, 새롭게 부활하다!

<긍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에 대해

 

 

2009년 가을, ‘아마존 놀이’를 하던 중,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신간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Bright Sided>. 아마존 놀이란 브라질 아마존 강에서 급류 래프팅이나 뗏목 탐험을 하는 레저 활동이 아니고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접속해 책더미를 뒤지는 일이다. 그러니까 별로 액티브하지도 않고, 놀이라고 명명했지만 사실은 업무에 가깝다.

 

하지만 아마존 놀이는 대략 5백만~6백만 종을 넘는 망망한 장서의 바다를 마우스 하나에 의존해 표류한다는 면에서는 뗏목 탐험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잠깐 머리 식힐 요량으로 클릭질을 시작했다가 마음에 와닿는 책이나 저자 하나를 발견하여 줄줄이 그 내역을 캐들어 가다 보면 정보의 폭포수에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 三千尺)’으로 내리꽂히는 일이 다반사라는 점에서, 꼭 래프팅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

 

탐사 저널리즘의 시초 <Nickel & Dimed>

이번에 부키에서 출간한 <긍정의 배신>의 원서가 바로 이 ‘Bright Sided'이다. 짧고 당돌한 제목은 이색적이지만 옆에 붙은 저자명이 매우 낯익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에런라이크는 요즘 시기 미국의 대표적 시민 운동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가 유명한 것은 화이트컬러 노동자를 위한 조합 조직 'United Professionals'의 창설자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사회주의 조직인 DSA(Democrtic Socialist of America)의 명예 의장이라는 지위 때문만은 아니다. 에런라이크는 저널리스트이자 미국 시민사회에 큰 각성과 분발을 촉구시킨 여러 베스트 셀러의 저자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술 활동과 사회 참여가 깔끔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은, 여느 유명 저자나 사회 활동가들과도 구분되는 에런라이크의 주요한 특징이다.

 

이미 여러 편의 저작을 통해 사회 이슈에 대한 발언을 꾸준히 해오던 바버라 에런라이크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책은 <Nickel & Dimed>이다. nickel은 5센트, dime은 10센트 동전이니 미국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 중 하나이다. 티끌처럼 작다는 뜻이기도 하고 야금야금 갉아먹는다는 관용어로도 쓰인다.

 

 

이 책은 열심히 일해도 좀처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빈곤 근로층 즉 워킹푸어 현실을 비판한 책인데, 당시 화제가 되었던 것은 저자가 현실을 생생하게 파악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직접 웨이트리스, 호텔 종업원 등 저소득 노동자로 취업해 생활하고 이를 토대로 집필을 했다는 점이다.

2001년 출간 당시 미국은 직전의 닷컴 버블 붕괴로 약간 흥이 식기는 했으나, 여전히 골디락스 경제니 신경제니 하면서 금융과 부동산 시장의 막대한 자산 팽창 효과에 취해 흥청망청 거리던 때였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연이은 세계 금융위기로 그 꿈이 허상이자, 정작 '부의 효과'(welth effect)를 누린 건 일부 자산층에 불과할 뿐 사회 전체로는 평균 급여의 하락과 빈부격차 심화로 삶이 더 팍팍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반 시민들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발간 당시 저자의 문제의식과 집필 방식은 무척이나 선구적인 것이었고 뜻있는 시민들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Nickel & Dimed>는 곧바로 아마존과 뉴욕타임즈 집계 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아마존 전체 도서 가운데 노동 분야 1위, 빈곤 문제 분야 7위를 차지하면서 미국 시민사회 운동 영역의 대표 필독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엔 화이트칼라 위장 취업이다

 

<Nickel & Dimed> 이후 몇 년 뒤 에런라이크는 다시 한번 취업 도전을 감행한다. 이번에는 워킹푸어가 아니라, 연소득 5만 달러 수준에 의료보험이 제공되는 화이트컬러 직종이 대상이었다. 저자는 미국 경제가 갈수록 이상 징후를 보이면서 화이트컬러들이 위기에 처하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2003년 11월부터 약 10개월에 걸쳐 바버라는 그 나이대의 화이트컬러들이 밟을 법한 제반 구직 절차와 커리어 관리 그리고 기업이 원하는 외모 다듬기를 거치면서 취업 과정을 체험한다. 이 결과로 나온 책이 <Bait and Switch>이다.

 

 

이 책은 ‘중산층의 나라’라는 사회적 믿음이 이미 파탄에 이른 현실과 팍팍한 사회 구조에서 화이트컬러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 매달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지를 날것 그대로 펼쳐놓음으로써,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에게마저도 ‘아메리칸 드림’이 헛된 꿈으로 전락했음을 고발하고 있다.

 

책의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존엄성을 상실하고 기업 사회의 소모품 같은 존재로 떨어진 수많은 화이트컬러 샐러리맨과 실업자들이 공감과 공분을 표시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홈페이지에 저서에 대한 소감과 현실에서 독자들이 경험한 생생한 체험을 나누기 위한 포럼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Bait and Switch> 카테고리에만도 6천 건이 넘는 독자 게시물이 봇물을 이룬다.

 

<Bait and Switch>는 저자에게 두 가지 새로운 활동의 길을 열었다. 그 중 하나가 책의 취지에 동감한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바탕으로 2006년 화이트컬러 노동자를 위한 비영리, 비당파적 조합 조직인 'United Professionals'을 세운 일이다. 어느 나라나 대공장에 기반한 블루컬러 노조가 아닌 다양한 화이트컬러 직종의 노조는 만들기도 운영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이후 노동조합 조직 전통이 결정적으로 약화된 미국에서 에런라이크가 거둔 성과는 21세기 노동운동의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될 만한 것이다.

 

왜 모두들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할까?

 

에런라이크가 관심을 가지고 행동에 옮긴 또 다른 일은 이번에 부키가 출간한 <긍정의 배신>(Bright Sided) 집필 준비였다. 화이트컬러 구직 활동을 준비하는 동안 에런라이크에게 들었던 의문, 즉 “상황이 이렇게 나쁜데, 어째서 저항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것일까?, 사람들은 왜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스스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 탓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해결하고자 나선 것이다.

 

 

저자는 문제를 조사하고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2001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암 투병을 하면서 느낀 의료 산업의 문제점과 유방암 환자를 돕는다는 핑크 리본 운동의 본질,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의 암시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단지 네가 원하는 것을 한껏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는 초대형 교회들의 설교, 이익을 위해 수시로 직원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뒤숭숭해진 분위기를 동기유발 강사들과 라이프 코칭으로 수습하는 기업들 간에 암암리에 이루어진 모종의 묵계와 커넥션을 발견해 나간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만 보고,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긍정주의의 메시지가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뒤로 미루고 저마다 자신의 쳇바퀴에만 열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매트릭스로 작용하고 있음을 파헤친 책이 바로 <긍정의 배신>이다. 저자를 조명하기 위한 글의 목적상 이 책의 자세한 내용이나 의의는 여기에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리얼은 체험 연예 프로그램에나 존재하나

 

 

에런라이크는 1970년대의 반전운동과 여성 건강 증진운동부터 최근의 화이트컬러 운동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활동가,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에 충실하면서 그 경험을 저널리즘의 밑천으로 삼아왔다. 어떻게 한 사람이 사회활동과 저널리스트 일을 동시에 해내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 이슈를 논하면서 실천 활동에 눈감는 삶을 오히려 나는 상상하지 못한다. 내 글은 모두 이런 시민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며 대부분의 글 소재나 영감 또한 내 옆의 시위자나 피케팅을 하고 있는 동료 등 실천 현장에서 얻어진다.”

 

실천활동을 위한 글쓰기, 체험에 근거한 현장적, 탐사적 저널리즘은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용광로 같은 흡인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전태일의 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돌멩이의 외침> 등 노동운동가의 수기들이 필독서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직업 문학계에서도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 이문구의 <장한몽>, <우리동네> 등 체험에 기초하고 현실을 고발하는 리얼리즘이 독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에서 ‘체험적 리얼리즘’을 찾아보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리얼’은 이제 TV에서 연예인들의 1박2일짜리 체험 오락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거나 또는 ‘레알 마드리드’ 등 유럽 축구팀에나 붙는 수식어가 되었다. 정녕 리얼리즘을 도외시해도 좋을 만큼 우리는 판타스틱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인가?

이런 배경 속에 나는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해외 작가, 게다가 요즘 별로 관심도 받지 못한다는 꼼꼼한 체험과 탐사에 기초한 사회의식 짙은 작품을, 그것도 한권이 아니라 대표작을 모두 한꺼번에 도입하는 만용을 덜컥(!) 저질렀다. 에런라이크의 책들이 서점가에서 빛을 못 본다면 기획자로서 두고두고 지청구를 먹어야 할 것이나, 이 날카로우면서도 시종 유쾌함을 견지한 비판서들이 우리 사회에 최소한 ‘리얼’ 저널리즘의 미덕을 환기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레알’ 간절하다.

 

저자의 대표작 <긍정의 배신>과 <Nickel & Dimed>(2011년 하반기 부키에서 한국판 출간 예정)의 한 구절을 옮기며 글을 맺는다.

 

“누군가 생활비에도 모자라는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면, 예를 들어, 그가 굶주림으로써 우리가 더 저렴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는 우리에게 커다란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사람의 능력과 건강, 그리고 인생의 일부를 우리에게 ‘선물’로 내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워킹푸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사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자산가들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자녀가 보살핌을 받도록 자신들의 아이를 소홀히 하며, 다른 이들이 밝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들은 허름한 집에서 지내고, 인플레이션은 낮아지고 주가는 오르도록 자신들은 결핍 상태를 견딘다.”

- <Nickel & Dimed> 중에서

 

“초기 자본주의가 긍정적 사고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반면에 ‘후기’ 자본주의, 곧 소비자 자본주의는 긍정적 사고와 훨씬 죽이 잘 맞았다. 소비자 자본주의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개인의 욕구 및 ‘성장’이라는 기업의 지상과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긍정적 사고는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라면, 그런 낙천성이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성의 이면이다. ...

하지만 긍정적 사고를 가장 환영한 것은 아무래도 미국 기업계일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기업들은 그 산업의 으뜸 고객으로 부상해 마음의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좋은 뉴스를 게걸스럽게 소비하고 있다. 혜택은 줄고 노동시간은 길어진 반면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21세기의 노동자들에게 이는 유용한 메시지로 사용될 수 있다. ...

나는 개인적인 실망이나 신랄한 기분 탓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고통이 통찰력이나 미덕의 근원이 된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나는 더 많은 미소와 웃음, 포옹, 행복 그리고 즐거움을 보고 싶다. 더 좋은 일자리, 의료서비스 등 더 큰 위안과 안전뿐 아니라 더 많은 파티와 축제, 길거리에서 춤을 출 기회가 있는 그런 곳이 내가 그리는 유토피아다.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다면, 삶은 영원한 축하 무대가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재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희망하는 것만으로 그런 축복받은 상태에 이를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자초했거나 자연 세계에 놓여 있는 무시무시한 장애물과 싸우기 위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첫 걸음이 될 것이다. “

- <긍정의 배신> 중에서

 


긍정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출판사
부키 | 2011-04-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긍정주의는 미국의 신사상 운동에서 태동하여 신복음주의 교회 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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