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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전쟁』 편집자 노트
왜 ‘G2’이며 왜 ‘전쟁’이며 왜 우리가 읽어야 하는가!
자식 농사가 그렇게 어렵다고들 한다. 편집자인 내 입장에서는 자식 농사에 버금가게 힘든 것이 ‘제목 농사’다. 제목 하나 잘 지어 놓으면, 출간에서 폐간까지 책의 인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아주 가끔은 출판사의 운명까지 바꿔 놓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제목안을 내고, 나온 안 중에 추리고 추려 하나를 결정할 때까지 편집자 내면에서, 출판사 내부에서 온갖 갈등을 겪는다. 산고 끝에 제목이 결정되더라도, 줄바꿈도 해 보고 쉼표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인쇄 직전까지 계속 다듬을 때도 있다.
대대결에서 대격돌을 거쳐...
번역서의 경우, 한국어판의 제목이 원제와 많이 달라 때로는 저자의 의도를 ‘오도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원제를 번역한 그대로를 제목으로 삼기엔 여러모로 아쉽거나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금융 대격돌’을 다룬 이 『G2 전쟁』이 그랬다. 중국어 원제는 ‘대대결’이다.(제목이 확정되기 전까지 편집을 진행하며 불렀던 가제는 ‘대격돌’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붙는다니 웬만한 수식어로는 그 ‘대결’의 어마어마함을 표현하기 힘들 터였다.
몇 해 전 『화폐 전쟁』이 금융서로서는 이례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뒤로, 금융 및 화폐, 환율과 ‘전쟁’을 짝지은 제목의 책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중국과 미국의 대결과 갈등을 다룬 책도 많아, ‘미중’이나 ‘중미’로 시작하는 제목에, 오성홍기와 성조기를 소재로 표지를 디자인한 책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대격돌’보다 책의 핵심을 더 친절하게 드러내면서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 기존 책들과 차별화하는 제목이 필요했다. ‘G2 전쟁’이란 제목은 그렇게 나왔다.
왜 G2인가
이 책은 현재 전 세계 경제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달러 강세’ 기조가 사실은 미국 금융 전략의 일환이며, 그 전략은 중국 자산 시장의 거품을 붕괴시켜 중국의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내용이다.
미국은 왜 중국을 공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견제)하려 할까? 단순히 양강의 한쪽이 다른 한쪽을 누르고자 하는 의도라기보다는, ‘금융 제국’의 유지에 미국이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형편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산업 공동화로 인해 더 이상 제조업에 기대할 게 없는 상황이다. 2010년 미 GDP 14조 달러 가운데 농업과 공업 등 실물 산업은 3조 달러 남짓인 데 반해, 금융·서비스업은 11조 달러를 훌쩍 넘어 78.5퍼센트를 차지했다. 금융업 자산 규모는 총 700조 달러에 달해, 연평균 수익률을 1퍼센트로만 잡아도 해마다 7조 달러의 수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겨우 3조 달러가 조금 넘는 규모의 실물 산업에 의존해 매년 이러한 수익을 창출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미 금융업은 다른 나라의 산업을 통해 이런 수익을 내야 미 GDP를 떠받칠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은 서유럽·일본과 개발도상국의 삼각 구도를 형성해 이러한 수익 구조를 유지했는데, 중국이 점차 부상하면서 이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제한적인 역할만을 원하고 있다. 중국이 생산한 것을 미국이 소비하는, 흔히 말하는 ‘세계의 공장’ 정도로만 중국이 남아 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중국은 무역과 투자를 통해 미국 달러를 전 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한마디로, 중국은 달러 패권의 충실한 복무자인 것이다.
재밌는 것은 ‘G2’라는 개념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사실 ‘G2’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양강’을 일컫는 말일 뿐이다.(그래서 우리 출판사에서는 G2가 ‘Great Power 2개국’의 줄임말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G2, G20과 같은 표현은 각각 ‘Group of 2’, ‘Group of 20’을 가리킨다.) 그런데 저자는 달리 본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에서 제시한 ‘G2’나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는 ‘미국과 중국의 대등한 관계’를 상정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 유지에 중국을 이용하려는 미국의 바람과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뿐 아니라 ‘G2’라는 용어를 바라보는 중국의 일반적인 시선이 그렇다. 저자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가치 중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판단하에 제목에 넣게 됐다.
왜 전쟁인가
실제 전쟁만큼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만들어 내지는 않아도, 그 피해 양상이 훨씬 더 방대한 범위에 걸쳐 훨씬 더 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경제 전쟁’, ‘금융 전쟁’이 아닐까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IMF 외환 위기 등을 겪으며 경제적 파탄이 가져오는 파괴력을 경험한 바 있다.
저자의 생각대로, 미국이 기준 금리를 인상하고 재정 적자를 감축하는 등의 달러 강세 전략을 펴는 것은 단순히 자국 내 경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다 알다시피, 달러는 기축 통화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국의 경기 부양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지라도, 오늘날같이 세계화로 인해 자국 경제만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소수점 단위의 금리 변동이 세계적인 후폭풍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은 총무역액 기준으로 이미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 무역국이 됐지만 무역 대금의 결제는 매번 달러로 해야 한다. 세계 무역에서 자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은 군소 통화에도 뒤처질 정도로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슈퍼 달러 기조를 ‘금융 전쟁’으로 받아들이는 저자나 중국의 인식을 지나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G2만의 전쟁인가… 현재 원화 가치는?
중국은 어느새 세계 최대 수출국이면서 수입국이 됐다. 강달러와 엔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을 여전히 걱정해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여기에 위안화 약세와 유로화 약세까지 신경 써야 한다. 저자가 유로화의 부상을 다행스레 여기고 위안화 국제화를 부르짖는 것을 보면서, 원화의 현재 위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위안화의 국제 통화로서의 입지가 태국 밧화보다도 낮다”라며 애통해하고 있는데, 원화 역시 밧화나 남아공 랜드화, 터키 리라화보다도 입지가 안 좋다. 국제 무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기까지 하면 원화의 미약한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의 현 상황을 보면서, 무역 규모나 군사력만으로는 세계 패권을 쥘 수 없으며 통화 패권이야말로 패권 유지의 중요한 수단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탄탄한 논리, 간결한 예시
이 책을 또 하나의 화폐 전쟁서나 중국발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깝다. 무엇보다 달러 자본이 유로화나 중국의 도전을 받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고 자산을 증식시켜 왔는지를 탄탄한 논리와 쉽고 간결한 예시로 설명해 준다.
이 책은 기축 통화를 보유한 나라가 패권을 유지하는 원리가 무엇인지, 왜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한 통화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고 패권국의 만행에 저항하기 쉽지 않은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또 화폐 전쟁을 다룬 기존의 책들이 저지르고 있는 실수나 한계를 지적하고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통화 패권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도 있다.
그동안 우리가 세계 통화 패권이나 경쟁 구도를 제3자의 입장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해 온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모로 오랜 잔향을 남기는 책이다.
오랜만에 편집자 노트로 돌아온,
부키 편집실 여전히 대표 차도남 부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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