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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한 베트남 신부의 유서가 되어 버린 편지

1990년대 이후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2년 성사된 총 혼인 중 외국인과의 혼인은 약 9퍼센트, 이 중 약 73퍼센트가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이라고 합니다. 적지 않은 숫자지요. 그런데 이러한 국제결혼의 증가 뒤에는 한국인 남편과 시가족에 의한 가정폭력,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거짓 정보 제공, 성차별적인 국제결혼 광고, 결혼이주여성의 가출,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 등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정폭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여성부가 조사한 가정폭력 실태에 따르면 국제결혼 부부간 폭력 발생률은 69..4퍼센트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단란하게 살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 및 다문화 가정이 있다는 것도. 한국인끼리의 결혼이라고 이런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러나 다른 한 편,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지도 모르는 현실이기에 짧게 소개합니다.

저도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나중에 더 좋은 가정과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당신은 아세요?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화하고 싶어요. 당신을 잘 시중들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는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살면서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해 왔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

당신은 아세요? () 베트남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도 입을 것과 먹을 것만 겨우 충당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에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고, 단지 당신이 저를 이해해 주는 것만을 바랐을 뿐이에요. 저도 일을 해 보았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 하고 또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요.

(...)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할 사람이 당신뿐이었는데누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정말로 하느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정말 더 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어요. 당신은 이 글씨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

 

 

 

 

 

 

2011년 6월 국가인권위 앞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결혼 이주여성 추모제'가 열렸다.

 

열아홉 살 베트남 신부가 생전에 남편에게 쓴 편지다. 이 편지는 결국 유서가 되고 말았다. 스물일곱 살 많은 남편은 일정한 직업이 없었고, 거주지는 월세 18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이었다. 남편은 한국어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그녀의 요청을 외면했고, 바깥출입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그녀는 결국 남편에게 맞아 사망했다.

재판을 담당했던 고등법원 판사는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통탄하며 판결문에 그 소회를 담았다. 판결문은 지금의 국제결혼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결혼 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 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남녀를 그저 한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중개업체를 통해 외국인 신부를 데려오는 국제결혼에 대해 그게 진정한 결혼이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이주해 온 여성들을 보는 시선은 더욱 차갑다. 더 잘사는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결혼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식이다. 이런 선입견은 결혼이주여성이 처한 인권 침해 문제를 쉽게 간과하게 만든다.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 한국인 남녀 사이에도 배우자의 조건을 두고 저울질하는 일이 흔하고,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중개업체를 통한 조건 맞춤식 혼인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두고 누가 위장결혼이라며 손가락질하겠나? 하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가난한 가족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을 결정한 외국인 여성의 선택은 그다지 존중받지 못한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는 외국인 여성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대표적인 곳은 바로 우리 정부이다. 특히 법무부는 국제결혼으로 이주해 오는 외국인 여성 대다수에게 위장결혼의 혐의를 둔다. 그러나 근거는 충분치 않다. 이러한 과장된 혐의에 더해 사람보다 출입국 관리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위장결혼을 가려내야 한다는 이유로 결혼이주민에게 안정적인 법적 지위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국제결혼을 둘러싼 극단적인 폭력 사건과 기막힌 인권 침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당장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외국 여성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국제결혼 중개업자,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과 외국인 여성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 남성, 헌법이 못박은 이주여성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정부, 이러한 문제들에 무관심과 편견으로 대응하는 이웃들. 국제결혼이 보여 주는 우리 사회의 속살이 과연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있을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볼 때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베트남 신부 쇼핑, 인권은 옵션'(소라미) 발췌 재구성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저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출판사
부키 | 2013-12-1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법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법...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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