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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는 ‘민어의 거리’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서울 신사동 게장 골목, 마산 오동동 아귀찜 골목, 대구 동인동 갈비찜 골목과는 달리 전혀 북적이지 않는다는군요. 그저 서너 개의 횟집만 보일 뿐. 그런데도 민어는 ‘목포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민어를 맛보지 않으면 목포 다녀왔단 말을 하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에서 맛을 보기는 전라도 사투리로 ‘징허게 솔치(정말 쉽지)’않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만만치 않은 민어,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에서 손현철 PD가 아주 맛깔나게 안내합니다. 여기서는 민어의 역사는 잠시 접어두고, ‘민어회’의 맛에 대해서만 잠깐 소개할게요. <편집자 주>
목포의 얼굴 ‘민어회’
목포의 민어회는 이른바 ‘선어회(鮮魚膾)’의 대명사다. 물고기가 죽은 지 하루 이틀 살을 숙성시켜 먹는 회를 선어회라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활어회와 대비되는 말이다. 인간 혀의 맛 수용 기관인 미뢰와 음식물의 관계를 분자 차원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생선살을 저온에 숙성하면 감칠맛 수용을 촉진하는 이노신산(inosine acid)이 늘어난다. 바로 죽인 생선의 살이 사후 경직으로 인해 쫀득한 질감은 있지만 혀를 감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적은 이유는 이노신산이 생성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노신산 생성으로 감칠맛과 육질의 쫀득함이 균형을 이루는 시점까지 숙성을 잘 시킨 회가 훌륭한 선어회가 된다.
내가 아는 바로는 고대에 회를 즐긴 가장 유명한 이는 공자(孔子)다. … 『논어』향당 편에는 공자의 까다로운 식성에 관한 언급이 있다. 오랜 시간 스승의 식습관을 관찰한 제자들의 기록이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 특정 식재료에 대한 호불호까지 세세하다.
밥은 곱게 도정한 쌀일수록 물리지 않으시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일수록 물리지 않으셨다.(食不厭精, 膾不厭細) 『논어』향당 편
여기서의 회가 육고기회인지 생선회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가늘게 썰수록 살의 단면이 공기와 접하는 면적이 넓어지고 숙성도가 높아져 감칠맛이 더해진다. 가늘수록 좋아했다는 공자는 과연 미식가였음이 틀림없다.
굽거나 찌거나 탕으로 끓여 …여름 보양 음식, 민어
조선 개항 초 일본인들은 한국어를 익히기 위해 한자어에 일본어 발음 표기를 붙인 교재를 만들었다. 거기에 물고기를 설명한 항목이 나오는데, 당시 어류를 어떻게 요리해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일곱 종류의 물고기가 예문에 등장한다. ‘붕어는 찜해라, 농어를 회쳐라, 잉어를 반찬하여 먹자, 민어로 임(鹽)치를 만들어 두자’라고 먹는 법을 소개한다. ‘임’자 옆에 소금 염‘鹽’자 훈을 붙인 걸 보면 소금에 절인 민어를 임치라 불렀던 모양이다. 1930년대 일본인들이 편찬한『목포부사(木浦府史)』를 보면 민어를 염장해서 건어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민어가 잡히면 일단 염장 보관하여 나중에 굽거나 찜해서 먹었다.
민어는 뜨거운 여름이 오면 탕으로 끓여 보양식으로 섭취했다.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광어’, ‘복달임에 민어탕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는 민간의 표현이 있을 만큼 민어는 여름 제철 음식이었다.
선어회의 맛을 가르쳐 준 민어
언제부터 민어를 회로 먹기 시작했을까?
영란횟집 박영란 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1969년 어머니 김은초 씨(84세)가 처음 영업을 시작할 땐 흑산 홍어나 톱상어의 살을 잘게 썰어 막걸리에 무쳐서 술안주로 내놓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민어회를 한 접시 2천 원에 팔기 시작했는데 그게 인기를 끌어 오늘까지 이어졌다. 회 한 접시를 시키면 내장까지 넣고 푹 끓인 매운탕은 공짜로 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포에서 태어난 재일동포가 고향에 왔다가 이 집 민어회를 맛보고는 껍질은 살짝 데치고(일본어로 ‘유비키ゆびき’) 부레도 회처럼 썰어 내놓으라고 조언을 했단다. 그래서 오늘날 민어 한 상 차림 메뉴가 이뤄졌다. 짐작컨대 목포에 많이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선어회 전통이 1960년대 말 민어회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목포 구도심을 걷다 보면 다른 지역에선 보기 힘든 선어회 메뉴를 알리는 식당들이 여럿 있다. 민어가 한국인에게 선어회의 맛을 가르쳐준 것이다.
아무 양념 없이 그저 민어회 한 점
뭐니 뭐니 해도 민어의 참맛은 맨살 채 썰어 내놓는 회에서 살아난다.
아무리 좋은 양념이나 정성 들여 만든 초고추장일지라도 있는 그대로의 민어 살 맛을 당해내지 못한다. 주방 이모님의 수십 년 된 칼질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처음 초고추장을 찍지 않은 민어 살을 입안에 넣으면 혀가 심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살점을 혀 위에서 몇 번 굴려 전체의 촉감을 맛본 뒤, 양 어금니 쪽으로 밀어 살을 잘근잘근 씹어보자. 갓 잡은 광어나 우럭의 살이 지닌 쫄깃함과는 다른 촘촘한 질감이 느껴진다. 혀에 닿는 활어회의 촉감이 나일론 같은 탄력 있는 합성섬유가 살갗에 닿는 것에 비유하자면, 민어회는 부드럽고 흡수성 뛰어난 면직물이 피부를 감는 느낌을 준다.
어느 정도 씹은 살점을 혀끝으로 애감아 혀 뒷부분으로, 목젖을 향해 옮기면 담백하던 살맛이 달게 변하고 숨을 들이쉴 때 살 냄새가 상큼하게 살아난다. 순수한 단백질의 맛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양념에 진하게 밴 불고기에서 진정한 고기 맛을 느낄 수 없듯이, 초장에 빠트린 민어 살점에서 진정한 회의 맛을 음미할 수 없다. 민어가 사는 심해의 묵직함을 그대로 입안에 재현하고 싶다면 초장을 찍지 말고 그냥 먹어보기를 권한다. 입안이 정 심심하다면 회 한 점 삼키고 나서 상에 오른 잘 익은 묵은지 한 조각으로 염분을 공급하면 된다. 그 뒤에 다시 회 한 점을 물면 한층 더 달착지근하게 달라붙는다.
목포에서 민어를 한번 먹어본 사람에겐 서울이나 수도권 식당의 민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84세 할머니가 민어를 직접 골라서 내놓는 식당이 있는 곳. 목포에서 민어를 맛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 ‘귀족 물고기 민어, 목포의 얼굴’ (손현철) 중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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