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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금융이라는 세계의 큰 그림을 이해하는 기쁨 -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편집자 주 :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담당 편잡자는  ‘부기’님입니다. 보도 자료를 워낙 자세하게 쓴 터라  더 꺼낼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는데요, 역시 채근한 보람이 있습니다. 제목을 뽑는 과정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네요.

우선, 모 건강식품 업체의 광고 문구를 패러디 한 제목이 눈길을 끕니다.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수 없네”라는 패러디 구절에서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가 참 좋은 책이라는 담당 편집자의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그럼에도 ‘금융’이라는 가까이  하기 어렵다는 편견 있는 주제에다 분량도 일반 단행본의 1.5배라 혹여 지레 겁먹고 손사래 치는 독자가 있을까 걱정되나 봅니다. <000 콘서트>, <000 비타민> 유의 말랑말랑한 제목을 쓰지 않았지만 이 책 자체가 “금융이라는 세계의 큰 그림을 이해하는 기쁨”을 충분히 전한다고 강조합니다.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의 제목을 결정하는 과정에 있었던 우여곡절을 풀어놓은 편집자 노트에 이 책에 대한 자랑과 이 책을 만드는 동안의 고민이 동시에 녹아있습니다.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수 없네

 

책 제목이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사용설명서’라...

 

그러니까, 이미 한번 유행을 탄 제목을 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자칫 패러디 느낌 때문에 우스워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시류에 편승한다거나 ‘아류’라는 이미지를 풍기기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이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된 우여곡절이 있다.

 

금융 전반에 대해 다루면서도 수식이나 그래프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 이 책을 두고 기획자는 애초에 ‘금융경제학 콘서트’를 제목으로 제안했다. ‘콘서트’를 붙이는 책 제목도 이미 유행이 지나기는 했지만, 적어도 독자 입장에서는 ‘콘서트’가 뒤에 붙는 책들이 어떤 유의 책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책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알리기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콘서트 꼬리가 붙은 책들은 하나같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부담 없이, 약간의 재미까지 곁들여 읽을 수 있는 책들이었다. 그럼 이 책도 그럴까?

‘금융 분야’임을 감안하고 시중에 나와 있는 금융 책들의 면면을 감안하면 적어도 금융 분야에서만큼은 콘서트를 붙여도 되지 않을까...라는 게 기획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역시 ‘콘서트’나 ‘비타민’ 유의 책이 될 만큼 말랑말랑하고 경쾌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결국 제목 후보에서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목안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었던 것은 ‘쉽게 읽는 금융경제학’이었다. 금융이라는 (복잡한) 분야를 쉽게 읽을 수 있다니, 그 자체로 쉬우면서도 참으로 매력적인 제목이 아닌가! 하지만 이 역시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바로 “어떻게 500쪽이 넘는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나?”라는 것. 맞는 말이었다. 500쪽 남짓한 분량에 2만 원의 가격에 분야도 ‘금융’인 이런 책을 ‘쉽게’ 읽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제목 선정 단계까지 최종 쪽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서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알리지 못한 채 제목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어쩌면 이 책이 500쪽이 넘는 분량임을 미리 밝혔다면 애초에 이 제목이 최다 득표를 하는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금융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란 제목이었다. 톡톡 튀거나 대번에 확 끌리는 제목은 아니었으나 이전까지 우려하던 사항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제목이었다. 표지 시안도 이 제목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결정되었다. 그런데 최종 마무리를 이틀 정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일이 터졌다기보다는 ‘발견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5월 5일을 발행일로 ‘투자에 강해지는 금융지식의 모든 것’이라는 신간이 나온 것이다.(‘투자에 강해지는’은 부제처럼 작게 표시되어 ‘금융지식의 모든 것’이 실질적인 제목이다.) 며칠 상간에 같은 분야에서 너무나도 비슷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는 돌발 상황이 생긴 것이다. 물론 저 책은 재테크 기술에 더 집중한 책이기는 했지만 이대로 출간하기에는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제목을 다시 한 번 바꿔야 했다.(같은 분야의 신간이 비슷한 제목으로 며칠 앞서 출간되는 바람에 제목이 교체되기는 내 편집자 생활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헨드릭 헤리츠 폿의 작품 <플로라의 바보 수레>. 16세기 후반~17세기 초 유럽의 툴립 광풍을 풍자한 그림이다. 튤립은 16세기 후반 터키에서 유럽으로 전해지자마자 식물 애호가들의 인기를 얻어 고가에 거래되었다. 17세기  초 귀족과 대상인 사이에 튤립의 인기가 치솟아 가격이 급상승하자 튤립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1633년경에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튤립 알뿌리의 선물 거래에 뛰어들고 이중 삼중의 거래가 행해졌다. 마침내 1637년 2월 공황이 일어나 튤립 거래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일어나 귀족, 상인 할 것 없이 파산자가 속출했다. 그림에서는 꽃의 여신 플로라와 환전상, 술꾼 등이 함께 탄 수레가 바람의 힘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바다를 향하고 있어 이 수레의 운명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는 이처럼 다양한 도판과 그림을 사용해 독자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최종 제목인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가 채택되었다. 으흠... 붙여 놓고 나니 그럴싸했다. 금융의 과거와 현재, 미래, 금융의 각 분야와 기본 개념 및 원리 소개 등 전반적인 사항들을 거의 다 담고 있으니 (나 같은) 금융 ‘문외한’은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사용설명서’ 역할을 충분히 해낼 만한 책 아닌가!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의 제6권인데 이미 4권이 ‘자본주의 사용설명서’였기에 나름대로 시리즈의 성격과 잘 어우러지는 제목이라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있다.

 

어쩌면 출판사마다 다들 비슷한 풍경일 책 제목 결정 과정을 이처럼 밋밋하게라도 늘어놓는 이유는 이 책이 어떤 성격의 책이며 어떤 사람이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해할 독자들에게 다소나마 판단 기준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개설서 성격의 책이라 언론의 서평망에도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커 독자들이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조차 접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든다. (지난해 많이 회자되었던 광고 카피를 인용하자면) “이 책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수 없네”가 딱 내 마음이다. 감각적인 재미는 없지만 지식 습득의 즐거움, 심지어 금융이라는 세계의 큰 그림을 이해하게 되는 데서 오는 기쁨만큼은 수많은 ‘콘서트’와 ‘비타민’ 유의 책들 못지않다.

 

5.9. 편집부 부기 씀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저자
이찬근 지음
출판사
부키 | 2011-05-09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다양한 영역과 분파 학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체 상을 그리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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