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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의 만화가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흥미진진 만화가의 세계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
나예리 외 17인 지음
<출판사 서평>
한때 ‘궁 폐인’을 양상하며 인기를 모았던 문화방송의 드라마 <궁>은 만화가 박소희의 『궁』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궁> 시즌 2 제작에 들어간다고 한다. 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아파트>는 만화가 강풀이 미디어 다음에서 연재했던 『아파트』가 원작이다. 또 강풀의 『순정만화』와 허영만의 『타짜』 또한 영화화된다고 하니 이제 우리나라에도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제작이 본격화될 모양이다.
이런 경향은 일본이나 서구의 경우 보편화된 것이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이온 플럭스> 등이 그러하고, 일본의 경우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그 수를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세다. 그만큼 만화가 갖는 힘이 크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분사된다. 산업적 측면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가 가능한 콘텐츠로 각광 받는 한편, 도서대여점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유통망을 타고 만화는 돈 주고 사서 보는 것이 아니라 빌려 보는 것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어릴 적 만홧가게에서 만화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막상 자신의 자녀가 만화를 보는 건 못마땅하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라는 억울한(?) 딱지 또한 여전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의 만화가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만화가의 일상을 엿보기란 쉽지 않다. 단행본 만화 맨 뒷장의 제작 후기를 통해 만화가에게 마감이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구나 하고 짐작만 할 뿐, ‘만화’라는 표현 양식이 아닌 ‘글’이라는 표현 양식을 통해 일과 생활, 보람과 애환을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키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 9’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는 만화를 통해 이야기하는 만화가들이 글로써 자신의 생활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거의 유일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만화가가 말하는 만화가』는 한국 사회의 만화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고충은 무엇인지, 보람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오늘의 만화가 생활 보고서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모습의 만화가들이 등장한다.
선배들에게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냐는 호통을 듣고 원고에 머리를 맞는 문하생(송상훈)이 있고, 만화용 스크린톤 대신 싱크대에 붙이는 스크린톤을 붙여 만든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다시 한 번 원고를 해 보세요.”란 말만 듣고 왜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몰라 주는 것인지 낙담했던 만화가 지망생 시절을 회상하는 만화가(박수인)가 있다. 또 조폭을 소재로 한 작품을 너무 리얼하게 그려, 자신의 수법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흉기로 위협하는 조폭을 만난 만화가(김성모)도 있고,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 한가한 모습이지만 사실은 스토리를 쓰기 위해 도서관을 전전하는 스토리 작가(전진석), 만화가인 동시에 생활인으로 또 가장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 년에 이틀 쉰다(?)는 만화가(박성우), 그림 한 컷으로 그날그날의 역사를 담기 위해 궁싯거리는 시사만화가(장봉군)도 있다. 만화를 그리고 쓰는 작가 외에도, 마감 직전 잠적한 만화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작품 속에서 만화가를 독촉하는 악당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만화기자(오태엽)와 만화와 독자를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잘 해내고자 애쓰는 만화평론가(김성훈) 등이 있다.
원고에 치이고 마감에 허덕이고
이렇게 다양한 필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건 역시 마감의 고통이다. ‘마감’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급박하기 마련이지만 만화가의 마감은 특히나 잡지 연재를 하는 경우 그 절박함은 곱절이 되므로 마감 막바지의 만화가는 인기와 책 판매량 여부를 떠나 하나같이 ‘배고픈’ 직업인이 된다는 것이 필자들의 푸념 아닌 푸념이다.
하나 끝나면 또 하나가 날 덮치니 이 어이 화마가 아니런가.
밤새워 끝을 내도 다음 게 코앞이니 이 또한 업보가 아니런가.
어즈버 가는 세월 이마에 골을 패고
저 멀리 새벽이 다음 날을 알리니
무상하다, 여진의 일생. 청춘은 날 다 샜네.
(양여진, 「마감에 치이고 원고에 치여도 만화라서 좋다!」중에서)
후딱 밥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 남짓. 그 시간 자체가 아쉬울 만큼 급할 때도 간혹 있지만, 마감 때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건 꼭 시간 때문은 아니다. 마감 기간 동안 평균 수면 시간은 두어 시간. 간간이 철야까지 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배부르게 밥 먹고 나면 뒤따라오는 식곤증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수면이라기보다 거의 기절 상태에 가까운 ‘폭면’이 쏟아지면 커피 열 잔도, 각성 음료 백 병도 효과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정신력이라는 주장 따위, 사막을 굴러다니는 먼지 더미보다 더 부질없다. 촌각을 다투는 시기, 잠드는 그 순간이 만화가에겐 또 하나의 사선(deadline)이기도 하다.
(나예리,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그렇게 만화를 사랑하다!」 중에서)
조회 수에 울고 웃는 인터넷 만화가들
최근에는 만화잡지 혹은 만화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데뷔하는 작가들도 부쩍 늘었다. 전통적인 만화 표현 기법이 아닌 새로운 표현 기법을 선보이며, 펜과 종이가 아닌 컴퓨터와 타블렛으로 작업하는 작가도 많다. 매체의 성격이 달라짐에 따라 만화가의 마감 이후 풍경도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 만화가의 경우 인기 작가와 비인기 작가의 차이가 한눈에 보인다. 실시간으로 리플이 달리고, 조회 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를 올리고 나서도 작업을 하나 끝냈다는 시원함을 즐길 수 없다.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네티즌의 반응이 어떤지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며 확인한다. …… 조회 수란 방송으로 따지면 시청률과 같은 것이다.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의 수모를 겪듯이 인터넷 만화 역시 그렇다. …… 독자인 척 위장하고 “너무 웃겨요! 진짜 재밌다!”라는 리플을 단 적도 있다.
- 박수인, 「그저 ‘막가파’의 열정으로」 중에서
교열이니 인쇄 등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작가가 그리는 동시에 원스톱으로 수많은 독자가 보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네티즌들의 악평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악평을 읽은 날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일전에 잘 아는 온라인 만화가 한 명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신경성 위염과 위궤양을 앓아 오던 친구였다. 그는 평소 네티즌들의 악플에 민감했다. 익명을 무기 삼아 ‘그것도 그림이냐.’ ‘내가 발로 그려도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식의 무차별 비난을 가하는 네티즌들의 글은 때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흉기로 변한다. 그러나 나는 차츰 내 자신을 단련시켰다. 악플은 곧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증거고 악플이 사라지면 관심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한 해석이다.
- 고필헌, 「예술 한다는 생각 1그램도 없이」 중에서
걸작은 손이 아닌 ‘궁둥이’로 그린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흔히 하는 오해라면, 만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니 머릿속에서 절로 스토리가 나온다거나, 그림만 잘 그리면 된다거나, 데뷔하기가 어렵지 데뷔하고 나면 탄탄한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거나……. 이미 수많은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아 온 이 책의 만화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만화는 손이 아닌 ‘궁둥이’로 그린다는 이두호 선생의 말처럼 만화는 머릿속의 상상만으로는 그릴 수 없으며, 만화는 손으로만 그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만화를 그리는 데에는 사람의 감정이나 경험, 또 그것이 빚어내는 생각과 행동, 말투 등 디테일한 요소들이 꼭 필요하므로, 한마디로 게으르면 ‘만화장이’를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또 한때(1990년대 초중반) 만화 산업이 호황일 때에는 몇십만 부가 팔리는 만화 베스트셀러가 나오기도 했지만, 요즘은 몇몇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초판 인세가 수입의 전부인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만화가는 경제적으로 그리 좋은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만화가 지망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경제적인 안정 사이에서 좌절하거나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이 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필자들은 만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이런 와중에도 만화가가 되기 위해 간직해야 할 불변의 덕목, 변치 말아야 할 가치라는 것이 있을까.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을 꼽는 건 어렵지만,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최첨단 디지털 시대라도 만화를 그린다는 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그 어디에선가 뿜어져 나오는 아날로그적 신호가 필요한 ‘창조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나예리)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 주고 싶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출판사에 원고 들고 가 보라고. 거절당하고 깨지다 보면 좋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 지금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길이 열려고 빛이 보일 거라고. (강경효)
“작가가 될 생각이라면 지금 힘들어도 네 만화를 그려야지, 아르바이트나 하고 그러면 안 된다. 만화를 그리면 10년, 20년 후에 독자 옆에 작가로 있겠지만, 아르바이트만 한 사람은 그때도 역시 늙은 나이에 아르바이트거리 찾아다녀야 한다. 책을 내서 무슨 돈을 벌겠냐.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나 이런 그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야 하고 독자들에게 계속 얼굴을 내밀어야 돼.”
이 책의 필자 중 한 사람인 박수인 씨는 이희재 선생의 조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견뎌 왔다고 고백한다. 이는 다른 만화가 필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필자들은 만화에 미쳐 살아왔다. 자신의 만화를 사랑해 주는 독자의 한마디에 그간의 피로를 잊고, 만화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며, 그 자신 또한 만화 마니아인 그들. 그렇게 만화에 미쳐 ‘손이 아닌 궁둥이’로 만화를 그려 왔기 때문에 오늘, 만화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만화가가 되고 싶다면 “만화에 미치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지은이 소개>
이 책에는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만화가들과 만화기자, 만화평론가 등이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다음과 같다.
송상훈 김성모 작가의 문하생
나예리『네 멋대로 해라』『특명! 1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의 작가
강경효<살아남기> 시리즈, <보물찾기> 시리즈의 작가
박성우『나우』『천랑열전』의 작가
김성모『용주골』『대털』의 작가
장차현실『색녀열전』『마님 난봉가』의 작가
고필헌『쾌변만화 알타리 써비스』『애욕전선 이상없다』의 작가
박수인『달나무의 고양이방』의 작가
모해규 모난돌 스튜디오 대표 겸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로 『착한 그림책』의 작가
장봉군 한겨레신문 화백(시사만화가)
전진석 청강문화산업대학 외래 교수 겸 『천일야화』의 스토리 작가
오태엽 대원씨아이 ‘원 소스 멀티 유즈’ 사업부 부장
김성훈 만화평론가 겸 ComicBang.com의 운영 담당자
양여진『세인트 마리』『주희주리』작가
김문환 (주)반디출판사 대표 겸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지도 교수
박석환 만화평론가 겸 (주)시공사 콘텐츠 연구실장
서홍석『초인진』『용잡이』 작가
이상 원고 게재 순.
<본문 맛보기>
그렇다고 견습생인 초보 문하생이 하는 일이 대단한 것이냐. 그렇지도 않다.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 선배들이 주는 만화 원고의 연필 선을 지우개로 박박 지우는 게 대개이다. 가끔은 펜 터치가 끝난 원고 중에 검은색이 들어갈 부분에 먹칠을 하는 때도 있다. 틈틈이 선배들 담배 심부름에 커피 심부름 같은 잡일도 맡아 한다. 그러다 보면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도 하루 작업량을 마치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나 단조로운 작업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지우개질 하나에도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지웠다가 펜 선이 벗겨지거나 종이가 찢어지면 선배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조심조심 세심하게, 아기 다루듯 원고를 다뤄야 한다. 간혹 완성된 원고에 문하생들이 커피를 쏟기도 했다. 고된 밤샘 작업에 담배와 커피를 주식 삼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주의력이 떨어져 생기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실수를 몇 번 하면 견습생 자격을 박탈당한다. 펜 선 하나에 그림의 생명력이 달려 있으니, 만화가에게도 문하생에게도 조심성은 필수다.
- 송상훈, 「천천히 차근차근 그러나 확실하게」 중에서
후딱 밥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 남짓. 그 시간 자체가 아쉬울 만큼 급할 때도 간혹 있지만, 마감 때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건 꼭 시간 때문은 아니다. 마감 기간 동안 평균 수면 시간은 두어 시간. 간간이 철야까지 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배부르게 밥 먹고 나면 뒤따라오는 식곤증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수면이라기보다 거의 기절 상태에 가까운 ‘폭면’이 쏟아지면 커피 열 잔도, 각성 음료 백 병도 효과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정신력이라는 주장 따위, 사막을 굴러다니는 먼지 더미보다 더 부질없다. 촌각을 다투는 시기, 잠드는 그 순간이 만화가에겐 또 하나의 사선(deadline)이기도 하다.
‘마감’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급박한 성질의 것이겠지만, 만화가의 마감은 특히나 잡지 연재를 하는 경우 그 절박함은 곱절이 된다. 발간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원고 펑크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정이 있었던 간에 엄청난 민폐이고, 질책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마감 막판 만화가는 인기와 판매량 여부를 떠나 하나같이 배고픈 직업인이 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나예리,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그렇게 만화를 사랑하다!」 중에서
만화가를 만드는 것은 실력 이전에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실에는 문하생이 서너 명 있다. 보통 들어올 때는 열댓 명이지만 그 중 세 명 정도만 남고 나머지는 힘들다며 떠난다. 떠난 이들은 실력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만화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서다.
데뷔 당시, 서울문화사 신인 만화가 명단에 오른 사람은 나를 포함해 스무 명 남짓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 중 최종 심사까지 남은 사람은 여섯 명이고, 그 여섯 명이 똑같이 주간지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 피 말리는 만화 작업에 하나 둘 연재를 포기한 것이다. 그 단 한 명이 바로 나다. …… 따지고 보면 내가 만화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실력이 출중하게 좋아서라기보다는 그저 그들보다 내가 더 미련스럽게 만화를 고집했던 덕분이다. 만화를 그리는 테크닉이야 웬만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면 몇 달 배워서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의지는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 박성우,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 중에서
『대털』이 뜨자 한때 그쪽 분야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편지를 받는 것이 일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 작업 방법, 교도소에 들어가기까지의 사연을 적은 편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제공하는 대가로 내게 징역 수발(교도소에 있는 사람에게 사식이나 용돈을 넣어 주는 일)을 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힘들게 쫓아다니며 취재를 하는 것에 비하면 편하고 좋았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밤중에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누군가 덜컥 문을 열고 들어와 예리한 물건을 들이대며 협박했다. “네가 내 수법을 만화로 다 까발려서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그러니까 포장마차라도 하게 도와줘야 할 게 아니냐!”
이런 일을 예상치 않은 건 아니지만 막상 실제로 일을 당하니 오금이 저려 왔다.
- 김성모 「밀착 취재로 ‘리얼’하게 그리다」 중에서
교열이니 인쇄 등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작가가 그리는 동시에 원스톱으로 수많은 독자가 보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네티즌들의 악평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악평을 읽은 날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일전에 잘 아는 온라인 만화가 한 명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신경성 위염과 위궤양을 앓아 오던 친구였다. 그는 평소 네티즌들의 악플에 민감했다. 익명을 무기 삼아 ‘그것도 그림이냐.’ ‘내가 발로 그려도 그것보다 낫겠다.’는 식의 무차별 비난을 가하는 네티즌들의 글은 때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흉기로 변한다. 그러나 나는 차츰 내 자신을 단련시켰다. 악플은 곧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증거고 악플이 사라지면 관심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한 해석이다.
- 고필헌, 「예술 한다는 생각 1그램도 없이」 중에서
어느 신문사에 있건 화백과 국장은 대립을 피할 수 없다. 한겨레신문사라고 해도 내 만평이 던지는 메시지를 온건히 다 받아들여 주지는 않는다. 한겨레신문사로 돌아왔을 때 나는 속 시원히 내 할 말 다 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겠다고 안도했다.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마침 만화가 이현세 씨의 작품이 표현의 자유 시비에 휘말려 있었다. 그날 나는 만평에 하얀 도화지만 그려 넣고 이런 글을 달았다. “표현의 자유는 수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편집국장이 내 그림을 보더니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라고 운을 띄웠고, 결국 그날 나의 도화지 그림은 신문에서 빠졌다. 표현의 자유는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도 여전히 편집국장과 만평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때로 수정을 요구 받을 때가 있다. 이럴 땐 나의 논리를 세워 국장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설득당하지 않으려면 나의 논지가 합당하고 근거 역시 충분해야 한다. 물론 내가 상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림을 고칠 때도 있다. 가끔은 해당 기업이나 관공서 출입 기자들의 의견도 수용해야 한다.
- 장봉군, 「그림 한 컷에 하루의 역사를 담아라!」 중에서
떠오르지 않는 스토리를 짜낸답시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낑낑거리고 있으면 오히려 더욱 꽉 막혀 작가의 두뇌는 슬럼프를 향해 질주한다. 그렇다면 좋은 스토리를 막힘없이 뽑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히 이두호 선생의 말씀을 흉내 내어 스토리 작가의 마음가짐을 말하자면 이렇다.
“스토리는 발로 쓴다!”
……머리와 가슴이 고인 물처럼 잔잔한 상태로 사색하고 고민한다고 스토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보와 자료, 이야기를 끊임없이 집어넣고, 흘려보내고, 흔들고 뒤섞어서 화학작용을 일으켜야 스토리가 나온다. 이렇게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데는 그저 발로 뛰는 것이 최고다!
- 전진석, 「만화는 ‘궁둥이’로 그리고 스토리는 ‘발’로 쓴다!」 중에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만화 곳곳에 숨어 있는 만화기자를 만나기도 한다. 책머리에 ‘○○ 기자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붙이는 만화가도 종종 있고, 담당 기자와의 마감 실랑이를 비꼬아 원고 한쪽 귀퉁이에 몽둥이를 들고 감시하는 만화기자의 모습을 그려 넣는 만화가도 있다. 나 역시 몇몇 만화에서 철퇴를 들고 작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고, 어떤 만화에선 황건적의 손에 한 방에 날아가기도 했다. 그때 그 황건적의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태엽인 골로 갔다!”
그래서인지 만화가와 만화기자가 갈등 관계에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만화가와 만화기자는 좋은 만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돈독한 파트너이다.
- 오태엽, 「만화가의 그림자로 만화책 뒤에 숨다」 중에서
어시(어시스턴트)들은 내가 하다 만 원고들을 빼앗아 검토한 후 지적을 시작한다.
“선생님, 귀 안 그렸어요.”
“선생니임~ 여기 얼굴 이상한 거 모르셨죠? ‘삐꾸’(얼굴이 비뚤어졌다는 뜻)잖아요.”
“아, 왜 돌덩어린 다 그리고 그래요? 아이 참~ 곧 마감인데.”
“지우개질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우리 시키세요! 우리가 뭐 여기 놀러 온 줄 아세요? 짜증 나!”
“머리카락도 아닌데 이런 단순한 먹칠은 도대체 왜 하시는 거예요? 우릴 무시하시는 거죠?”
불쌍한 나는 정신없이 펜을 놀린다.
- 양여진, 「도대체 그 화실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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