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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마케터 노트
이제는 피할 도리가 없다…(어쩌면) 내 얘기니까
부모님께는 비밀이지만 나는 몇 번의 (자발적) 실업자 시절을 거쳤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실업이 꼭 자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때로 나를 못 견디게 하는 회사도 분명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이유 따위, 선배들에겐 그저 “네가 싫증을 잘 내서 그래”라고 치부되기 일쑤였고, 가끔은 “그런 식으로 커리어 관리를 하면 안 돼”라는,근사한 말(어디가 근사한지는 모르겠다만)을 듣기도 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완결작 격인 『희망의 배신』을 읽으면서, 어쩌면 선배들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화이트칼라가 고립된 채 취약한 상황에 놓인 것은 전면적, 무제한적으로 자신을 고용주와 동일시해야 한다는 조건 탓이다. … 화이트칼라는 현재 ‘임원실’을 차지한 이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서약해야 한다.” - 『희망의 배신』 본문 중에서
그렇다. 나는 어쨌거나 구분상 ‘화이트칼라’ 노동자니까. 그 허울 좋은 ‘화이트칼라’가 붙는 순간 ‘노동자’보다 훨씬 더 큰 강조점이 찍히는 거니까.
내가 이런 종류의 일을 때려치우고 전혀 다른 일을 하지 않을 거라면(이를 테면 작은 분식집을 차리거나 작은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거나 - 물론 그 일은 그 일대로 또 다른 고충이 분명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일명 ‘배신’ 3부작이자 연작 시리즈가 『희망의 배신』으로 완결되었다.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 그리고 『희망의 배신』.
그야말로 ‘책 읽기의 즐거움’으로만 치자면 『노동의 배신』이 최고다.
그 힘든 육체노동 속에서 그 날카로운 현실 인식 속에서도 그건 그거고,
함께 일하는 동료 노동자와 피어나는 우정은, 인간애 가득한 소설 그 어떤 것보다 낫고
에런라이크 특유의 유머와 위트는 볶음밥에 뿌린 김가루처럼 맛깔나다.
맞아, 맞아 하기에는 『긍정의 배신』이 최고다.
평소 까칠하다, 비관적이다, 비판적이다, (심지어)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그것도 주로 가족에게 집중적으로) 들어온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긍정적이지 않아도 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책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평소 긍정적인 사람들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현실감’ 면에서 보면 『희망의 배신』보다 한참 아래다.
『긍정의 배신』이
나는 안 그래(물론 간접 경험이나 강요되는 상황은 많다만)라는 안도감을 주고,
『노동의 배신』이 내일 내가 저임금 일용직 노동자로 떨어질지언정, 오늘은 아니니까(이런 이유 참 바보같다는 거 안다)
그저 괜찮은 ‘책’으로만 존재했다면,
『희망의 배신』에 이르면 이건 바로 실직자 ‘내 얘기’다.
만약 사정이 생겨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나는 아마도 ‘구직’이 곧 직업인 상태가 되고,
아마 이런 상황에 처할 것이다.
“구직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쾅쾅 두들기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눈앞의 문은 요지부동 열리지 않는다.” - 『희망의 배신』 본문 중에서
그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몇 해 전 그 때보다 나이는 더 먹었고, 경력도 더 늘었으니까.
리처드 세넷이 기업 고용을 분석하면서 “경력이 쌓일수록 그 사람의 가치는 저하된다.” 라고 말한 그대로다. - 『희망의 배신』 분문 중에서
이제는 차마 『희망의 배신』을 그저 ‘좋은 책’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다.
『희망의 배신』에는 외면하고 싶은, ‘치아라~ 안 볼란다~’ 싶은 얘기가 많다. 굳이 꼽는다면 이런 거다.
상사가 골프를 좋아하면 우리도 전부 골프에 관심을 가져야 하죠. 상사가 시가를 피우면 우리도 시가를 피우고, 브랜디를 마시면 우리도 브랜디를 마셔야 합니다.
올바른 옷차림과 적절한 액세서리는 다른 방식에도 순응하겠다는(명령에 따르고 기존의 ‘문화’에 녹아들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뜻이다.
이번 직장이 마지막이 되기를 늘 바라죠.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살아 펄떡이는 묘사가 특기인 바버라 여사가, 근 일 년에 걸쳐 ‘죽도록 취업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그야말로 날 것의 경험들인데.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묻고
난 아닐거야, 난 아닐거야, 어쨌거나 지금은 괜찮잖아, 나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거야
외면만 할 것인지
“현재 일자리가 있든 없든 우리 모두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자신을 위해 힘들어도 애써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인지,
선택은 고스란히 나의(라고 쓰고 우리의 라고 읽는다) 몫이다.
- 부키 마케팅부 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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