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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라이너트의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는 제목이 책 내용을 그대로 말해줍니다. 에릭 라이너트는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자료, 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를 생생하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라이너트는  역사적 사실과 자료를 근거로, 지금은 주류 경제학에 의해 거의 역사 속에 묻혀 버린 진실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어떤 참상이 빚어지도 생생하게 드러내는데 그 중 몽골의 경우를 전해드립니다. 우리에겐 초원의 나라 몽골이 1990년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경제가 발전하고 있었는데, 주류 경제학의 권고대로 경제 개혁을 한 후 그야말로 산업시대에서 목축시대로 돌아가버린 불편한 진실, 어쩌면 우리에게도 반면교사의 거울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몽골은 어떻게 몰락했는가? : 세계 경제 통합의 잔인한 현실


 





1991년에 개혁이 일어나기 전 50년 동안 몽골은 다양한 산업을 느리지만 성공적으로 구축해 오고 있었다. 국가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40년에 60퍼센트에서 1980년대 중반에는 16퍼센트로 낮아졌다. 하지만 사실상 모겐소 플랜과 다를 바 없는 경제 개혁은 몽골을 매우 성공적으로 탈산업화해 버렸다. 반세기에 걸쳐 건설된 몽골의 산업은 1991년에서 1995년까지 고작 4년 만에 사실상 전멸했다. 1991년에 이 나라가 세계에 개방된 뒤 하룻밤 사이에 거의 모든 산업에서 생산 물량의 90퍼센트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 탈산업화와 국가 해체가 합쳐지자 몽골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조들의 생활 방식인 유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먼지가 가라앉자마자 몽골은 재빨리 과거의 제2세계 국가 가운데 세계은행의 ‘모범생’으로 등장했다. 몽골은 하룻밤 사이에 경제를 개방했고,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주도권을 맡기라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 워싱턴 기관들의 조언을 충실하게 따랐다. 몽골에 비교 우위가 있는 부문을 특화함으로써 세계 경제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몽골의 경제는 산업 시대에서 목축 시대로 되돌아갔다.

울란바토르 의사당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은행의 몽골 담당 직원들은 앞으로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세 가지 제시했다. 몽골은 매년 각각 3퍼센트, 5퍼센트, 7퍼센트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매년 7퍼센트의 누적 성장률을 나타내는 곡선은 당연히 천정부지로 치솟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년 그 정도로 성장할 경우를 가정한 것일 뿐 경제의 급격한 쇠퇴를 어떻게 멈출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는 노력이 없고, 또 이자율이 35퍼센트인 상황에서 신산업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국제개발처(USAID)의 지역 담당은 몽골에 기업 문화가 없다는 불평만 늘어놓았다. 나는 그가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기업가가 실질 이자율이 35퍼센트나 되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 이자율은 몽골 버전의 아시아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계속 유지되었는데, 결과는 은행 및 금융 부문을 구하기 위해 실물 경제를 희생시킨 꼴이 되었다.

울란바토르에서의 회의는 차츰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갔다. 높은 보수를 받는 세계은행의 컨설턴트들은 몽골의 현실과 거의 무관한 자료와 모델을 가지고 왔다. 그런 자료는 표준화된 연구들로서 모든 개발도상국에게 개별적인 상황과는 무관하게 제시되었다. 세계은행과 밀접한 서구의 동료들은 나중에 그런 제안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모든 나라는 표준 제안서를 받는데 그런 제안서의 각 사례 분석에서 다른 점은 사실상 해당 나라의 이름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론 자체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이런 식의 접근이 퍽 논리적이기는 하다. 문제는 제안자가 가끔 워드프로세스에서 ‘검색과 교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때뿐이다. 이를테면 ‘에콰도르’ 등의 국명을 ‘몽골’로 제대로 바꿔 놓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당황한 정부 관료는 장기 개발 계획 보고서에서 군데군데 나오는 잘못된 국명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몽골의 국회의원들이 알았더라면 그들 역시 머쓱해졌을 테지만 다행히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결정은 어쨌든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 결정에 따르면 그들 나라는 국경을 세계 경제에 개방하기만 하면 매년 3퍼센트, 5퍼센트, 7퍼센트의 성장 곡선을 자동적으로 따라가게 된다. 이 이데올로기가 내세우는 논리에 따르면 빌 게이츠가 몽골 유목 부족 출신이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부자가 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몽골의 실질 임금을 절반으로 떨어뜨린 경제 정책에 나름대로 책임을 져야 할 제프리 색스(Jeffrey D. Sachs)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에서 그 나라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생산을 특화해야 한다고 제안함으로써 더 극단적인 초현실주의 쪽으로 가 버린 것은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은 때였다. 색스는 몽골 국민이 컴퓨터를 구입할 만한 돈도 없고 컴퓨터 사용법도 배우지 못했다는 명백한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수도 이외의 지역에서 전기를 쓸 수 있는 국민이 4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사소한 사실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이 탁월한 전략을 제안할 수 있었다.

전화도 없고 전기도 없는 야크 유목민들이 갑자기 실리콘 밸리와 경쟁하고 부품 공급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경제학 교과서 안의 이 이상한 세상에서만 통용된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본문 중에서 발췌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저자
에릭 라이너트 지음
출판사
부키 | 2012-01-1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장하준 교수가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있다면 그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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