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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는 영화 <화씨 9/11> <식코>은 물론 <멍청한 백인들>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같은 책에서 넘치는 위트와 유머로 미국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를 읽는 내내 마이클 무어와 빌 브라이슨이 떠올랐는데 이 책의 책임 편집자 오렌지마멀레이드 역시 그랬나 봅니다. 맥주처럼 톡 쏘고 소시지처럼 쫀득한 유쾌한 ‘복지’ 에세이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를 만드는 동안 김빠진 맥주, 흐늘흐늘한 소시지
처럼 ‘진이 다 빠진’ 오렌지마멀레이드의 편집자 노트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편집자 노트]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너희가 그러면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어쩌라고?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면 한국에서 태어난 건 저주받은 거?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를 작업하는 동안 내 메신저 대화명이 이랬다.
아니, 세계 최강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니. 너희가 그러면 미국 따라하느라 허리가 휘는 우리는 뭐냐?
그런데 아니란다. 우리 저자 게이건 선생(연세가 좀 있으시다)에 따르면 미국인도 죽도록 일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란다. 안 그러면 바로 잘리니까!
남 얘기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출간 일정을 맞추기 위해 나도 야근에 주말 근무를 적지 않게 했으니. 뭐, 정리 해고될 걱정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마음 푹 놓고 있어도 될까?)
원고를 볼 때마다 한숨과 함께 “아, 나도 독일로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툭하면 나흘 연휴에 1년에 6주의 휴가. 그중 3주는 연속으로 쓴다니.
오오, 이거야 이거!(노홍철 톤으로!) 내가 바라던 삶이 바로 책 속에 있었다! 이 정도면 ‘노동자의 천국’이 아닐까.
직장평의회, 노동자 이사, 노동조합… ‘노동자 천국’ 독일
그게 끝이 아니다. 놀랍게도!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한다는 게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아마도 이 때문에 미국 사람, 특히 신자유주의자들이 독일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이리라.)
일단 직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에는 직장평의회가 있다. 평의회는 출퇴근 시간이나 휴가 일수, 정리 해고처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회사와 협의한다. 경영자가 노동자의 생사를 쥐고 맘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양이 앞의 쥐’처럼 노동자가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평의회에서 일하는 위원은 노동자들이 직접 투표로 선출하며, 그들의 임금을 포함해서 평의회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기업에서 댄다.
규모가 더 큰 2000명 이상의 기업은 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로 채운다. 생각해 보라. 보통은 주주나 경영자 쪽 사람이 앉아 있는 이사회에 노동자가 절반이라니. 경영에 관련된 사항까지 노동자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언감생심 경영진이 딴마음 먹을 수 있겠는가! 이런 제도들은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그리고 당연히! 노동조합이 있다. 독일에서는 동일 지역(1.6제곱킬로미터) 내에서 동일 업종, 동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동일한 임금을 받도록 돼 있는데, 노동조합이 그 지역의 경영자 단체와 협상해서 결정한 임금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를테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일하는 직원의 임금이 한달에 300만원이라면 영풍문고와 반디앤루니스 종로점 직원도 300만원을 받는다는 식이다. 개별 기업 내의 근로조건은 직장평의회가 맡고, 임금 협상 같은 거시적인 일은 노동조합이 맡는 식으로 분담하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보다 친절하고 빌 브라이슨보다 날카롭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장점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독일의 복지제도를 쉽고 맛깔스럽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저자의 글솜씨 덕분일 것이다.
처음 원고를 읽고는 미국의 대표적인 저자 두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이클 무어와 빌 브라이슨.
마이클 무어는 영화 <화씨 9/11> <식코>은 물론 <멍청한 백인들>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같은 책에서 넘치는 위트와 유머로 미국을 비판했다.
우리 저자 게이건 선생 역시 무어 못잖은 유머 감각과 비판의식을 선보인다. 게다가 누구보다 노동자의 현실을 잘 아는 만큼 그의 설명은 생생하고 친절하다. 시카고 ‘우범지대’에 사는 독일 사람이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좋다고 말하자 누군가 노크 대신 총을 쏴 대지 않을까 걱정하는 장면이라든지, ‘바버라’가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해 좌절한 나머지 최신 자동차를 빌리는 장면, 록 음악 평론가 같은 사람이 미국 여자보다 유럽 여자와 데이트하기 더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 뒤에 깔린 현실을 떠올리고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한편 독일 여행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빌 브라이슨이 떠오른다. 외모는 딴판이지만(브라이슨은 뚱뚱이, 게이건은 홀쭉이), 아마도 미국밖에 모르다가 외국에 나와서 불안에 떠는 소심한 미국 아저씨의 좌충우돌을 잘 그려내기 때문일 거다. 함부르크의 대중식당에서 뉴욕이 더 좋네, 함부르크가 더 좋네 하면서 독일 여성과 설전을 벌인다든지, 휴일에 연구실에 나왔다가 조깅하고 온 뒤 연구실 문이 잠겨 헤매고, 세탁소 여주인 눈치를 보느라 와이셔츠 하나 맘 편히 맡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낄낄거리게 될 거다.
‘맥주처럼 톡 쏘고 소시지처럼 쫀득한’ 맛있는 복지 에세이인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재미난 에피소드와 냉정한 현실감을 맛깔스럽게 버무린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복지를 좀 더 쉽게, 좀 더 깊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2011년 10월 20일
오렌지마멀레이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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