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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름을 지을 때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주변의 지인에게서 가져오기도 하고, 평소 마음에 들었던 이름을 가져오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 겠지요. 어떤 작품의 경우 이름만 들어도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되고,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땐 아마 작가의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필립 리브의 판타지 SF 어드벤처 4부작 ‘견인 도시 연대기’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필립 리브가 어떤 뜻을 숨기고 이름을 지었는지, 아니면 흔히 영국에서 쓰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등장인물의 성격 혹은 활약상과 이름의 뜻을 '재미'로 한번 연결해 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견인 도시 연대기 등장인물 이름의 비밀 (2)

이름을 보면 캐릭터가 보인다! : 안나 팽, 페니로얄, 슈라이크, 피시케익, 스캐비어스, 스뮤, 나가

 

 

반 견인 도시 연맹의 전사 안나 팽(Anna Fang)

안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드문 이름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이 이름을 발견할 수 있지요. 부르고 쉽고 어감도 좋은 이 이름에 사실은 ‘형님’ 혹은 심지어 ‘(불량배 무리의) 형님’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과연! 반 견인 도시 연맹 사람들 모두가 추앙하던 용감한 여전사에게 어울릴 만한 이름이지요. 그리고 안나의 성인 fang에는 ‘(뱀, 개 등의) 송곳니’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름과 성 모두 아주 ‘터프’하고 용맹스럽네요. 1권 <모털 엔진> 이후 안나 팽의 변신을 생각하면 이 이름에 더욱 고개가 끄덕여질 것입니다.  

참, 안나 팽의 또 다른 이름은 펭후아(風化)입니다. 그래서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바람꽃’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한때 제니 하니버를 타고 하늘을 누볐던 안나 팽에게 참으로 걸맞은 이름이군요. 

(그림은 안나 팽과 제니 하니버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로 앨리스 듀크라는 분이 그렸다고 합니다. 견인 도시 연대기의 작가인 필립 리브가 아주 좋아한답니다. 제니 하니버를 타고 하늘을 누비던 안나 팽의 성격을 잘 포착해 냈다고 필립 리브는 평가하더군요. 그림은 필립 리브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허풍선이 사기꾼 페니로얄(Pennyroyal) 교수

페니로얄 교수는 그야말로 허풍선이 사기꾼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속이는 재주는 대단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약하고, 심지어 뗏목 휴양 도시 브라이튼의 시장이 되기도 합니다.

페니로얄 교수의 이름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좋은 뜻으로 보자면 Penny Royal (mint)의 변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페니 로얄’은 박하의 일종으로 강한 향이 특징이지요. 페니로얄 박사가 그의 거짓말을 숨기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들통이 난다는 점에서 사기꾼의 ‘강한 향’은 숨길 수 없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합은 어떨까요. penny는 영국의 화폐 단위로 우리 돈으로 치면 20원이 안 됩니다. royal에는 ‘왕족’이라는 뜻도 있고, ‘성대한, 위풍당당한, 장엄한, 충성심 깊은’. 뭐, 이런 뜻도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10원짜리 가짜 왕족’ 혹은 ‘당당함이라고는 서푼도 안 되는 사람’ '충성심이라고는 서푼도 없는' 뭐 이런 뜻은 아닐까요? 어떻게 이해해도 페니로얄 교수에겐 참으로 잘 어울리는군요.

 

 

 

미워할 수 없는 악(惡 )슈라이크(Shrike)

슈라이크는 분명 '우리 편'이 아닌 악당이지만 미워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연민과 동정이 생길 때도 있더군요.

 ‘60분 전쟁’ 때 죽고 새로 태어난 기계 인간 스토커로 그는 ‘마음’이 없어야 정상입니다만, 몇 년을 어린 헤스터 쇼를 돌보며 사랑을 키웁니다. 아니, 어린 헤스터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사랑을 지키고자 헤스터 쇼를 자기와 같은 기계 인간으로 만들려고도 하지요. 심지어 기계 인간인 상태에서 죽고 또 한번 살아나지만 ‘헤스터 쇼’에 대한 기억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마음이 있는 사람보다 더 인간적이기도 합니다.

견인 도시 혹은 반 견인 도시 연맹의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는 무기여서일까요? 슈라이크란 그의 이름의 뜻은 참 슬프고 직설적입니다. 미 공군의 '공대지 미사일' 중에 슈라이크가 있습니다. 슈라이크의 원뜻은 ‘때까치’입니다.

(그림은 필립 리브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일러스트 작가이기도 한 필립 리브가 작품을 구상하며 스케치한 것인 듯 싶습니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름이 많습니다.

 

로스트 보이의 일원인 꼬마 해적 피쉬케익(Fishcake)은 ‘피쉬케이크’라는 음식에서 따왔습니다. 대단한 음식은 아닌 듯하고 아마 영국의 가정에서 흔히 먹는 듯합니다. 우리말로 풀면 ‘어묵’쯤 되려나요. 물론 한국에서도 어묵 반찬은 엄마가 자주 해 주는 간편식이자 만만한 음식입니다만, 평생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그리워하며 사람의 정에 목말라 하는 로스트 보이 피쉬케익에게는 이보다 더 슬픈 이름도 없겠네요.

 

앵커리지 도시의 무뚝뚝한 엔진 마스터 스캐비어스(Scabious)는 ‘부스럼투성이의, 옴’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머, 무슨 이름을 그렇게 지었대 싶을 정도로 참 심하다 싶습니다만, 스캐비어스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은둔형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쨌거나 성격을 잘 드러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앵커리지의 여왕 프레야의 충실한 하인이자 일인다역을 거뜬히 소화했던 스뮤(Smew)는 ‘흰비오리’라는 뜻입니다. 스뮤는 키가 작은 소인이지만 심지가 굳고 충심을 다해 프레야를 보필하지요. 흰비오리는 눈부시게 하얀 자태를 자랑하는 아주 멋진 외양을 가진 오리라고 합니다. 스뮤의 인격에 걸맞은 이름입니다.

 

3권 <악마의 무기>와 4권 <황혼의 들판>에 등장하는 나가(Naga) 장군을 빼먹을 뻔했군요.

‘나가족’에서 따온 말 같습니다. 나가족은 인도 동북부 아삼 주 나가 구릉과 미얀마의 친드윈 강 상류 지역에 사는 부족으로 신체적으로 황색 인종의 특징을 지니며, 티베트-버마어를 사용합니다. 반 견인 도시 연맹의 사령부가 있었던 바트뭉크 곰파와 그린 스톰의 사령부가 있는 티엔징이 바로 이곳, 아시아 고산지대에 있지요.

 

그러고 보니 필립 리브는 새를 좋아하는 걸까요? 

렌은 굴뚝새, 슈라이크는 때까치, 스뮤는 흰비오리... 새의 이름을 빌어온 것이 눈에 띄네요.

 

그래서 한 컷.

무슨 새인지 글씨가 흐려 잘 안 보입니다만, 새의 모형(혹은 박제) 앞에서 재밌는 표정을 하고 있는 필립 리브.

가족과 함께 떠난 휴가 여행에서 새 박물관쯤 방문했나 봅니다.

물론 사진은 필립 리브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뜻을 연결하는 시리즈는 끝이 났습니다.

엄청 길었습니다. 지루하진 않으셨나요?

 

여러분들은 ‘견인 도시 연대기’를 읽으면서 또 어떤 이름의 비밀을 알게 되셨나요? 눈치 채신 것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요. 혹 저희와 다르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듣고 싶습니다. 혹 필립 리브가 그런 뜻으로 이름을 짓지 않았으면 어때요?(어차피 필립 리브는 한글을 모를 겁니다 ㅋ)

 

무엇보다 집필할 때 작품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지만 세상에 나온 이상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자 권리이니까요.

 


견인 도시 연대기 (전4권 세트)

저자
필립 리브 지음,김희정 옮김 지음
출판사
북와이즈 | 2014-05-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필립 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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