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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북스 독자가 묻고 부키 대표가 답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vs <나쁜 사마리아인들>
페이스북에는 소셜북스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소셜북스에서는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은 독자를 중심으로 궁금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받는 댓글 놀이터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정리해 총 9개의 질문을 부키와 시사인 이종태 기자에게 보내 답변을 요청했습니다.
부키는 지금까지 장하준 교수의 저서를 대부분 출간한 출판사이고 이종태 기자는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정승일 장하준의 대담을 진행하고 원고로 정리한 인연과 국내 누구보다도 '장하준통'(이런 표현이 실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이기 때문이겠지요.
질문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미천한 저는 장하준 교수도 대단하지만 장하준의 독자들도 대단하구나, 싶었거든요.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도 순차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9개의 질문 중 이미 답변을 하고 소셜북스에도 공개된 내용을 소개해드립니다.
다소 길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장하준의 독자들께는 또 이보다 좋은 텍스트도 드물겠다 싶어서요.
소셜북스 공개질의 답변을 직접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자는 부키에서 출간한 장하준 교수 책의 기획을 맡았던 부키 박윤우 대표입니다.
질문
1.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지만 대중적으로 확연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가 차별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질문자 김도원)
2. (1번 질문과 연관됩니다) 책을 읽는 것은 독자의 자유지만, 그래도 독자들에게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어떻게 활용할 지 TIP을 말해준다면?(참고로 소셜북스 Sehee Kim 님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실행편' 또는 '활용편'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질문자 Sehee Kim 님)
답변 : 1번 질문과 2번 질문을 묶어 답합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사이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지 못하신다니 두 책을 편집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두 책, 그러니까 저희 출판사에서 부르는 식으로 하자면 <사마리아>와 <23가지>는 우선 제목부터가 전혀 다릅니다. (저기… 이거 질문 자체가 너무 진지해서 한 번 웃고 시작하자고 한 농담이라는 거 아시죠? 행여 ‘짱돌’ 집어 드신 분 없으시죠?)
자, 그러면 얼른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사마리아>와 <23가지>의 차이점은 소셜북스의 Sehee Kim 님이 지적하신 그대로 받아들이셔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마리아>는 일종의 원론 내지는 입문서에 해당하고, <23가지>는 그 활용편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거죠.
그렇지만 <사마리아> 하나만 읽으면 장하준 교수님 생각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된다고는 섣불리 예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는 <사다리 걷어차기> 이래 <23가지>까지 장 교수님 책만 7권을 – 그러니까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장하준 교수님 책을 전부 - 편집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낼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시각에 눈 뜨게 되던 경험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사마리아인들> 신자유주의 한계를 '감성'적으로 즉각적으로 느끼게 해주다!
예컨대 <사마리아>에서는 흔히 개방화, 민영화, 자율화로 통칭되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감성’에 입각해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경우 <사다리>에서 부자 나라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를 철저하게 실증적으로 배운 바 있습니다. 또 <국가의 역할>에서는 개방화, 민영화, 자율화가 이론적 측면에서 근거가 부실하다는 것도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논리가 얼마나 강자의 논리인지를, 어느 정도로 승자의 논리인지를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뼈저리게 공감하게 된 것은 <사마리아>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디어의 차용은 나쁜 짓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경제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 혹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제공되는 경제학적 설명을 통해서 - 세뇌 당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 아이디어를 이용할 비용이 없어 – 아주 극단적으로 책조차 사볼 돈이 없어 – 가난과 질병에 허덕여야 합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행위로 용인되어야 할까요? 아이디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지식의 산물인데, 과연 지식이 이렇게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간주되어도 괜찮은 걸까요? 한 사회의 지식이 보존되고 축적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회적 자본이 투입되는데, 그 사회적 자본에 대한 대가는 전혀 무시되는 것이 타당한 걸까요?
<23가지> 자신있게 신자유주의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게 하다!
제가 신자유주의 노선을 거부하게 된 것도 결국 <사마리아>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대처를 대놓고 비웃을 정도로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 혼자서 신자유주의를 왕따시켰을 뿐이죠. 그러다 <23가지>를 읽고는 자신 있게 ‘신자유주의로는 안된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시장 정책 면에서, 기업 정책 면에서, 재정 정책 면에서, 소득 정책 면에서, 복지 정책 면에서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문제점들이 <23가지>에서 너무도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예, 저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경제 발전기의 엄청난 물가 상승에 질린 사람입니다. 때문에 일본의 안정된 물가를 내심 선진국의 증거로 해석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장 교수님께서 <23가지> 어디선가 한 말씀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서운 건 직장을 잃고, 집을 차압당하는 것이지 물가 상승률이 3%를 넘느냐 넘지 않느냐가 아니라는 요지로요. 그 순간 저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말로 괴로운 것은 소득이 사라지는 것이지,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상태가 아닌 이상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언제부터인가 물가 상승을 더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냥저냥 먹고살 뿐 개인 자산이라고는 별 것도 없는 주제에 말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사람마다 답이 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경우에는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 신자유주의 일색의 경제학 지식이 덧씌워지면서 그렇게 된 것 아닐까 추측 됩니다. 뭐, 간단히 말해 제가 싫어하는 상황을 옳지 않다고 설명하는데 혹해서 경제학에 –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에 - 매몰되어 있었던 거죠. 좀 아는 척 해가면서요.
<사마리아>와 <23가지>, 동전의 양면 : 함께 있어야 더욱 힘있다!
두 책 <사마리아>와 <23가지>의 차이점이 드러났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는 <사마리아>와 <23가지>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근본 논리를 무너뜨리고, 다른 하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문제를 일으켰는지를 설명하는데, 이 두 책이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제 경우에서 보듯, 효과가 반감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적절한지 모르겠군요. 편집자로서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질문
3.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283p 중간쯤에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결과의 균등을 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공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또 하나의 '역차별'을 만들게 되지는 않을까요? (이호진 님, 소셜북스 약간 가필)
답변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잘못 이야기를 풀다간 이야기가 경제학이 아니라 철학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을 정도로요.
논리적으로는 역차별이 생기게 되겠죠. 하지만 그 역차별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그 역차별이 생기게 된 원래의 차별 자체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은 채, 차별에 따른 역차별 문제만을 거론하는 것은 자칫 원인은 무시하고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는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장하준 교수님 말씀은 진정으로 공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결과의 균등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가난해서 공부 못하는 아이, 본인이 취업할 당시에는 전망이 좋은 일자리였으나 산업구조 조정으로 실업자가 된 노동자의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 바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 교수님께서는 어느 정도 결과의 균등을 도모하는 편이 경제적으로도 낫다고 봅니다. 사회 안전망 확충으로 사람들이 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면 보다 진취적이 되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사회 안전망이 확충되면 사람들이 게을러져 결국 경제 성장에 해가 된다는 거죠.
어느 게 맞을까요? 장 교수님의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의 경제 실적을 들어 복지 혜택의 확대를 요구하십니다.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미국의 역동성을 반론의 근거로 삼는데, 그게 좀 그렇습니다. 미국의 역동성이라는 게 <23가지>에 나오듯 반드시 긍정적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도 미국을 반론의 근거로 삼는 건 나은 편입니다. 국내의 신자유주의자 중에서는 스웨덴의 경제 실적마저 왜곡해서 내놓더군요. 복지국가 신화를 사라졌다면서요.
가끔 생각하는데, 모든 경제 데이터에는 출처를 표기하지 않으면 보도할 수 없게끔, 그리고 경제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끔 하면 서로 간에 결론을 끌어내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가끔 경제학자도 아닌 편집자조차도 반박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을 천연덕스럽게 내놓곤 하는 게 너무 서글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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