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세계사 브런치』 편집자 노트
역사는 이렇게도 기억되고 체험된다
경의선숲길.jpg
지난 몇 년간 나는 여러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다가 편집하는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두어 달 전 부키에 입사하면서 다시금 규칙적인 일과를 보내는 생활로 돌아왔다. 회사와 집이 서로 멀지 않아 걸어 다닐 수 있기에 출근길 교통지옥을 피하는 행운도 누리고 있다. 게다가 그즈음 서교동을 지나는 ‘경의선숲길’이라는 공원이 거의 완성되었는데, 마침 내 출퇴근길과 이 공원길이 일부 겹치면서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씩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지상에 있던 경의선을 지하 터널로 내려 보내는 김에 그 자리에 도로를 내거나 건물을 올리는 대신 공원을 조성한 것인데, 그러면서 홍제천부터 용산까지 6킬로미터에 이르는, 폭이 좁고 길쭉한 휴식처가 생겨났다. 그저 흙을 깔고 나무와 잔디를 심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삐뚤빼뚤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책로를 만들어 기다란 공원을 따라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게 했다. 물길이 흐르는 구간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군데군데에 박힌 옛 철로와 침목이다. 물론 긴 공원 지하를 따라 뚫린 터널에 궤도가 깔려 있고, 공원 이름에도 ‘경의선’이 들어 있으니 여러 힌트가 충분한 셈이지만, 처음 이곳을 마주친 사람이 굳이 그 이름을 몰라도, 지하에 뭐가 있는지 몰라도 한때 열차가 달리던 자리였음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해놓았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던 장벽은 1990년 독일이 통일될 즈음에 무너졌지만, 일부 구간이 보존되어 지금은 거리 미술가들이 벽화를 그리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장벽이 아예 사라진 곳 바닥에는 그 주변과 다른 돌들을 깔아 눈에 띄게 만듦으로써 옛 경계선이 있던 자리였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어떤 건물이나 구조물의 용도나 수명이 다하여 그것을 제거하고 새롭게 탈바꿈시킨다 해도, 예전의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나마 남겨두는 것은 자연스럽게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방법이다. 그 터에 새로이 들어선 것은 뜬금없이 우리 눈앞에 나타난 신생물이 아니라 나름의 내력을 지닌 역사적 사물이 된다. 역사는 이렇게도 기억되고 체험된다.
-부키 편집실 이루수 씀
'부키 books 2013~ > 세계사 브런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 (0) | 2015.09.09 |
---|---|
피라미드, 왕의 무덤인가 외계인의 작품인가 (0) | 2015.09.08 |
세계사 브런치 출간! (0) | 2015.08.31 |
- Total
- Today
- Yesterday
- 가족의두얼굴
- 아까운책2012
- 비즈니스영어
- 최광현
- 비즈니스·경제
- 부키전문직리포트
- 장하준
- 자녀교육
- 문학·책
- 진로지도
- 직업의세계
- 김용섭
- 긍정의배신
- 셰릴 스트레이드
- 지난10년놓쳐서는안될아까운책
- 남회근저작선
- 가족에세이
- 교양과학
- 힘이 되는 짧은 글귀
- 바버라에런라이크
- 힘이되는한마디
- 심리에세이
- 남회근
- 셰릴스트레이드
- 어학·외국어
- 와일드
- 안녕누구나의인생
- 영어
- 직업탐구
- 부키 전문직 리포트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