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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2
자유를 빼앗긴 요양원에서의 삶
요양원의 공식 목적은 간호와 보살핌이다.
그러나 이 기관에서 진화한 ‘보살핌’이라는 개념은 앨리스 할머니가 보통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 견디기 어려웠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할머니뿐이 아니었다. 나는 자기 의지로 보스턴의 한 요양원에 입주한 여든아홉 살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보통 자녀들이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본인이 자처한 사례였다. 할머니는 울혈심부전과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최근 여러 번 넘어진 후 플로리다주 델레이 비치에 있는 콘도미니엄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넘어졌어요. 그래서 딸한테 ‘이제 혼자 집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지요.” 할머니가 설명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들어갈 곳도 스스로 선택했다. 소비자 만족도가 높았고, 직원들도 친절했으며, 딸이 근처에 산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나와 만나기 한 달 전에 그곳으로 입주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안전한 곳에서 살게 된 것이 기뻤다고 말했다. 괜찮은 요양원이라면 기본적으로 안전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도 불행했다.
문제는 그녀가 원하는 삶이 단순히 안전하다는 것 이상이라는 데 있었다.
“전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집이 아니라 병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 이는 거의 모든 요양원이 안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이다. 요양원의 우선순위는 거주민의 욕창 방지와 체중 유지 같은 데 있다. 물론 모두 중요한 의학적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 그 할머니는 자신이 직접 꾸민 널찍한 아파트를 떠나 베이지색 페인트 칠이 된 작은 입원실 같은 방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됐다. 소지품은 옷장 하나와 선반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줄여야만 했다.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고,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이 요양원에서 정해 놓은 엄격한 시간표에 따라 결정됐다. 자기만의 비품이나 세간을 들여놔서는 안 되고, 저녁 먹기 전에 칵테일을 한 잔 하는 것도 안 됐다.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나는 도움이 되고, 내 역할을 다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할머니는 예전에 자기 장신구를 직접 만들고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주로 하는 것이라곤 빙고 게임, DVD 영화 시청, 그리고 기타 수동적인 단체 활동들뿐이었다. 할머니는 친구, 사생활, 그리고 삶의 목표 같은 것들이 가장 그립다고 말했다.
물론 현대의 요양원은 화재 대책도 없이 창고 같은 곳에서 노인들을 유기하고 학대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육체적인 독립성을 잃으면 가치 있고 자유로운 삶은 불가능하다는 개념을 별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듯하다.
...
이것은 바로 삶의 마지막 단계에 관해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회가 낳은 결과다. 우리가 만들어 낸 시설과 제도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병원 입원실을 비우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 주고, 노년층의 빈곤을 극복하려는 목적 말이다.
그러나 그 시설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듯하다. 우리가 병들고 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됐을 때도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 말이다.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발췌 및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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