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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에 사로잡혀 경제 위기를 자초한

개혁론자들의 오만과 편견을 반박한다!

 

 

<개혁 덫>

지은이∙장하준

펴낸날∙2004년 8월 23일 

판형∙신국판

쪽수∙252쪽

값∙9,800

ISBN∙89-85989-71-5 03320

 

 

 

1. ‘개혁’이라는 한국 경제의 덫

뮈르달 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이어 『개혁의 덫』에서 지은이는 왜 오늘의 우리 경제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경제 흐름을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게 할 방법은 없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은? 작금의 경제 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제라는 변수 외에도 정치라는 변수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변수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지은이가 이런저런 사실의 적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현재 우리 경제는 ‘개혁’이라는 ‘덫’에 걸린 상태라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개혁론자들은 ‘개혁’을 내걸고 집권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의 부정적 유산, 특히 그들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절대악(絶對惡)으로 규정해 온 비민주적 정권의 제도 및 정책과 절연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대안의 존재 여부인데, 마침 외환 위기 이후 세계화는 필연이라는 인식에 따라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과거와는 정반대이다. 시장 중심적 접근 방식은 개발연대의 정부 개입적 접근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그 골치 아픈 재벌 문제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는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다. 투명 경영, 주주 자본주의를 통해 가공 자본의 창출에 의한 1인 소유 및 문어발식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2.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우선 투자가 붕괴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실업난이 이어졌다. 청년 실업이 국가적 고민으로 떠오르고, 구조 조정 과정에서 물러난 중년층 실업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일찌감치 퇴출되거나 소자본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 소비 위축을 극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짜낸 소비 진작 정책은 신용 불량자만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가중시킨 것은 물론 가정 파괴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또 노동 시장을 유연화한다고 비정규직을 늘린 탓에 노동자 간 임금 격차는 커졌다.

반면 주식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주주들의 영향력이 강해진 결과 기업들의 배당률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기업들의 이익이 과거와 같이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 대체로 상류층에 속하는 - 주주들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절대 빈곤층의 급증이다. 외환 위기 이후 절대 빈곤층은 국민의 5.9%에서 11.5%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과거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평등한 수준에 속하던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가 이제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게 되었고, 자칫 잘못하면 미국을 제치고 멕시코 등 남미 국가의 대열에 끼게 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이다.

지은이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고 묻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혁론자들은 진보를 표방했다. 진보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상징한다. 그런데 현재의 개혁은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약육강식의 시장으로 몰아내고 있다. ‘개혁’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과거와의 절연만을 서두른 결과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3. 우리 경제, 그렇게 문제였나?

장하준에 따르면 한국이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 채택했던 경제 정책을 다시 채택하면 된다. 문제점만 수정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말이다. 그에 대해 쏟아지는 무수한 반론의 요지는 한 가지,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그게 말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경제사적으로 제시한다.

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은이가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 하나에 답해야 한다. 과거의 우리 경제가 과연 무엇이 그렇게 잘못되었느냐는 질문이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선진국들의 소득이 2배가 되는데 7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했다. 반면 1960년대부터 1997년 외환 위기 때까지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6% 가량으로, 40여 년이 지나면 소득이 8배가 되는 엄청난 성장을 구가했다.

물론 이런 성장률 하나만으로 우리의 개발연대를 무조건 미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소득이 가나의 반이 채 안 되고, 아르헨티나의 5분의 1밖에 안 되던 나라, 텅스텐․생선․해조류 등 1차 산품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던 나라가 이제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2배 가량 되는 소득에,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 등의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출국임을 자랑하게 되었다. 뿐인가? 그런 속에서도 소득 분배가 상당 정도 평등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민 전반의 생활이 향상되었다. 지은이는 그와 같은 성과는 제대로 평가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4. 고르디우스의 매듭, 재벌 문제

그렇지만 그때쯤 되면 다른 강력한 반론이 나오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다름없는 재벌 문제이다. 재벌들의 체질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장하준 역시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재벌 = 공공의 적’이라는 무모한 일반화에 대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 비판의 요지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과다한 차입 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 구조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지은이에 따르면 이런 인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비율로 따져 볼 때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보다 더 많은 자금을 주식 시장을 통해 동원했다고 한다. 또 350~400%라는 우리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병적으로 높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고도 성장기 일본이나 1980년대 유럽과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재벌에 대한 비판 하나하나에 대해 실증적으로 근거를 대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이다.

이 책 『개혁의 덫』은 끝날 때까지 이런 식의 반박이 거듭되면서 거의 모든 경제 문제를 다룬다. 세계화나 금융 허브, FTA 협정, 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과 같은 중차대한 경제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에서도 장님 코끼리 더듬듯 하는 현장이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일반 상식은 무너지게 된다. 경미한 인플레는 오히려 성장을 촉진한다든가, 정치 논리의 개입이 왜 필요한지, 다국적 기업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그렇다.

그 모두가 과거 경제 성장 정책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재도입함으로써 지금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은이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론자들이 자신이 주장하던 개혁과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단절하고자 그렇게 노력해 온 과거의 유산을 상속받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 경제는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 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라는 변수 외에도 정치라는 변수에,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변수까지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한다고 한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5. 지은이 소개

장하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한 이래 UN․세계은행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와 영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각국 정부 그리고 Third World Network(말레이시아)․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미국) 등의 시민단체(NGO)의 자문역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2003년 뮈르달 상 수상작인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2002, Anthem Press)를 비롯하여 『The Political Economy of Industrial Policy』(1994, Macmillan Press) 『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2003, Zed Press) 『Restructuring Korea Inc.』(공저, 2003, RoutledgeCurzon) 『Reclaiming Development - An Alternative Economic Policy Manual』(공저, 2004, Zed Press) 등이 있다.

 

 

이 책의 차례

 

PART 1 경제 개혁이라는 덫

세계화는 ‘필연’이 아니다

시장 경제만으로는 안 된다

미국식 개혁만이 해법일까?

자유방임 정책이 초래한 것은…

사위어 가는 신자유주의의 불길

FTA는 함정인가? 도약대인가?

미국 화폐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국적 없는 자본이 존재하는가?

다국적 기업은 없다!

선진국들이 바뀌어야 한다

여전한 ‘경제적 구타의 악순환’

 

PART 2 경제 개혁론자들의 오만과 편견

정치 논리의 개입은 필요하다

정부 주도 경제는 ‘절대악’인가?

반(反)산업 정책론자들의 오만과 편견

‘조로(早老) 경제’에도 처방은 있다

경미한 인플레는 성장을 촉진한다

탈(脫)산업화가 경제 선진화인가?

민영화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공적 자금 회수, 과연 서둘 일인가?

한국 기업이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

기업 가치를 따지는 투자자분들께

인터넷 경제의 미래가 장밋빛이라고?

신경제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세계화는 기술이 아닌 정치의 문제다

 

PART 3 우리 경제가 그렇게 문제인가?

장님 코끼리 더듬듯 하는 선진국 벤치마킹

선진 경제를 향한 보편타당한 공식은 없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진정 우월한가?

황금기를 맞았다는 미국 경제의 고민

‘두 얼굴의 미국`’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무역 협상인가?

한미 투자협정에 무슨 이득이 있는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바로 알아라

누구를 위한 재벌 개혁인가?

 

PART 4 아직도 늦은 건 아니다

후진국 콤플렉스, 이젠 벗어나야

파이, ‘키우면서 나누기’

‘스위스식 대타협’을 그리며

제조업 없이는 금융도 없다

주주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주주 자본주의’는 만능인가?

소유 경영도, 전문 경영도 상관없다

국영 기업, ‘매각’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중앙은행도 성장 정책 펴라

제조업 살려야 이공계도 산다

‘빛 좋은 개살구’- 글로벌 스탠더드

 

PART 5 사지선다형 경제학을 넘어서

우리 몸속의 ‘이중 잣대’

머나먼 남아공에서의 교훈

스티글리츠의 당당한 사임

노무현과 룰라에 대한 편견과 오해

“동북아 금융 허브?” 헛고생 마라

좌파도 우파도 아닌 한국파의 괴로움

 

 

본문 맛보기

 

누구를 위한 재벌 개혁인가?

 

현재 많은 사람들은 경제 개혁의 초점을 재벌 개혁에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재벌이라는 구조가 과다한 차입 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 구조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재벌 기업들이 금융 기관을 통한 차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온 주된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소유권 약화를 꺼린 기업들이 주식 시장을 통한 자금 동원을 기피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자본 축적의 역사가 일천한 관계로 기업 내부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다.

게다가 비율로 따져 볼 때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보다 주식 시장을 통해 더 많은 자금을 동원했다. 1970∼1980년대에 걸쳐 우리 기업들이 신주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총 자금의 13.4%로 이는 미국(-4.9%), 독일(2.3%), 일본(3.9%), 영국(7%)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인 것이다.

또 고도의 차입 경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사항도 아니다. 흔히들 350∼400%라는 우리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병적으로 높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일본도 고도 성장기에는 500%대의 부채 비율을 기록했다. 또 우리나라의 부채 비율이 366%였던 1980년대에도 스웨덴(555%), 노르웨이(538%), 핀란드(492%)의 부채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았으며, 프랑스(361%), 이탈리아(307%)도 우리와 유사한 부채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이 시기 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들이 부채 비율이 낮은 영국(148%)이나 미국 (179%)보다 경제가 훨씬 더 잘 돌아갔다는 점이다. 이와 반대로 브라질(56%), 멕시코(82%) 등은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부채 비율이 월등히 낮았음에도 경제 사정은 더 힘들었다. 부채 비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재벌 개혁을 바라보는 빗나간 시각들

 

다각화의 문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은 ‘전문 기업’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업의 다각화는 위험을 분산하여 적극적 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기존 계열사로부터의 보조를 통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돕는 장점이 있다.

한번 가정해 보자. 우리 기업들이 만일 전문화만 추구하였다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현재 우리나라 주축 산업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인지를. 물론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다각화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피라미드형 출자 등을 통한 ‘가공 자본’의 창조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가공 자본’은 내부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자본은 기본적으로 ‘가공적’인 것이다. 정부가 시중 은행의 지불 준비율만 조절해도 자본이 생겼다가 없어졌다 할 수 있고, 우리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 하는 ‘선진 금융 기법’의 핵심이 ‘더 효율적인 가공 자본의 창조’인 마당에 자본의 가공성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가공된 자본이 부당한가 아닌가는 가공성 자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가에 의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금융 개혁, 기업 금융 고갈 불러

 

재벌 개혁과 함께 추진된 금융 개혁이 금융 기관의 안정성과 수익성 제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금융 기관들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기업 금융을 전면적으로 회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금융 기관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대폭 줄어들었다.

1996∼1997년 기간 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은행 및 비(非)은행 모두를 포함한 금융 기관으로부터의 차입이나 주식 발행,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118조 원의 외부 자금을 조달하였는데, 1998∼2001년에는 이것이 불과 31% 수준인 49.4조 원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특히 금융 기관 차입 분은 1996∼1997년 연평균 38.3조 원에서 1998∼2001년 연평균 -0.2조 원으로 완전 증발하였다. 결국 대규모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여타 기업들은 거의 외부 자금을 동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설령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라 하더라도 외국인 소유 주식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투자에 점점 더 제한을 받고 있다. 외국인 주식 소유자는 주로 투자신탁이나 연기금 등 기관 투자가들인데, 이들의 경우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배당금이나 주가 차액 등의 이득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장기성 대규모 투자를 싫어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투자율이 1990∼1997년의 경우 평균 국민소득의 37%에 달하던 것이 1998∼2002년의 경우 26% 미만으로 급격하게 떨어진 것은 이런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당분간 자본 설비와 기술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 같은 투자율의 급격한 감소는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다 최근 SK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자본 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인수·합병이 자유화되면서 재벌들은 외국계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 노출된 상태이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감상적인 민족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또 ‘1960년대식 종속 이론의 부활’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증적 자료에 기초한 이야기인 것이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이제 국적을 초월했다는 초국적 기업들의 경우에도 전략 수립, 연구 개발, 브랜드 관리, 고부가가치 상품 생산 등 핵심 기능은 아직도 거의 전부가 본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최고 경영진도 대부분 본국인이다. 1998년 독일의 다임러 벤츠(Daimler-Benz) 그룹이 미국의 크라이슬러(Chrysler)를 인수했을 때 처음에는 양 사의 동반자적 결합이라며 이사회에 독일인과 미국인을 동수로 내세웠다. 하지만 합병 후 4년이 지난 지금 이사 14명 중에 미국인은 2명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고 외치는 선진국들조차 자기 나라 경제의 대외 방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서슴없이 외국 자본을 규제해 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주주 자본주의 ‘득보다 실이 많다’

 

그러나 현재 재벌 개혁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궁극적 목표가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라는 점이다.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은 주주의 소유물인 만큼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는 것은 법적인 해석일 뿐이고, 실제로 영미계 나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주주란 직접 금융의 조달자로서 경영진·노동자·채권자·하청업체·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당사자(stake-holder) 집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주주 자본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주식 시장이 정확히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18세기 초 영국의 동인도회사 주식에 대한 투기부터 시작하여 20세기 말 세계를 휩쓴 인터넷 거품까지 지난 300여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역사는 주식 시장이 기업 가치의 판단에 있어 얼마나 비효율적일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더욱이 기업의 실적이 분기별로 평가되는 주식 시장의 속성상 ‘단기주의’(short-termism)의 만연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설비와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통한 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영국에서 주식 시장의 단기주의로 인해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주주 자본주의의 추구는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좋지 않다. 대부분의 주주들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따른 이익보다는 단기적 배당이나 주가 차액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따져 나가다 보면 주주 자본주의는 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마저도 좋은 것이 아니다. 주주의 단기적 이익만 추구한 결과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과 발전이 제약되면서 주주들 역시 결국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주 이익의 추구가 과연 국민 경제 전체에 득이 되느냐는 점이다. 주주 자본주의는 글자 그대로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주식 시장이 교과서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주주 자본주의가 강화된 1980년대 이후 영미계 국가에서 대량 해고, 고용의 불안정화, 소득 분배의 악화 등이 급증한 것은 주주의 이익과 다른 사회 성원들의 이익이 불일치할 수 있다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게다가 주주 자본주의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주주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이나 미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소득 분배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 면에서도 ‘열등생’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적으로 단연 1위 국가였지만, 그 상대적 지위는 계속 낮아져 왔다. 1990년대 말의 소위 미국 경제의 ‘부활’도 주식 시장의 거품에 힘입은 반짝 경기에 불과했다. 또 주주 자본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은 유럽연합 15개국 중 밑에서 5등 안에 드는 2류 국가로 전락하였다.

 

감시 기능 강화를 전제로 재벌 체제 인정

 

그렇다면 현재 추구되고 있는 재벌 개혁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재벌 체제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주의 이익만이 아닌 국민 경제의 이익을 위해 그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억제하는 것이다.

재벌 체제의 장점은 위에서도 말한 대로 경영권의 중앙 집중, 대규모 자금 동원력, 위험 분산 능력 등을 통해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해 비교적 쉽게 새로운 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그만큼 위험도 큰 체제이다. 계열 기업 간의 상호 보조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을 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도 채산성이 없는 기업을 계열사 간 보조를 통해 지탱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부실을 장기화하는 것은 물론 자칫 계열사 전체의 연쇄 부실까지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총수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대규모 투자를 과감,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커다란 강점이 있지만, 투자가 실패할 경우에는 치러야 할 대가 또한 매우 크다.

이러한 재벌 체제의 단점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개혁 과제인 회계의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 제도의 도입, 소액 주주 권한의 강화 등을 통한 외부 감시 기능을 제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업원, 거래 은행, 하청업체 등 기업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해 당사자들에 의한 내부 감시를 강화하는 일이다. 많은 주주들은 사실상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사정을 잘 모르는 국외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총수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합치할 수 있게 조정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와 관련 우리나라 재벌들은 지금까지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부의 보조와 보호 아래 성장한 것인 만큼, 재벌 기업들은 총수 가족의 것도 아니지만 주주들만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재벌 총수를 통제한다면 그것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이지, 주주들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곤란한 것이다.

또 재벌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 꼭 기존 총수 가족의 지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서와 같이 가족 소유가 없이도 주거래 은행 제도, 관련사 간 상호 주식 소유 등을 통해 재벌 체제의 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정 지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수 가족에 의한 통제를 단시간 내에 없애려 하면 재벌 구조 자체가 붕괴되고 국민 경제가 외국 자본에 의해 교란당할 수 있다. 때문에 재벌들은 역사적으로 국민들에 대해 자신들이 진 빚을 인정하고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며, 국민들은 이러한 전제 아래 재벌들이 안정 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도와주는 정치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재벌들의 안정 지분 확보를 위해서는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하고, 지주 회사 설립 요건을 완화해 주는 동시에, 은행의 기업 주식 소유를 용인하며, 재벌들 사이의 상호 출자를 시도하고, 국민연기금의 사용으로 ‘국민 지분’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재벌들은 그 대가로 주주 자본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사회적 간섭을 피하려는 구태를 버리고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 정책을 통한 재벌의 사회적 통제

 

민주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정부의 산업 정책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재벌들이 큰 규모의 투자 결정을 할 때는 정부가 국민 경제적 입장에서 이를 감시·조정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부채 비율 규제 등 주주 입장에 입각한 금융적 총량 규제가 아닌, 성장·고용·수출 등 국민 경제적 파급 효과를 다각적으로 고려한 산업 정책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산업 정책의 부활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 과거에는 경제가 단순하여 정부의 개입이 쉬웠지만 경제가 복잡해진 상태에서 정부 개입은 시장의 효율을 저해한다는 것이 한 이유이고, 국가 개입은 필연적으로 권력 남용과 정경 유착 등의 문제를 낳게 된다는 것이 또 한 이유이다.

경제가 발전되어 민간 부문의 분석력과 집행력이 증대되면서 과거식의 직접적 개입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30∼40년씩 뒤떨어져 있는 중진국으로, 아직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단계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영국,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도 과거 자신들이 최고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거의 모두 정부의 보호와 보조 속에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가 복잡해진다고 정부 개입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민간 기업은 그 속성상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므로 정부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정책적 개입을 할 필요성은 경제 발전 단계에 상관없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 단계에 따라 개입의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개입 자체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 정부들도 주요 기업 지분의 일부 소유, 첨단 산업에 대한 연구비 보조, 지역 개발 기금을 통한 특정 산업의 간접 지원, 약소국에 대한 통상 압력의 행사, 자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비공식적인 압력을 통한 고용 창출이나 하청 산업 육성 등 여러 방법으로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개입이 꼭 권력 남용이나 정경 유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프랑스·노르웨이·핀란드·오스트리아 등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부패도 적은 선진국들이 지난 50여 년간 은행의 국가 소유, 선별적 산업 정책, 주요 산업의 국유화, 외국인 투자의 엄격한 제한 등 소위 ‘한국식’ 개입주의적 정책을 추구해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혁의 방향, 특히 재벌 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대로 재벌 개혁을 하다가는 국민 경제의 장기적 기반이 파괴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혁의 덫

저자
장하준 지음
출판사
부키 | 2004-08-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개혁’이라는 한국 경제의 덫 뮈르달 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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