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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힘이 세다! : 바버라 에런라이크 [오! 당신들의 나라]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9. 20:56

[긍정의 배신]으로 국내에 이름을 떨쳤던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새 책 [오! 당신들의 나라] 책임편집자는 오렌지마멀레이드입니다. 물론 [긍정의 배신] 편집자이기도 했지요. 오렌지마멀레이드는 [오! 당신들의 나라] 편집을 진행할 때는 상당히 즐거워했습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유머와 위트가 있는 촌철살인형 문체 덕분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오! 당신들의 나라]에서 오렌지마멀레이드는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요? <편집자 주>

[오! 당신들의 나라] 편집자 노트
웃기고, 울리고, 마침내 행동하게 만드는 풍자의 힘

 


가진 자들이여, 맛 좀 봐라

『오! 당신들의 나라』의 묘미는 웃음에 있다. 요즘 ‘닥치고 정치’와 ‘나꼼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데, 단언컨대 바버라 여사의 풍자는 그보다 한 차원 높다. 때론 은근히, 때론 싸대기를 후려치듯 비틀고 꼬는 맛.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 솜씨를 보시라.

2007년 1월, 주가 하락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홈디포의 CEO 로버트 나델리는 퇴직금으로 2억1000만 달러를 받았다.
실패한 CEO한테 왜 이런 엄청난 퇴직금을 주느냐고? 저자는 이렇게 능청을 떤다. 전처가 열 명쯤 있어서 부양비를 엄청나게 대야 하는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해고된 CEO에게 주는 이사회의 ‘팁’이었는지도 몰라.


 그들은 20퍼센트만 팁으로 내놓는 쩨쩨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팁이라면 300퍼센트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델리가 재임 6년간 받은 연봉 6400만 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퇴직금이 300퍼센트에 달한다). -본문 28쪽

오호라. 어쩌면 자본주의의 화신인 거대 기업들은 사실 ‘반(反)자본주의’적인 집단인지도 모르지!

실적의 반영, 다시 말해 ‘창출한 부가가치’를 기초로 임금을 지불한다는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홈디포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이런 반(反)자본주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제약 회사 파이저는 실패한 경영자에게 2억 달러에 달하는 전별 선물을 주었고, 증권 사 메릴린치는 모기지 관련 부채 840만 달러를 손실 처리한 뒤 CEO 스탠 오닐에게 퇴직금을 포함해 총 1억6150만 달러의 은퇴 혜택을 제공했다. -본문 29쪽

비용 절감, 아웃소싱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저자는 기어코 ‘한 방’을 날린다.

다음에는 CEO 자리를 아웃소싱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도 누군가 생각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해서 줄일 수 있는 비용 이야말로 엄청날뿐더러 중국인이나 인도인이 CEO 직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들은 미국 CEO 연봉의 10분의 1 이하만 받고도 완벽하게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본문 120쪽

특히 다음 대목은 원고를 다섯 번 이상 봤음에도 볼 때마다 나를 넘어가게 만든다!

비행기로 시애틀에 갔다가 짐 속에서 나온 1.8킬로그램짜리 햄 때문에 공항 안전 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안전 요원 몇 명이 모여 햄이 과연 ‘젤’인지 아닌지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나는 햄이 젤이라면 나 또한 젤이라고 맞받아치고, 커터 칼로 85그램씩 21등분해서 생체검사를 해 보라고 했지만(그러면 지퍼락 봉지에 딱 알맞은 크기가 된다) 안전 요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문 52쪽

 바버라 여사님, 햄이 젤이면 여사님도 ‘젤’이라고요? 아하하, 정말 멋지십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저자의 유머는 눈물을 품고 있다. 즉, 이런 거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혹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1%를 제외한 99%의 현실이라는 게 울다 못해 헛웃음이 날 만큼 기막히기 때문이다.

웬디스에서 칠리를 먹던 손님이 음식에서 사람 손가락이 나왔다면서 돈을 요구했다. 알고 보니 자작극. 그런데 집행유예 정도로 끝났을 일이, 거대 기업이 피해자가 되는 바람에 무려 징역 10년의 중죄가 되고 만다. 더 황당한 건 똑같은 일을 당한 교도소 수감자는 정반대 상황을 맞았다는 사실.
 

원하지 않는 단백질을 음식에서 발견하고 기겁한 로차는 그 식품 회사를 상대로 7만5000달러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으나 그의 변호사에 따르면 식품 회사가 제시한 합의금은 “모욕적일 만큼 낮은” 금액이었다. 이 사건에서도 로차의 채식주의를 위협한 ‘산업재해’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작업장에서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건 일상적인 일이라 그 손가락이 접시 위에 얹히기 전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본문 78쪽
 

저자는 법마저 정의롭지 못한 우리 사회에, 잘린 손가락쯤은 너무 흔해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 야유를 보낸다.

대학을 나와도 저임금 일자리밖에 얻을 수 없는 현실은 어떤가.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선 대기업들은 온갖 직무를 아웃소싱했고, 정부는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했다. 그 결과 ‘대걸레와 쟁반, 삽, 환자용 요강, 현금 등록기’를 다루는 일자리만이 차고 넘친다. 수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이런 저임금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성장 직업 3위에 이름을 올려 간신히 대졸자들의 체면을 세워 주고 있는 ‘중등 교사’가 가르칠 것이 무엇이겠는가?

잡역부와 트럭 운전사와 접수 담당자들이 주도하는 노동시장에서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취사와 서빙의 결합’이라도 가르쳐야 할까? -본문 115쪽

 분명 미국 사회의 모습이지만, 결코 남 얘기가 아닌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우리 모두 월스트리트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의 풍자는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분노로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오로지 자기 욕심만 채우는 1%에 대한 분노,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분노. 우리가 뭔가를 요구할 때마다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런 말로 위협했다.

뭐라고? 만약 당신이 사용자를 공격하거나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면 그들은 당신을 고용하지 않을 텐데? 실업이 증가하면 순식간에 굶어 죽게 될 텐데(프랑스처럼 복지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이나 다른 혜택도 없잖아)? -본문 169쪽

저자는 더 이상은 고개 숙이고 물러날 수 없다고 우리를 ‘선동’한다. 사용자에게 임의 해고권을 주겠다던 정부에 대항해 화염병을 던진 프랑스 노동자들을 보라.

개인은 약하지만 연대는 강하다. 저자는 그것이 불안과 두려움을 물리칠 방법이라고 말한다. “대학 캠퍼스에 극단적인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그런 문제를 모른 척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므로”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했다는 마이애미 대학생의 말처럼.

 자, 그러니 ‘월가 시위대’처럼 우리도 힘을 모아 다함께 ‘그들의 세상’으로 행진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위기를 불러온 것은 신도 아니고 추상적인 경기 변화도 아니다. 사람이 한 짓이다(금융기관이라는 탈을 쓰는 경우도 많다). 법정에 세워진 극소수를 제외한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돈을 펑펑 쓰면서 평범한 채무자들의 피와 눈물로 배를 불리고 있다. 1930년대의 구닥다리 방식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월스트리트로 행진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 -본문 103쪽

 


오 당신들의 나라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출판사
부키 | 2011-12-1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긍정의 배신'에 이은 '1%의 배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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