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독일, 금융위기를 넘어 날아오른 까닭은?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신자유주의 미국 모델이 답이며, 게으른 유럽은 낡은 제도라는 생각, 어쩌면 우리 대부분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을 꼭 닮은, 하지만 모든 면에서 미국보다 조금씩 뒤처진 한국의 경우 어쩌면 더 심각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저자 토머스 게이건 또한 우연찮은 기회에 독일 등 유럽의 복지사회를 생생하게 체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미국이 최고’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생각은 다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독일 등 사회민주주의 유럽이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2008년 가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럽 역시 어렵긴 하지만 독일과 스웨덴 등 잘 발달한 복지국가가 아닌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처럼 복지국가라고 하기 어려운 유럽의 나라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어떤 경험을 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요?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독일, 금융위기를 넘어 날아오른 까닭은?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금융 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와중에도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짓는 나라가 있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말했던 대로 독일인만큼은 “모든 게 무너져 버렸어! 우리는 거기에 휘말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라면서 환호작약했다. 독일인의 이런 모습은 내 눈에는 일종의 ‘샤덴프로이데’, 쉽게 말해서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독일인이 금융 위기를 반긴 것처럼 보였을까?
첫째, 금융 위기는 독일에만 책임을 묻기 힘든 세계적 재앙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경제 위기가 닥치면 미국은 독일 같은 경제 대국이 소비를 하지 않아서 불황이 초래되었다는 논리를 펼치곤 했다. 그러나 2008년에 시작된 금융 위기는 달랐다. 많은 독일 은행가가 미국이 건네주는 쿨-에이드(Kool-Aid)(미국의 대표적인 청량 음료 분말)를 마다않고 마셨으나, 정작 파티를 엉망으로 만든 것은 미국 은행가였다.
둘째, 어떤 사민당 출신 공직자(편의상 W라고 부르기로 하자)가 내게 “지금 이 순간 독일인은 독일식 제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정곡을 찌른 말은 없을 것이다. 사회 안전망이 존재하는 덕분에 독일인은 미국인이 겪는 대량 해고 사태를 면하면서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나와 만났을 때 W는 연방 노동·사회부, 즉 미국으로 따지자면 노동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물론 독일의 연방 노동·사회부와 미국의 노동부를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진정한 노동운동이 존재하는 나라의 노동 담당 부처가 위상이 훨씬 더 높을뿐더러 담당 업무도 많은 법이다. W는 “우리는 연방 예산의 거의 절반 정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연금 제도 같은 것도 연방 노동·사회부 소관이라는 의미이다.)
미즈 G를 만나기로 한 금요일 오후에 잠시 한가한 시간이 생겨 그와 만나게 되었다. 독일 정부의 고위 공직자인 만큼 매우 바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제가 너무 귀중한 시간을 뺏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금요일 오후잖아요.”
음! 베를린은 여전히 베를린이었다.첫인상만 보고서도 노동조합 활동가 출신일 것으로 짐작했는데 정말 그랬다. W는 장장 30분에 걸쳐 내게 독일 연방 정부가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이 유지되도록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 예를 하나 들자면, 독일 연방 정부는 노동자를 일주일 내내 고용하는 경우 고용주에게 3일치에 해당하는 임금을 보전해 준다. 미국의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많은 탓에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30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복지국가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정규직이다.
“노동·사회부가 연방 예산의 절반을 쓴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군요.”
“그래도 실업수당으로 지출하는 것보다는 예산이 훨씬 적게 든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고용주 역시 정부에 사회 기여금을 내야 합니다.”
W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제도는 ‘실물경제’가 회복되면 노동자를 일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실물경제의 흐름에 앞서 발 빠르게 대응하자는 게 그 초기 취지였습니다.”
그러면 경기 사이클에서 실물경제가 회복되기까지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대략 18개월 정도라는 게 W의 설명이었다.
그 성과는 대단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는 동안에도 독일의 실업률은 2003년보다 낮았다.
-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본문 중에서 발췌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