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노트]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수포자(수학을포기한자)'도 즐기는 - [숫자의탄생]
[편집자 노트] <숫자의탄생>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수포자(수학을포기한자)'도 즐길 수 있는 어떤 책에 대하여
시대와 문명을 가로지르는 환상적인 숫자 여행 <숫자의 탄생> 편집자 고독이는 '봄에도 집합 공부 여름에도 집합 공부'를 했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였다고 합니다. 그런 수학치가 <숫자의 탄생>이라는 수학교양서를 즐겁게 편집한 걸로 봐선 이 책이 꽤 흥미진진한 구석이 많고 매력 있는 모양입니다. '수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읽어도 손색없습니다만, 쉽게 서술되어 있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해 청소년들이나 학부모님, 일반 독자들에게도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수의 역사가 곧 인류 문명과도 연결되어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숫자의 탄생> 편집자 고독이의 편집 후기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숫자만 나오면 미간이 좁아지고 긴장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몇이서 밥값을 모아도 잔돈이 얼마인지 바로 계산이 안 되는 분, 슈퍼마켓에서 거스름돈을 주는 대로 받으시는 분,
돼지 가족이 소풍 간 것처럼 사람이 4명만 넘어도 인원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
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있고 셈을 빨리 잘하는 분도 있는 것을 보면 셈을 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신을 ‘숫자치’로 치부하며 ‘원래 셈을 못한다’고 말하면 속은 편하지요.
마치 키가 크고 작거나 목소리가 아름답거나 거친 것처럼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중세에 덧셈과 뺄셈을 배우려면 프랑스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야 했고 곱셈과 나눗셈을 배우려면 이탈리아 대학까지 유학을 가야 했답니다.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소수 엘리트들만이 ‘계산’이라는 걸 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박사 학위 과정에 맞먹는 교육입니다.
암산을 마구 하시는 여러분이 당시 시대를 살았다면 아마 수학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겁니다.
<숫자의 탄생> 책에 쓰인 다양한 그림들이 이해를 돕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지요.
어떤 사람이 새벽 네 시에 괘종시계 소리를 들었습니다. ‘뎅, 뎅, 뎅, 뎅’
그 사람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외칩니다. ‘시계가 미쳤구나! 한 시를 네 번이나 치다니!’
현대에 사는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인류가 처음부터 숫자를 연속성과 동시성을 갖고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을 지키던 목동은 기도문 단어에 양을 맞추던 시절이 있었고,
전쟁에 나선 전사를 세려고 세 명이 앉아 손가락과 발가락을 접던 때도 있었습니다.
몇 걸음 더 나아가볼까요.
숫자의 탄생은 획기적인 발명들 덕분인데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그 발명이 없던 때를.
일단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습니다. 0도 없었고, 게다가 위치기수법도 없었답니다.
(위치기수법은 7543을 ‘칠천 오백 사십 삼’이라고 각 단위대로 세는 것입니다. 5세기 이전 사람들에게 이 숫자는 단지 7, 5, 4, 3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0이 없었을 때는 702, 3092 같은 숫자를 어떻게 표기했을까요?
또 아라비아 숫자가 없을 때는 숫자를 어떻게 나타냈을까요?
<숫자의 탄생>에는 이런 숫자의 역사가 동서고금의 인류 문명과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칙연산(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할 줄 아는 분이라면, 식당에서 밥값을 계산하는 것보다 가볍고 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덧붙여 ‘숫자’ 하면 수학이 떠오르지요?
저도 ‘봄에도 집합 공부, 여름에도 집합 공부’를 했던 ‘수포자(수학포기자)’였는데요,
이 책을 편집하면서 셈이나 수학문제풀이나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아쉽네요.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었으면 숫자가 좀 더 좋아졌을 탠데 말이죠.
2011. 6. 7.
부키 편집부 고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