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노트] '건축'이라는 그릇에 마음을 담는 사람들 -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편집자 노트
‘건축’이란 그릇에 선한 마음을 담는 사람들 -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편집자 주 :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의 편집자는 이 모 과장입니다. 언젠가 시시콜콜 출판 상식 취재에도 많은 도움을 준, 따뜻한 사람이지요. 사람이 그래서인지 글도 참 착하고 따뜻합니다.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를 진행하는 동안 정기용 선생님께서 작고하셨는데, 조금만 일찍 책이 나왔더라면 선생님께서 이 책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고 죄송스럽다며 말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필자가 17명 정도면 사연도 많겠지요. 독자에게 사랑받는 부키의 대표적인 시리즈 ‘전문직’ 14번째 책,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편집자 노트,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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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부키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의 열네 번째 권으로 17명의 건축가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오늘의 건축가 생활 보고서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주택이나 공공건물, 상업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은 물론이고 구조 설계, 건축 CM, 도시 설계, 조경 등 다양한 건축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여하여 자신의 일과 생활, 보람과 애환을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면서도 진지하게 전하고 있다.
또 이 책에는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이자 효시라 할 수 있는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을 잇고 있는 이상림, 제1호 ‘기적의 도서관’인 순천어린이도서관을 설계한 정기용,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말레이시아의 KLCC 쌍둥이 빌딩 1개 동을 일본보다 먼저 완공한 김종훈(당시 현장소장을 지냄) 등 우리 세대 뛰어난 건축가들의 활약상과 그 현장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
사진 설명 : 고 정기용 선생님(오른쪽 사진)께서 지은 제1호 기적의 도서관 순천어린이도서관(왼쪽 사진).
고 정기용 선생님은 순천 외에도 제주, 서귀포, 진해, 정읍에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나. 목욕탕이나 지어 줘!”라는 무주 안성면 주민들의 말을 예사로 넘겨듣지 않고 목욕탕 공간을 넣은 면사소를 국내 최초로, 어쩌면 세계 최초로 만든 고 정기용 건축가이다.(안타깝게도 정기용 선생님은 지난 3월에 작고하셨다.) 지난해 ‘호화 청사’란 별칭을 달고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성남시청 청사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청사를 지은 건축가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다만 건축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또 요즘 흔히 건축에서 제기되는 친환경성이나 지속 가능성, 에너지 효율성,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사진 설명 : 박유진 건축가(맨 왼쪽)가 디자인한 북서울 꿈의숲 공원에 있는 미술관(가운데)과 전망대 전경(맨 오른쪽).
북서울 꿈의숲 공원은 명실상부한 서울 강북 지역 쉼터와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박유진 건축가가 ‘북서울 꿈의숲’ 공원을 디자인하면서 건물을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세우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넘어 그곳을 찾는 시민들이 어디서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그 장소에서 고개를 들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장애인도 쉽게 이용 가능한지, 안전한지 등등 섬세하게 고민하고 배려하는 모습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최근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디자인 능력과 건축 기술은 엄청나게 급성장한 것 같다. 광화문 한복판에 서면 크고 높은 빌딩들에 어지러울 지경이고 그 사이사이로 뻗은 길과 독특하고 예쁜 건물들, 장소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는 그러한 건물들에 익숙하고 때때로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거나 크고 웅장한 전시관을 구경하면서 문화적 사치를 누린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오늘 나는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참으로 사람을 위한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개개의 건축물은 우리네 사람과 마찬가지로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화려한 것도 있고 소박한 것도 있고, 서구적인 것도 있고 동양적인 것도 있고…, 정말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할 근본 마음은 공통돼야 할 것이다.
사람이라는 그릇에 선한 마음을 담는 것이 중요하듯, 건축에도 선한 마음을 담아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고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건물의 화려한 외관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한 가지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그러한 고민을 하는 건축가들을 이 책을 통해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너무나도 고맙고 복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