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키 books 2013~/세계사 브런치

역사는 이렇게도 기억되고 체험된다 - 편집자 노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9. 10. 16:14

세계사 브런치』 편집자 노트

역사는 이렇게도 기억되고 체험된다
















경의선숲길.jpg



지난 몇 년간 나는 여러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다가 편집하는 프리랜서로 일하다가두어 달 전 부키에 입사하면서 다시금 규칙적인 일과를 보내는 생활로 돌아왔다회사와 집이 서로 멀지 않아 걸어 다닐 수 있기에 출근길 교통지옥을 피하는 행운도 누리고 있다게다가 그즈음 서교동을 지나는 경의선숲길이라는 공원이 거의 완성되었는데마침 내 출퇴근길과 이 공원길이 일부 겹치면서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씩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지상에 있던 경의선을 지하 터널로 내려 보내는 김에 그 자리에 도로를 내거나 건물을 올리는 대신 공원을 조성한 것인데그러면서 홍제천부터 용산까지 6킬로미터에 이르는폭이 좁고 길쭉한 휴식처가 생겨났다그저 흙을 깔고 나무와 잔디를 심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삐뚤빼뚤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책로를 만들어 기다란 공원을 따라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게 했다물길이 흐르는 구간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군데군데에 박힌 옛 철로와 침목이다물론 긴 공원 지하를 따라 뚫린 터널에 궤도가 깔려 있고공원 이름에도 경의선이 들어 있으니 여러 힌트가 충분한 셈이지만처음 이곳을 마주친 사람이 굳이 그 이름을 몰라도지하에 뭐가 있는지 몰라도 한때 열차가 달리던 자리였음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해놓았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던 장벽은 1990년 독일이 통일될 즈음에 무너졌지만일부 구간이 보존되어 지금은 거리 미술가들이 벽화를 그리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그리고 장벽이 아예 사라진 곳 바닥에는 그 주변과 다른 돌들을 깔아 눈에 띄게 만듦으로써 옛 경계선이 있던 자리였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어떤 건물이나 구조물의 용도나 수명이 다하여 그것을 제거하고 새롭게 탈바꿈시킨다 해도예전의 흔적을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나마 남겨두는 것은 자연스럽게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방법이다그 터에 새로이 들어선 것은 뜬금없이 우리 눈앞에 나타난 신생물이 아니라 나름의 내력을 지닌 역사적 사물이 된다역사는 이렇게도 기억되고 체험된다.



-부키 편집실 이루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