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 그리고 8개의 돌멩이들 : 『영 머니』 편집자 노트
편집 후기, 그리고 8개의 돌멩이들
『영 머니』 편집자 노트
폭풍과도 같았던 ‘마감’이 마감되었다.
이 책 『영 머니』를 어여삐 보아 달라는 바람과, 원고에 관한 거의 모든 기억(!)을 투명 비닐에 담아 기자님들께 보내고 자리로 돌아 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을 위해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다 했으니까
나는 그냥 아무 생각이나 하기로 한다.
하얗게 불태웠지. 그래서 마감을 마감하고나면 머리가 텅 비는 거였어.
_ 『허리케인 죠』 중에서
나는 이 책을 처음 보게 될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궁금해 미치겠다.
사람 많은 홍대에서 친구 녀석이 30분이나 늦는다는 말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윤이클로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서점까지 들어갔다가 운명적으로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어떨까? 친구를 기다리는 30분 동안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생각해 보았다. (객관성 따윈 없다.)
첫 인상. 핫하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유광 코팅 바디. 416쪽이 만들어 낸 기분 좋은 묵직함. 손에 짝짝 붙는 찰진 느낌. 무엇보다 재미있어 보인다.
새로 나온 만화책인가? 젊은 돈? 돈이 아직 덜 컸나? 아무튼 펼쳐 본다. 영 머니. ‘돈을 쫓는 젊은이’라는 뜻이었군. 내 얘기네! -- 성공적.
적당한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초반부. 흥칫뿡!
책에는 미국 일류 대학을 갓 졸업한 파릇파릇한 젊은이들이 여덟 명이나 등장한다. 그런데… 애들이 어째 좀 나약하다? 사내놈이 여자 상사한테 혼나고 청승맞게 비 맞으며 질질 짜질 않나, 바쁘단 이유로 조강지처 ‘여친’에게 차이고 모델 언니들 꽁무니만 쫓아다니질 않나, 출근길에 어떤 차에 치어야 덜 아프게 며칠 쉴 수 있을지 고민하질 않나. 야, 이 녀석들아. 누난 연봉이 15만 달러(약 1억 8천만 원)면 출퇴근길마다 홍대 한복판에서 ‘차력쑈’도 하겠다! 연애는 물론이고,
카포에라: 브라질의 전통 무술.
홍대에서 차력쑈를 하며 영혼을 팔 때 유용하다.
중반부. 영원한 고통
물론 이들이 겪는 고통이 만만치는 않다. 새벽 6시까지 야근하고도 3시간 후 정시 출근하느라 각성제를 끊을 수 없고, 소수점 넷째 자리를 반올림하지 않은 실수로 자신의 연봉을 한순간에 홀랑 날려 먹기도 한다. 상사들은 또 어찌나 까칠하신지.. 게다가 얘들, 알고 보니 비정규직이라 계약기간이 한참 남았는데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려 나간다. 눈물을 흘리며 월스트리트를 걷는 주인공을 보니 왠지 위안이 된다. --니들이 그렇게 힘들다면 제가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후반부는 ‘친구 녀석이 도착했다’는 설정으로 급 마무리 해야겠다. 다 보여 주면 재미없으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sns에서 어떤 글을 보았다.
아프지 말고, 흔들리지도 말고, 아주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아파서는 안 되고, 흔들려서도 안 되며, 아주 작은 용기도 없어서 네가 요렇게 사는 거라고 지적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내용이었다. 엄청난 공감이 쏟아졌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때에 맞는 고민을 한다. 연봉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실컷 아파하다 일을 관둘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강가의 조약돌처럼 자본이라는 탁류에 깎일 대로 깎이고 구를 대로 구르며, 그렇게 충분히 다듬어진 돌을 ‘어른’이라 부르나보다.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혹은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주인공들은 이제 고작 스물한두 살이다.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저들은 오히려 더 일찍 깎이고, 더 빨리 구르는 중인데 말이다. 게다가 연봉도 더 많이 받는다. 결국 나도 꼰대가 되어 버린 걸까.
이 책은 실화다. 그렇기에 이들은 머나먼 어딘가에서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여덟 명의 청춘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건 행복에 조금 더 다가서 있기를, 그래서 빛나는 돌이 되기를 기원한다.
-부키 편집부 지렁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