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시민을 만나다
장하준 교수의 ‘시민’을 위한 경제학 특강 후기 (1)
시민청은 오가는 사람 누구나 들러 책을 읽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넓고 쾌적한 공간이라니!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울도서관과도 연결된 열린 공간이어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는 장하준 교수의 지론이 담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와도 딱 맞았다.
시민청에 도착했을 땐 강연 한 시간 삼십분 전.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과 흰머리가 가득한 할아버지도 있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한 권씩 들고. 사람이 점점 늘어나 강연 시작 전 뒤를 돌아봤을 땐 여러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들의 모습 뒤로 자리를 가득 메운 200명이 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양한 세대에 걸쳐 사랑받고 있는 장하준 교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쉬운 경제학’을 기다려 온 ‘보통 사람’들의 갈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진행을 맡은 서울도서관 이용훈 관장의 소개로 오늘의 주인공 장하준 교수가 무대로 등장했다. 장 교수는 짧은 인사 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가진 의미를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을 진지하게 대하려 애썼습니다.”
“경제학의 ‘경’자도 모르는 분들에게도 쉽고 재미있는 경제학책, 요즘 하는 말로 왕초보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되 독자들을 진지하게 대하려 노력했습니다.”
철학적,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중요한 것 10가지’, ‘이것만 알면 된다.’고 말하는 책이 독자에게 생각할 능력을 길러 주기보다는 오히려 독자를 깔보고 있다고 지적하며 장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경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소비’와 그를 통한 ‘만족’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경제학책과 달리 이 책에서는 대부분의 책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여러 경제학파의 주장을 소개했고, 7장 ‘생산’과 10장 ‘일’ 역시 주류 경제학책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이다.
실제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 경제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 세계에서 가장 평등/불평등한 나라, 세계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 등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현실 경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 숫자’를 등장시켰습니다. 무엇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숫자들이 그렇게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자 돈 많은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의 게으름을 질타한 바 있다.
그러나 장 교수는 그리스와 멕시코를 예로 들며 OECD 국가 중 가장 노동시간이 길고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들임에도 게으름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문제 해결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지적했다.
나만 해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통계 숫자를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숫자를 정확히 보지 못하면 많은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장 교수의 말에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모든 시장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경제학은 정치'적이라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아동 노동, 노예 매매가 가능했습니다만 지금은 안 됩니다. 비인도적이고 나쁜 행위라고 정치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환경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경 규제를 이야기하면 자본주의에 반대한다고 공격을 받았지만 요즘은 우파 정권도 환경 규제를 받아들입니다. 시장의 경계, 경제의 경계는 결국 정치에 의해 좌우됩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에 정치가 개입되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지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경제의 경계도 정치적으로 결정된 일이기 때문에 못 바꿀 것이 없습니다.”
경제에서 정치적 논리를 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시장은 ‘1원이 1표’인데 민주주의는 ‘1인이 1표’입니다. 따라서 경제에서 정치 논리를 배제하자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말이나 마찬가집니다.”라고 일갈했다. 이 대목에서 많은 공감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책임 있는 시민이라면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둔감했던 것일까?
“경제가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을 알면 민주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기가 쉬워진다.”
장 교수의 말처럼 ‘잘 아는 전문가들 일에 잘 알지도 못하는 시민이 끼어들 것 없다’는 주장은 지극히 반민주적인 이야기이다.
“책임감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경제학을 조금씩이라도 배워서 경제학자와 정치 입안자들을 견제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부에서 계속)
부키 편집실 지렁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