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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응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2. 12. 09:58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편집자 노트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응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 책의 진행과 편집을 담당하게 된 후 처음 미팅을 하러 공감 사무실을 찾은 게 벌써 1년 전 겨울이다. 한산한 평일 오후의 창덕궁 앞에서 따끈한 오뎅한 꼬치로 오그라든 어깨를 풀고 사무실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변호사라니, 그것도 무려 일곱 명. ‘인권변호사는 다 착해, 쫄지 마해봐도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됐다. 법조인 필자와는 작업해 본 적이 없던 터였다.

막상 만나 본 필자들은 인상이 어찌나 말갛고 친근한지, 영화에서처럼 매의 눈을 하고 시크하게 대꾸하는 인물들과의 접견(?)이 되진 않을까 했던 나의 망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미 초고는 들어온 상태. 원고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고쳐 보자는 편집자의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끄덕, 웃으며 맞아요 맞아요귀 기울여 듣고 호응해 주니 서로서로 심기일전!

미팅을 마치고 나와, 떠드느라 쪼그라든 배를 채우느라 다시 오뎅한 꼬치를 입에 물고 생각했다. , 생각보다 순조롭겠는걸~’

 

마지막까지 수정한 이유는 승소 판결 때문!

따끈한 새 책을 받아든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에 잠긴다. 순조는 조선의 23대 왕이지, 편집과는 하등 관계가 없었어. 역시 나는 멀었어~’

여러 필자가 쓰는 책은 편집자에게는 기피 대상 넘버 쓰리쯤 될 거다일단 톤을 맞추기 어렵고, 표기 등 여러 가지를 통일시켜야 하고, 원고가 한번에 들어오거나 수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정 원고를 보내고 나면 여러 날에 걸쳐 다발적으로 수정이 들어오는데, 한 번에 들어오지도 않지만 한 번만 들어오지도 않는다편집자는 파일 또는 교정지를 열 번쯤 정주행 역주행하기 마련. 이제 수정은 진짜 그만이어요~ 여기서 더 늦어지면 회사에서의 제 인권이 침해당할 수도 라고 읍소도 해보지만, 어쩌겠는가어제 대법원 승소 판결이 나왔어요~ 마지막으로 수정 부탁드려요~”라는데이 메시지에 내가 뛸 듯이 기쁜데, 그깟 야근이 대수겠는가 말이다.

 

영화 <친구사이?> 미성년 친구가 봐도 괜찮아요!

사연인즉 이렇다. (내가 좋아하는 훈남 배우 이제훈과 연우진이 등장하는, 그러나 선정적 장면은 전혀 없어 조금은 섭섭했던)
영화 <친구사이?>가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2010년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미성년자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동성애를 조장하고 모방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조광수 감독은 영등위의 결정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여겨 법적으로 싸워 보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공감이 변호인으로 나서 (미성년자관람불가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그 후로 어언 3. 20101심 승소, 그러나 영등위가 항소했다. 2심도 승소, 그러나 영등위가 또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 여기까지가 최종 원고를 넘기기 직전의 상황이었다그런데 마감을 향해 달리는 사이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된 것이다.

오예~!!’

 

경악, 응원 그리고 오예의 공감

“()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에서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우리 손을 들어주었다.”로 문장을 고치면서 밀려왔던 산뜻한 기분을 어찌 말로 다할까.

이 책의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작업 하는 내내, 그런 기분으로 일했던 것 같다. 경악, 응원, 그리고 오예~’

이들이 전하는 우리 시대 인권의 현주소는 기막히고 눈물겹기 짝이 없지만, 그 현실이 법이라는 무기를 통해 조금씩 더 나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페이지마다 확인하면서 안심이 되고 투지도 불끈 솟았다.

일은 일이니까, 책 만들면서 100퍼센트 즐겁기만 했다면야 거짓말이겠지만, 몇 번이고 원고를 읽고 이들의 행보를 쫓다 보니 일종의 팬심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류현진도 아니고 김연아도 아닌데, 응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진심 어린 고군분투와 흥미진진한 서사가 이들의 이야기에 담겨 있다.

 

누군가와 누구나와 손잡고 싶어진다

담당한 책이 많은 독자를 만나고 공감을 얻으면 편집자로서 당연히 좋다. 하지만 담당 편집자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책을 펼쳐 든 지금, 다시 읽어도 눈가가 씰룩씰룩하고 주먹은 불끈불끈한 걸 보니, 공감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어쩌면 내 예상보다 더 힘이 셀지도 모르겠다.

얼음장 같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게 되는 이 겨울, 추운 계절을 함께 나고 있는 누군가와 아니 누구나와 굳게 손잡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신경숙의 추천사처럼, “이 책이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으면 좋겠다.

 

공감을 응원하고 후원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붉은손 씀.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저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출판사
부키 | 2013-12-1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법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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