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통화 vs 기축 통화
달러화는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국제 통화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최근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위안화의 부상을 점치기도 합니다만 아직은 달러화의 지위를 위협하지는 못합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를 기억하시나요?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미국의 경제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미국 화폐인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가치는 높아졌습니다. 왜 사람들은 달러화를 선호하는 것일까요? 이는 달러화가 여러 ‘국제 통화’ 중 하나가 아니라 ‘기축 통화’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국제 통화와 기축 통화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화폐 이야기 : 일곱 개의 키워드로 읽는 돈의 어제아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국제 통화 vs 기축 통화
미국 달러화(위)와 영국 파운드화(아래)
‘국제 통화’와 ‘기축 통화’가 의미하는 바가 동일하지는 않다. 국제 통화란 국제적으로 통화의 세 가지 기능 즉 계산 단위, 지불 수단, 가치 저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통화이다. 국제 무역에서 물건 가격이 당해 통화로 주로 표시되고, 수출업자 및 수입업자들이 무역 대금 결제시 당해 통화를 널리 사용하는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 특히 외환 보유액을 운용하는 중앙은행들이 당해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널리 보유한다면 그 통화는 국제 통화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화폐들이 국제 통화로 부상했고 동시대에 국제 통화가 여러 개 공존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달러화 외에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등이 국제통화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기나긴 화폐의 역사에서 기축 통화라고 부를 수 있는 화폐는 파운드화와 달러화뿐이다. 기축 통화는 국제 통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화이다. 기축 통화는 일반적인 화폐의 기능을 국제적으로 수행할 뿐 아니라 다른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기축 통화는 통화의 세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이 가치 저장 기능이다.
개인이나 국가가 당해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널리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당해 통화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임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해당 통화가 가지는 지위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미국 달러화는 오늘날 명실상부한 기축 통화이다. 세계 외환 거래의 85퍼센트가 달러로 이루어지고,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해외 채권 가운데 50퍼센트 이상이 달러 표시 채권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 보유액의 60퍼센트 이상을 미국 달러 표시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아 기축 통화인 달러화마저 신뢰를 잃고 가치가 하락한다면 그 밖에 다른 통화들은 더 심각한 가치 하락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딱히 투자할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달러화에 수요가 몰리게 된다. 사람들의 이런 생각과 반응이 결국 위기 때마다 ‘강한 달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실책이든 아니면 다른 국가들의 실수로 인해서든 경제 위기 때마다 원화의 가치가 폭락해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보았거나 심각한 경제 위기로 번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달러화의 이런 우월적 지위는 참으로 부럽다.
『화폐 이야기 : 일곱 개의 키워드로 읽는 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중 발췌
화폐이야기
글쓴이 평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