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정말 ‘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 편집자 노트 『화폐 이야기』
편집자 노트 『화폐 이야기』
그러니까, 정말 ‘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23년 독일에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한 장면. 아이들이 갖고 노는 블록은 돈다발이다.
버스를 탔다. 교통카드 기능이 포함된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댔다.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를 샀다. 금액이 적어 미안한 마음에 카드가 되냐고 묻자 천 원 이상이면 된단다. 체인점이기에 주저하지 않고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카레와 스파게티를 먹고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과일, 야채, 비누 등등, 샀다.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집에서 책을 주문했다. 이동식 USB를 장착해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오늘 하루도 현금을 쓰지 않고 지나갔다.
지갑이 두 개 있다. 현금과 신분증을 넣어 두는 지갑과 카드 두 장에 영수증을 넣어 다니는 지갑. 현금 지갑은 늘 가방 안쪽에 있고 카드 지갑은 바깥 주머니에 둔다. 수시로 꺼내야 하므로.
돈은 쓴다, 다만 현금이 나가지 않을 뿐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버스를 탈 때 회수권을 냈다. 한꺼번에 한 달 치를 사서 점선대로 잘라 지갑에 넣고 다녔다. 학생 할인이 된 거다. 어떤 지방은 토큰도 썼다. 지방마다 단위가 달라 가끔 다시는 쓸 일 없는 은색인가 동색인가 토큰이 지갑에 굴러다니곤 했다. 걸리적거려도 돈이니 바로 버리기는 어렵다. 지금도 어떤 곳은 신용카드로 교통비를 낼 수 없다. 하지만 토큰이나 회수권이 아니라 전용 교통카드를 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돌아보지 않으면 생활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일상에서 서서히 바뀌므로 어느 순간 적응해 버린다. 또 두 세계가 공존하는 과도기가 있으므로 저항이 적다. 지금은 명목 화폐 시대를 지나 신용 화폐의 시대다. 카드, 통장 잔고 등을 현금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플라스틱 물질과 종이에 찍힌 숫자인데 그것을 믿고, 쓰고, 매우 좋아한다. 그것으로 세상의 대부분을 교환할 수 있으니까. 그것으로 저장하고 투자해 더 많은 것으로 불릴 수도 있으니까. 그것이 늘 바뀌는 사람 마음보다 더 믿음직스럽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것도 바뀌기는 마찬가지다.
과거를 통해 오늘과 내일을 보다
역사를 더듬는 것은 지금의 좌표를 그리기 위해서다. 앞으로 화폐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갈지, 화폐를 둘러싼 인간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화폐 정책이나 제도가 한 개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우리는 과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아니 그것 외에 답을 줄 수 있는 게 있기는 할까.
『화폐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이 화폐를 발명한 까닭에서 시작해 역사 시대마다 화폐가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왜곡되었고 어떻게 진화해 오늘과 같은 모습을 하기에 이르렀는지 알기 쉽게 보여 준다. 또 화폐를 둘러싼 다양한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왜 초록색 잉크를 쓴 지폐가 많은지, 동전이나 지폐에 사람 얼굴이 들어간 건 언제부터인지, 달러화는 언제 어떻게 위세가 당당해졌는지, 프랑스는 왜 금융에서 앞서지 못하고 파운드와 달러를 시샘만 하게 되었는지, 최초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직원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대목들은 화폐의 역사와 함께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이 책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법은 알려 주지 않지만 돈이 무엇인지는 보여 줄 수 있지 않을까.
‘이재’에 어둡지만 어쩌다 보니 빚 없이 작은 집도 있는,
그래서 부키 사람들이 알고 보면 부자라고 이야기해서 그런가 갸웃하는, 부키 기획편집부 말년병장 씀.